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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엄태웅의 고민, 그리고 제작진의 쿨한 편집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엄태웅의 고민, 그리고 제작진의 쿨한 편집

빛무리~ 2013. 8. 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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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 강릉 바우길을 걷다' 편에서 차태현과 엄태웅은 2인 1조가 되어 걷고 있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도 같고 소탈한 성격도 비슷한 그들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직업적 성공이나 대중의 인기가 반드시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행복은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에 있는 것 같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얼마 후 태어날 셋째를 기다리는 차태현은 훗날 아이들 셋이 나란히 발 맞추어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출산 후에는 독한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당신, 다른 여자와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겠어!" 라고 선언했다는 말에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딸을 얻은 초보아빠 엄태웅도 한창 자식 키우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듯, 다둥이 아빠 차태현의 이야기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어요.

 

 

그러다가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하며 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좋은 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밝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예능적 이미지가 많은 도움이 되더라며, 차태현은 예능 출연에 큰 부담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했죠. 생각해 보니 차태현의 심각하거나 진지한 연기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싶군요. 언제나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 때문에 비난도 듣곤 하지만, 차태현은 오히려 그것을 자신만의 특화된 가치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긴 외국 배우들을 보아도 팔색조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전천후 연기자들이 있는 반면, 코믹이나 악역 등 특정한 캐릭터를 고정적으로 맡아 검증된 명품 연기를 선보이는 연기자들도 있으니까요. 큰 야망 없이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꾸준히 대중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주고 싶다는 차태현의 인생관은 나름 멋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엄태웅의 입장은 좀 다르더군요. 언제나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엄태웅에게는 예능적 이미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영석 PD의 삼고초려를 받고 강호동이 이끌던 '1박2일' 시즌1에 합류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길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죠. 능수능란한 제작진과 동료들에 의해 붙여진 '순둥이', '호동빠' 등의 캐릭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예능인 엄태웅의 초반 레이스는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죠. 화려한 전성기를 이끌던 나영석 PD와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가 모두 물러난 후 시즌2에 접어들면서부터 '1박2일'은 돌이킬 수 없는 하향세에 접어들었고, 엄태웅의 예능 인생도 사실상 거기에서 끝난 셈이었습니다.

 


원래 엄태웅은 은지원, 이승기와 더불어 하차를 결심했었다는군요. 하지만 시즌2를 이끌게 된 최재형 PD가 제발 도와달라면서 간곡히 붙잡는 것을 뿌리치지 못해서 눌러 앉았고, 그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엄태웅은 독특한 발상으로 '새피디'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죠. 지금은 새피디도 물러나고 다른 연출자로 교체되어 사실상 시즌3로 접어들었지만, 그 순간의 선택은 아직도 엄태웅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2011년 3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2년 5개월 동안이나 지켜보았지만, 아무래도 엄태웅은 예능에 적합한 연예인이 아니에요.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데 좀 어설프고 순진해 보이는 모습이 가끔씩 미소를 자아내게 할 뿐, 예능적 끼나 재치는 없는 편이었습니다. 역시 이 사람은 정통 배우의 길을 걸어야겠구나, 늘 그런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제 와서는 특별한 계기도 없이 발을 빼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차태현과 함께 걸으면서 엄태웅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에게 있어서 '1박2일'은 말이지... 그런 거 있잖아... 월세나 전셋집을 어떻게 들어왔는데 집주인이 도망가서 내가 그 집을 받았네? ... 그런데 집은 팔리지도 않고... 아흑, 유지비는 많이 나가고... " 와, 정말 리얼하고 솔직한 고백이었어요. 마치 그 곳이 차태현과 단둘이 있는 술자리인 것처럼, 바로 눈 앞에서 '1박2일' 카메라가 자기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죠. 절묘한 비유에 차태현은 숨이 넘어갈 듯 킥킥 웃는데, 엄태웅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내가 이 프로그램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도 쉽지 않았어... 배우들은 보통 예능에 게스트로 오잖아... 그러니까 여기서도 왠지 나는 손님인 것 같고... 동료들이 재미있게 꾸며가는 걸 보면서 박수나 치고 그랬지..." 처음에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는 충분한 주인 의식을 갖게 되었을까요? 동료들과의 개인적 친분이나 감정적 의리에 상관없이,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낄까요? "좀 힘든 것 같아... 스케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아..." 엄태웅은 단지 이렇게 말했지만, 힘든 이유가 스케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자기 집이 아닌 곳에 와서 거주하고 있는 듯, 그는 아직도 예능이라는 껍데기가 불편해 보였어요.

 

설상가상 엄태웅이 현재 출연중인 드라마 '칼과 꽃'은 공중파 3사의 수목드라마 중 꼴찌를 기록하는 낮은 시청률로 고전중입니다. 시청률의 제왕까지는 아니라도 이제껏 출연하는 작품마다 중박 이상을 기록해 왔던 엄태웅으로서는 당혹스런 시기가 아닐 수 없겠지요. 더구나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는데, 막중한 책임감으로 시작한 작품이 잘 안 되고 있으니까요. 만약 '칼과 꽃'의 시청률이 잘 나온다면 저절로 솟구치는 에너지에 '1박2일' 출연도 별로 힘들지 않겠지만, 본업인 연기 쪽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니 괜시리 예능에 출연하느라 작품에 집중하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고민도 생길 겁니다. 물론 시청률 저조가 엄태웅의 연기 때문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지만요.

 

 

원치 않았으나 엉겁결에 떠맡게 된 집... 유지비는 많이 나가는데 팔리지도 않는 집 같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요? 말하자면 현재 엄태웅에게 있어 '1박2일'은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와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속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요? 놀라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버젓이 '1박2일' 녹화중에 제작진 앞에서 털어놓는 엄태웅의 솔직함이엇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장면을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제작진의 쿨함이었습니다. 딱히 엄태웅을 놓아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당최 어쩌려고 출연자의 속마음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해 준 걸까요?

 

속셈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매우 신기하고 신선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쿨한 예능 출연자와 제작진은 앞으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엄태웅씨, 다음 번 작품에서는 시청률 대박칠 수 있을 겁니다. 막내 주원이도 올해 초 '7급 공무원'의 실패로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닉네임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지금은 '굿 닥터'의 성공적인 출발로 웃음짓고 있잖아요? 사람의 일이란 게 안 될 때가 있으면 잘 될 때도 있는 법이니,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겠지만 너무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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