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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 방송을 살려낸 이서진의 배려심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꽃보다 할배' 방송을 살려낸 이서진의 배려심

빛무리~ 2013. 7.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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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쭉 그랬지만 특히 '꽃보다 할배' 3회는 온통 이서진의 생고생 퍼레이드였습니다. 2회까지는 그래도 4명의 꽃할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나름대로의 활약을 뽐냈던 반면, 3회에서는 다들 이서진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할 뿐 별다른 활약이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3회의 내용은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프랑스 알자스주 바랭현의 주도(主都)]로 이동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를 예약하고 표를 끊고 방향을 안내하고 짐을 나르고 차를 빌리고 운전을 하는 등, 짐꾼 이서진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반에는 베르사유 궁전 내부와 드넓은 정원을 달리는 꼬마기차 등의 모습을 잠시 비춰 주었지만, 방송 화면의 90% 이상을 차지한 것은 현지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이서진의 좌충우돌 원맨쇼였죠.  

 

 

특이하게도 여행 일정을 꽃할배들이 현지에서 직접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 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꽃할배들이 파리 다음 여정을 스트라스부르로 잡으면 이서진은 그에 맞춰 계획을 짜고, 할배들과 제작진은 이서진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촬영을 하는 식의 진행이 이어지더군요. 제작진은 그저 최소한의 경비만을 던져 주었을 뿐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각종 정보를 수렴하여 숙소와 식사와 이동수단을 결정하고 할배들의 움직임을 돕는 등 구체적인 활동은 모두 이서진의 몫이었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4분의 대선배를 모시고 다니는 것만도 심장이 쫄깃한데, 그 낯선 곳에서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주도하고 이끌어야 했던 이서진의 심리적 부담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정신적 압박 못지 않게 육체적으로도 이서진은 거의 막노동에 가까운 활동량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백일섭이 70 평생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눈을 휘둥그렇게 뜰 만큼 거대한 인파와 마주쳤던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는 혼자 수십분씩 줄을서서 기다려 표를 끊어야 했고, 렌트카를 운전하여 할배들을 모시는 동안에는 낯선 외국의 거리에 적응하느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죠.

 

 

낯선 외국에서 운전대를 잡는 것만도 손이 떨릴 일인데, 설상가상 20년 전에나 몰아 보았던 수동 기어 차량과 엉성한 내비게이션은 더욱 이서진을 괴롭혔습니다. 빠듯한 경비에 맞추려고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사진에서 보던 것과 달리 너무 좁아터진 방들이라 짐을 풀만한 공간도 부족할 지경이었죠. 결과적으로 이서진은 그렇게 애를 쓰고도 꽃할배들 앞에서 송구한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라는데, 저는 이번 주에도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였습니다. 출연자들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가학적(?) 재미를 뽑아내는 나영석 PD 특유의 예능 포맷은 '1박2일'에서와 비슷했지만, 6명의 멤버들이 똘똘 뭉쳐 서로 의지하며 제작진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1박2일'과 달리, 아무에게도 의지하거나 도움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이서진의 모습은 보기에 그리 편치 않더군요.

 

저는 별로 측은지심이 흘러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제 생각에는 오히려 냉정한 편에 가까운데, 이서진 한 사람에게만 너무 가혹한 방송은 재미있다기보다 거북하게 느껴졌어요. 아무리 나영석 PD라도 평균 연령 76세의 꽃할배들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렇다면 웃음 포인트를 다른 쪽으로 잡을 수는 없었을까, 반드시 자기 스타일대로 가학적(?) 예능을 고집해야만 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불편한 마음을 한 순간에 녹여준 것은, 그 힘든 와중에도 할배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드리려는 이서진의 깊은 배려심이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할배들을 먼저 숙소에 들여보내고 렌트카에서 짐을 내린 이서진은 혼자 4개나 되는 여행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메고 계단을 올라갔지요. (어쩌면 이런 것조차도 제작진은 전혀 돕지 않더라는..;;) 그런데 할배들의 방 앞에 도착한 이서진은 한 명의 스태프에게 눈짓하더니, 자기 대신 가방을 전해 드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직접 전해 드리지 않느냐고 묻자 "선생님들이 미안해 하실까봐" 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순간 제 가슴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사실 이서진의 노고를 할배들이 모르실 리가 없었지요. 아무리 촬영이지만 너무 혼자 애쓰는 후배에게 적잖이 미안한 마음도 갖고 계셨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든 상황에서, 할배들의 그런 마음까지 배려하는 이서진의 세심함은 정말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어요. '제 코가 석자'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본인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런데 본인이 극도의 정신적 부담과 신체적 피로에 시달리는 와중에 타인의 마음 상태까지 배려할 수 있는 이서진의 인품은 매우 존경스런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나영석 PD의 가학적(?) 예능이 가장 빛나던 포인트는 바로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매번 극한 상황에 몰려 괴로워하는 모습들만 보여주다 끝났다면, 그건 무슨 새디스트를 위한 방송도 아니고 절대 성공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동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진심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1박2일' 멤버들의 모습은 그 때마다 진한 휴머니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처한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감동은 더욱 짙어지곤 했는데... 사실상 최고 시청률 40%에 육박했던 국민예능 '1박2일'의 인기 비결은 여행지의 풍물이나 가학적 재미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빛바래지 않았던 멤버들의 우정과 형제애였습니다. 그것은 요즘 각광받는 힐링 예능의 시발점이었어요.

 

그런데 제각각 다른 개성의 6명이 서로 의지하며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었던 '1박2일'과 달리, 극한 상황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와중에 '좋은 성격'과 '훌륭한 인품'까지 스스로 어필해야 하는 '꽃보다 할배'의 짐꾼 역할은 몇십 배 정도 어렵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자칫하다 '까칠한 성격'이라도 드러나게 되면, 아예 처음부터 아니함만 못한 것 아니겟습니까? ㅎㅎ 다행히 첫번째 짐꾼 이서진은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기고 훌륭히 미션을 수행하며 방송을 살려냈는데, 곧이어 제작될 시즌2에는 또 누가 새로운 희생양으로 낙점될지 궁금합니다. 부디 잘 해내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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