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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멸치남, 컴플렉스 극복의 가장 나쁜 예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안녕하세요' 멸치남, 컴플렉스 극복의 가장 나쁜 예

빛무리~ 2013. 7.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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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자연스런 재미보다 불쾌한 느낌을 더 많이 받게 되어 자주 시청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이 '안녕하세요' 입니다만, 이번 주에 출연한 '멸치남'의 사연을 보고는 오랜만에 한 마디 하고 싶어졌습니다. 대다수 시청자들의 추측처럼 상금을 노리고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서 출연한 경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는데, 혹시라도 그 사연이 진짜라면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컴플렉스는 있게 마련이고,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극복해 나가는 과정 중에는 타인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본인만의 고충들이 있게 마련이고요. 그런 차원에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 때문에 자신의 비쩍 마른 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멸치남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하면서 어느 덧 고치기 힘든 습관이 되어 버렸군요. 아마도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조금씩은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그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차라리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것보다도 훨씬 더 나쁜 상태가 되어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보며, 저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삶의 또 한 가지 장애물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만, 잘못된 방식을 택했을 때는 사람이 얼마나 극도로 망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죠. 예를 들자면,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자신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어렵게 담배를 배웠는데, 이제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을 만큼 니코틴에 중독되어 버린 골초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좁은 공부방이 답답하다고 때려 부쉈더니 감옥에 갇혀버린 꼴이었죠.

 

 

고민 의뢰자는 청년의 누나였습니다. 키 170cm 몸무게 48kg인 그녀는 연예인 뺨치게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마른 누나에게 사연의 주인공은 항상 '돼지같다'고 말하며 살을 빼라고 구박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보니, 방송 후 곳곳의 게시판에는 상금을 노리고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죠. 하여튼 누나를 향해 남동생이 내뱉는 독설은 심각했습니다. 누나가 뚱뚱해서 창피하다며 어디 가서 내 누나라고 하지도 말라는 둥, 몸에 붙는 원피스라도 입을라치면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 뱃살 어떡할 거냐고 배에 있는 걸 좀 빼고 나가라는 둥, 이런 식으로 타박을 한 것이 무려 16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절대 뚱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집에서 남동생에게 매일처럼 그런 말을 듣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세뇌가 되고, 자기가 진짜 뚱뚱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게 된다고 누나는 말했죠. 남동생의 체격은 키 175cm에 몸무게 50kg이라 모든 출연자와 방청객이 경악할만한 수치였고, 잠시 후 등장한 남동생의 모습은 그야말로 앙상한 나뭇가지 같더군요. 하지만 본인의 체격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청년은 가장 완벽한 몸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본인의 기준이 있으니, 자기 기준에서는 자기가 평균이라는 주장이었어요. 남자로서 허리가 25인치 정도인데 말이죠.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기준이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뭐라 안 하지만, 가족인 누나에게는 좀 더 완벽한 몸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다고 동생은 주장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남자인 자기가 이 정도라면 여자인 누나는 더 마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였죠. 의학적으로도 저체중이고 대한민국 평균 체중에도 한참 못 미친다는 객관적 자료를 내놓아 봤자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은 평균 따위와는 무관하다며 청년은 그저 고집만 피울 뿐이었어요. 게스트로 나온 걸그룹 fx의 멤버들 역시 모두 예쁘긴 하지만 여기저기에 군살은 붙어있는 것 같다고 과감한 발언까지 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났습니다. 원래 마른 체격이었던 엄마는 얼마 전 몸이 아파서 3개월 가량 병원 생활을 하신 후 5kg 정도가 찐 상태로 퇴원을 하셨다는군요. 그 때부터 아들은 엄마 운동해서 살 빼라고 매일처럼 다그친다는 거였습니다. 수술하면서 몸에 쇠붙이를 넣었기 때문에 격한 운동은 못한다고 하면, 먹는 것을 줄여서라도 살을 빼라고 한다는데, 그렇게 아픈 몸으로 아들에게 살쪘다며 구박받는 엄마는 현재 키 159cm에 몸무게 50kg로 아주 정상적인 체격이었습니다. 연세에 비해서는 오히려 마른 편이라고 볼 수 있죠. 옆에는 남동생의 후배라는 근육맨이 함께 나와 있었는데 "가끔 형이 그러는 거 보면 미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운동해서 근육을 키워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도 청년은 자기 몸에 만족한다는 대답을 할 뿐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자기 몸을 많이 부러워한다는 소리나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 정도 마른 남자를 보면서 여자들이 겉으로는 "어머, 부러워요. 나도 그렇게 말라봤으면..." 하겠지만,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무척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방청객 중의 한 어린이가 대놓고 "멸치같다" 한 것처럼, 여자들의 속마음도 그 쪽에 가깝거든요. 물론 마른 사람에게 멸치같다고 하는 것은, 뚱뚱한 사람에게 돼지같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 청년에게는 꼭 필요한 말 같기도 했습니다.

 

누가 자기에게 말랐다고 얘기하면 그는 항상 "내가 마른 게 아니라 당신이 뚱뚱한 거"라고 받아친다는데, 방송을 볼 때는 그저 황당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오히려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완전히 극복한 상태라면 씨익 웃으며 "날씬해서 멋있죠?" 정도로 응대하면 될 일인데, 굳이 상대방을 공격까지 한다는 건 아직도 자기방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마르고 왜소해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고, 한 때는 체격을 키워보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신감을 갖자는 생각에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게 되었다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데서 멈춰야지 타인에게 자기 기준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MC들이 조언했지만, 그는 별로 귀 담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방청객 투표수가 100을 넘으면 더 이상 누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마지 못해 수락은 했지만, 사연이 진실이라면 이미 습관화 되어버린 그 말버릇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더군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긍정적인 자신감을 갖는 것과, 비뚤어진 자기 위안으로 똘똘 뭉친 채 눈을 가리고 살아가는 것은 천양지차인데, 컴플렉스를 극복하려다가 더 안 좋은 길로 빠져버린 청년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 황당한 자신감을 비웃고 있음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제 생각엔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히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자기가 파 놓은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남에게 들키면 더 민망하겠죠. 그러니 한껏 잘난체하고 구덩이 속에 들어앉아 "난 여기가 너무 좋아. 정말 쾌적하고 편안해!"라고 큰 소리로 외치겠지만, 구덩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스스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행복한 척 연기까지 하려니, 매일처럼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플까요? "내가 마른 게 아니라 당신이 뚱뚱한 거야!"라고 외칠 때마다, 사실 그 청년은 비참함을 억누르려 발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치료를 받아서라도 그 비뚤어진 기준을 바로잡아야 할텐데, 과연 그럴 의지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가여운 멸치남이 컴플렉스 극복의 가장 나쁜 예를 보여줌으로써 충격적인 경종을 울렸으니, 그와 비슷한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겐 부디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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