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꽃보다 할배' 가슴 뭉클했던 신구의 한 마디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꽃보다 할배' 가슴 뭉클했던 신구의 한 마디

빛무리~ 2013. 7. 13. 06:30
반응형

 

한 때 명실상부한 국민예능이었던 '1박2일',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나영석 PD가 tvN에서 제작한 '꽃보다 할배'에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라는 4명 꽃할배의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벅찬데, 43세의 품격있는 청년(?) 이서진이 짐꾼으로 전격 합류하면서, 케이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그 화제성은 공중파의 모든 예능을 가뿐히 뛰어넘었죠. 평균 연령 76세에 달하는 노년의 배우들을 주인공 삼아 만들어진 유럽 여행 버라이어티라니, 발상부터가 퍽이나 신선하여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들의 첫번째 배낭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군요.

 

 

폭발적인 화제성에 비해 1~2회를 시청한 저의 소감은 뭐 그냥 그렇다는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 있었는데요. 파리는 불과 6개월 전에 신랑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지역이었거든요. 화면에 비친 풍경들을 보면서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히 떠올랐고, 개인적인 회상에 잠기느라 좀처럼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주쳤던 가공할 인파(人波)... 가까이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카메라의 줌인 기능을 이용하여 간신히 사진만 찍을 수 있었던 모나리자... 샹젤리제를 걸으며 보았던 개선문... 어둔 밤에 세느강 유람선을 타면서 질리도록 보았던 불 켜진 에펠탑... 이 모든 것들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비록 계절은 달랐지만) 거기에 있었던 나 자신과 그 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더군요.

 

물론 좋았지요. 책이나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그 곳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에나 그리던 장소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파리 여행을 통해서 제가 얻은 가장 커다란 수확은 그런 기쁨들보다도, 내 가슴 속에 막연하지만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단숨에 깨뜨렸다는 데 있었어요. 만약 내가 직접 그 곳에 가보지 못했더라면, 앞으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저 할배들과 비슷한 나이가 될 때까지도, 유럽에 대한 그리움과 선망의 감정을 버릴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까 뭐 별 것도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사람들은 또 어찌나 불친절한지, 불과 며칠 머무는 동안 제 인생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개무시와 불친절과 황망한 인종차별까지 경험한 곳이 파리였다죠.

 

 

'1박2일'도 여행 버라이어티지만, 솔직히 그런 것을 보는 진짜 재미는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보다도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에 있지 않던가요? 여행의 기억이 아름답게 남으려면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이 좋아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저와 신랑의 경우는 별로 그렇지 못했던 셈이죠. '꽃보다 할배'가 찍은 화면에는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파리의 거리에서 온 얼굴 가득 환영의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어 주는 백인들의 모습이 잡히기도 했던데, 실제로 가보면 푸핫~ 그런 사람들 없습니다. 불어를 몰라서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단 한 명도 성의있게 맞는 대답을 해주는 백인을 만난 적이 없었어요. 프랑스에 와서 영어를 쓰니까 기분이 나빴던 건지, 냄새나는 동양인을 골탕먹이고 싶었던 건지, 모두들 이상한 거짓말로 가르쳐 주는 바람에 몹시 고생을 했었죠. 엄청 헤매다가 운 좋게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우리가 찾던 장소를 제대로 찿아갈 수 있었답니다.

 

파리는 언제나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장소인 만큼, 프랑스는 관광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관광객을 대하는 파리 시민들의 태도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곳이 자기들에게는 엄연한 삶의 터전인데, 허구헌날 몰려드는 온갖 인종의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여대니 뭐 짜증스럽고 귀찮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껏 어렵게 마련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간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푸대접이 유쾌할 수 없더군요. 당연히 파리를 비롯한 유럽 문화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깨끗이 사라졌고, 오히려 그 곳을 생각하면 무례함과 야비함의 도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꽃보다 할배'에서는 파리의 풍경들을 한껏 아름답게 포장하여 비춰주고 있는데, 그 화면을 보면서 저는 "흥, 그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에펠탑에다가 번쩍이는 전구들이나 칭칭 감아놓고 불 몇 번 껌벅껌벅 켜 주면서, 남의 나라 귀한 돈을 왕창 뜯어가는 염치없는 짓거리인 걸!"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프로그램에 집중이 될 리가 없지요. 파리의 풍경을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도 하고, 나도 저 곳에 가보고 싶다는 선망의 감정이 생겨야 몰입도 되고 재미도 있을텐데 그렇질 못했으니까요. 버스를 타고 가던 이서진이 파리의 거리를 보고 "어디를 둘러봐도 너무 아름답잖아. 최고인 것 같아!" 이렇게 감탄했을 때, 제가 여행을 다녀오기 전이라면 "아, 정말 파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일까?" 중얼거리며 두 눈 가득 뿅뿅 하트♡를 날렸겠지만, 이제는 심드렁하게 "글쎄, 그런가?" 하고 있을 뿐이었다죠.

 

재미있게 몰입을 못 해서 그런지, 불편한 부분도 적잖이 눈에 띄었습니다. 백일섭의 아내가 제작진과 함께 먹으라고 많은 양의 장조림을 애써 준비해 주었는데, 제작진은 자기들의 짐을 먼저 부쳤다는 이유로 그 커다란 장조림 통을 백일섭의 가방에 넣게 했습니다. 가뜩이나 무릎도 아프고 건강도 안 좋은 노인네가 그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비행기에서 내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숙소를 찾아가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생고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을 진행하던 PD라서인지, 이번에도 출연자들을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참 인정머리가 없더군요. 하지만 평균 나이 76세에 달하는 할아버지들을 젊고 건강한 '1박2일' 멤버들과 똑같이 여길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짐을 부쳤더라도 장조림 가방 하나 대신 맡아줄 스태프가 없었을까 생각하니, 저는 좀 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다 같이 먹자고 가져온 건데 말이죠.

 

 

소녀시대의 써니, 포미닛의 현아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고 속여서 이서진을 섭외한 꼼수도 솔직히 제 눈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대중의 반응이 폭발적이니 결과적으로는 잘 된 셈입니다. 앞으로 이서진은 오랫동안 연예인 활동을 계속할텐데, 이번 '꽃보다 할배' 출연을 통해 엄청난 긍정적 이미지를 얻게 될 듯 싶거든요. 대선배들을 모시고 여행하느라 물론 힘은 들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오히려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공항에서 할배들이 이서진에 대해 사적으로 나누었던 대화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건 몹시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이었죠. "쟤 결혼은 했나?", "아니, 그... 정은이랑 사귀었었잖아.." 백일섭과 박근형은 그 순간 전혀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고 있는 듯했는데, 이런 대화가 설마 방송에 그대로 나갈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요? 마땅히 편집했어야 할 부분인데, 나영석 PD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회 방송 말미에 '구야형' 신구가 흐뭇하게 하회탈 미소를 머금으며 내뱉은 한 마디는, 내내 심드렁하던 제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 내가 죽어갈 때도 이게... 이런 모양이 잔상으로 남아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래서 즐겁게 동참했어, 나는..." 아, 그랬군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인생도 이제 황혼녘에 가까워졌는데, 억겁의 세월 속에 내가 잠시 머물다 갈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그 마음... 네 명의 할배들 모두가 함께 지니고 있을 그 마음이 제 가슴에도 뭉클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더욱이 젊은 시절부터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과 모처럼 시간을 맞춰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우리의 꽃할배들은 무척이나 행복했을 듯 싶더군요.

 

 

아마도 이 생에 다시 경험하기는 어려울 시간들... 한 번뿐이기에, 마지막이기에 더욱 꿈결같이 소중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비록 몇 가지 불편한 점이 눈에 띄더라도, 저는 이 프로그램을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제 파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면, 저 역시 낯선 풍경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설렘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 못 보고 떠날 아름다운 것들은 여전히 많고, 조금만 너그럽게 생각한다면 무례와 불친절도 그들의 부족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은발의 구야형 신구 할배가 그 미소와 한 마디로 꽁꽁 얼어붙었던 제 마음을 녹여 주었네요. 그래서 참 고마웠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