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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유격훈련, 여왕의 교실보다 인간적인 군대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진짜 사나이' 유격훈련, 여왕의 교실보다 인간적인 군대

빛무리~ 2013. 6.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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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훈련을 흔히들 군대 훈련의 꽃이라고 한다죠. 이미 군대에 다녀 온 사람들은 돌이켜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공포의 훈련인데, '진짜 사나이'의 연예 병사들 참 고생이 많습니다. 백마부대, 화룡대대에 이어 해룡연대에서 세번째 병영체험을 하게 된 그들은 해발 828m, 악명 높은 화산 유격장으로 끌려가(?) 꼼짝없이 지옥의 유격 훈련을 받게 되었군요.

 

내레이션은 원로배우 변희봉씨가 맡으셨는데, 그분의 목소리만으로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신 아버님의 마음을 절절히 느끼게 했으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주에 원로 여배우 김영옥씨의 내레이션도 좋았는데, 이제 차츰 '진짜 사나이'의 제작진도 이 프로그램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초반에 여자 아이돌의 목소리로 들려오던 내레이션은 계속 "오빠"라는 단어를 내뱉는 바람에 좀 낯간지럽기도 하고, 진지한 병영생활 자체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도 있었는데, 어머님 아버님을 연상시키는 원로배우들의 목소리가 나직히 깔리니 한결 더 실감도 나고 감동적이더군요.

 

 

그러나 유격훈련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빨간 모자의 ‘악마’ 조교들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곳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처음 맞이하며 자기 소개를 할 때 스스로 자신의 별칭을 밝히는데 '피바다', '구토유발자', '시한폭탄' 등 그 이름들부터가 심상치 않네요. "나 이런 사람이니까 각오들 해라!" 하고 아예 대놓고 선언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갑작스레 닥치는 고통도 견디기 어렵지만, 고통이 닥쳐올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 피할 방법이 없어 그냥 속수무책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심정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조교들의 자기 소개는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유격 훈련의 1단계는 그 이름도 유명한 'PT체조' 였습니다. 특히 유격체조의 꽃이라 불리는 PT체조 8번 '온몸 비틀기'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통을 수반한다더군요. 하지만 '피바다' 조교 이상훈 중사는 지금의 고통이 아버지의 어깨보다 가볍고 어머니의 산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병사들에게 '어머니의 마음' 노래를 합창시켰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면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 나중에 훈련을 마친 그들은 이야기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어깨 부상에도 동료들의 고통을 그냥 멀뚱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무리해서 PT체조에 뛰어들었던 김수로가 병원 검진 결과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과연 김수로가 빠른 시간 내에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다시 '진짜 사나이'에 합류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샘 해밍턴은 언제나 구멍 병사 1호지만, 이번 유격 훈련에서는 특히 심각했습니다. 샘의 유격번호 35번은 조교들의 입에서 줄기차게 호명되었고, 그 때마다 샘은 "35번 교육생"이라고 외치며 얼차려를 받아야 했지요. 특히 유격훈련 제2단계 '줄 잡고 물 건너기'에서는 '매의 눈' 조교 정상택 병장의 지휘에 따라 밧줄 하나에 매달려 긴 폭의 물을 건너가야 했는데, 샘의 현재 몸무게와 체력으로는 성공을 바라기 힘든 미션이었습니다. 게다가 첫번째 시도에서 실패한 샘의 머리에는 기이하게도 밧줄이 살포시 걸쳐졌고, 그 우스꽝스런 모습에 몇몇 동료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덕분에 모두 기합을 받기도 했습니다. 

 

"웃깁니까? 전우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그게 웃깁니까?" 엄밀히 따지면 샘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지만, 동료들이 자기 때문에 기합받는다고 생각한 샘의 마음은 점점 더 위축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자신 있느냐고 묻는 조교에게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하더니 "자신 없습니다" 라는 의기소침한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너무 뚱뚱합니다... 지금 105kg 나갑니다." 하지만 매의 눈 조교는 단 한 마디의 변명도 용납하지 않더군요. "뚱뚱하면 다 떨어집니까? ... 105kg 나가면 무조건 떨어져야 되는 겁니까? ... 그래서 자기 가족을 지켜낼 수 있습니까?... 어머니가 호주에 계신데, 지킬 자신이 없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죠? 자막에는 조교가 샘의 자존심을 자극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매의 눈 조교의 이런 말들 속에서 진심으로 샘을 응원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어머니를 생각하며 샘은 다시 한 번 용기 내서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매의 눈 조교는 얼차려를 시키는 대신, 유격장에 있는 동안 체력을 길러서 강한 전사가 되어 퇴소하라고 격려해주고, 동료 병사들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훈련에 임한 샘에게 박수를 쳐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한 병사가 훈련 중 어려움에 처하면 동료들은 힘찬 목소리로 "전우야, 힘내라!" 외치며 응원을 했습니다. 두 명의 신입 중 장혁은 에이스답게 가장 모범적인 자세로 훈련을 통과했으나, 여리여리한 소년병사 박형식은 이번에도 난관에 부딪혔죠. 덕분에 흙탕물 속에 얼굴을 처박고 얼차려를 받는 극한상황까지 몰렸으나, 어디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조교가 시키기도 전에 스스로 재도전 의지를 밝히며 당차게 나서는 모습은 매우 기특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세가 좀 어설프긴 하지만 멋지게 도하에 성공한 박형식... 이렇게 해서 '줄 잡고 물 건너기' 훈련은 아주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어요. "유격은 전우애다!", "유격은 도전 정신이다!", "유격은 나를 뛰어넘는 것이다!" 라는 세 가지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말입니다.

 

 

제3단계의 '엮어가기' 훈련 역시 매우 고난도의 미션이라 샘은 또 한 차례 위기에 봉착했지만, 재빨리 아래에서 받쳐 준 장혁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혼자 극복하게 놔두지 않고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구토유발자' 조교 김유석 병장에게 기합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교는 서로 돕는 전우애를 가장 큰 덕목으로 치며 그들의 훈련을 칭찬해 주더군요. 무조건 삭막한 곳인 줄만 알았던 군대에서 그렇게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는 순간, 가슴속에는 뭉클한 카타르시스가 차오릅니다. '진짜 사나이'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4단계 훈련인 '참호 격투' 역시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지요. 격투 중에도 샘의 어깨를 붙잡고 너무 해맑게 활짝 웃던 이름 모를 병사의 얼굴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한참 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물론 극한상황을 체험케 하는 고통스런 곳이겠지만, 그래도 이번 주에 시청한 '진짜 사나이'에서는 짙은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웬일인지 제 머릿속에는 지난 주에 새로 시작된 드라마 '여왕의 교실'이 떠오르더군요. 여교사 마여진(고현정)이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가차없이 퍼붓던 그 생생한 독설들이 말입니다. "차별? 그게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거, 이건 너무 당연한 사회규칙 아닌가?"
 
 

 

"너희들은 사회에서 행복하게 특권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1%, 백 명 중에 한 명이야. 그럼 나머지 99%는 어떻게 살까? 차별이야, 부당해, 잘못됐어... 술 마시면서 그렇게 떠들면서 사는 거지. 대부분의 너희 부모들처럼. 하지만 쓸데없어... 스포츠 스타? 아이돌 스타?... 너희들이 그런 재능을 타고났고 부모의 든든한 경제적 후원을 받고 있다면, 지금 여기 서울 변두리 공립 초등학교의 6학년 교실에 앉아 있을까? 착각하지 마. 너희들 부모 만큼이나 너희들도 별거 없는 경우니까."

 

얼마나 대단한 소신에 따라서 내뱉은 말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눈꼽만치의 우정이나 인간다움을 허용치 않고, 성적 위주의 무한 경쟁만을 부추기며, 심지어 부모의 이름까지 싸잡아 모욕하는 마여진의 교육 방식(?)은 참으로 쇼킹했지요. 친구의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아이에게는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벌을 주는 교사..;; 그런 식으로 해서 얼마나 면역력이 길러지고, 사회의 벽을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에는 정신나간 짓이었습니다. 스폰지처럼 흡수력이 좋은 아이들의 심성에 교사의 비뚤어진 가르침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면 어쩌려는 걸까요? 드라마는 당연히 좋은 결말로 흘러가겠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여왕의 교실'에 비한다면, 힘든 훈련 속에 더욱 뜨거운 전우애를 다질 수 있고, 자기를 극복하는 힘과 도전 정신을 길러주는 군대는 훨씬 나은 학교라고 생각되더군요. 왜 군대를 갔다 와야만 '진짜 사나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군대에 가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진한 땀과 우정의 향기를 뿜어내는 '진짜 사나이' 덕분에 모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주말 저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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