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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2' 왜 그들은 슬픈 노래를 싫어할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2' 왜 그들은 슬픈 노래를 싫어할까?

빛무리~ 2013. 6. 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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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의 획기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나는 가수다' 시즌1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그 동안 편곡이 뭔지도 잘 몰랐던 시청자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편곡의 맛'을 여지없이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나가수' 시즌1은 하늘이 주신 작품이었어요. 명곡을 훼손시키지 않고 살짝 다른 빛깔의 옷을 입힘으로써 신선함을 느끼게 하고 원곡의 감동마저 극대화하는, 그렇게 훌륭한 리메이크곡이 제대로 뽑혀 나오는 건 10년이 지나도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나가수'에서는 한 달에 대여섯 곡씩이나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시간이 흐르고 시즌2에 접어들면서 초반의 기세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그래도 편곡의 놀라운 가치 하나는 확실히 인식시켜 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가수'의 아류라는 멍에를 쓰고 시작되었지만, 이제 '불후의 명곡2'는 참 괜찮은 프로그램이 되었네요. '나가수'가 끝나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성도 예전같지 않은 지금, 기존 가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모여 오래된 명곡들을 색다른 편곡으로 불러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기회로 남아있는 프로그램이죠. 오랫동안 묻혀있던 실력파 가수들에게는 다시 세상에 나설 수 있는 빛의 통로가 되고, 시청자에게는 잊었던 명곡들의 은은한 향기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절대 '불명2'를 탓하거나 트집 잡고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더랍니다. 편곡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른 노래로 만들어 버린 걸 볼 때면,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거든요. (비교해 보자면 '나가수'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드물었는데, '불명'에서는 자주 발생하고 있음) 게다가 요즘 젊은 가수들은 아주 슬픈 노래를 한껏 신나는 노래로 바꾸어 펄쩍펄쩍 춤을 추고, 랩을 첨가해서 속사포처럼 떠들어 대고, 때로는 코믹 버젼의 상황극까지 만들어 퍼포먼스를 하더군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취향을 떠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편곡을 그렇게 해서는 좋은 리메이크작이 절대 탄생할 수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에는 그 원작자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거든요. 원곡이 슬프다는 건, 그 노래를 만들 때 원작자의 마음이 슬펐다는 겁니다. 자신의 슬프고 쓸쓸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부어서 만든 노래라는 거예요.

 

 

그런데 타인이 자기 식대로 편곡을 한답시고 슬픈 감정을 묵살하고 즐거운 감정으로 바꿔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작사 작곡을 해서 새로운 자기 노래를 만드는 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본인은 즐거운 감성을 노래하고 싶겠지만, 원곡에 담긴 슬픈 감성과 충돌하다 보면 결국은 이도저도 아닌 게 되거든요. 물과 불처럼 충돌하는 두 개의 감성을 하나의 노래에 담아 놓고, 거기서 어떻게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지,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불명2'를 시청하면서 이런 불만을 꾸준히 조금씩 느껴 왔는데, 못마땅한 감정이 극대화된 경우는 꼭 두 번이었어요. 1년여 전에 방송되었던 동물원의 보컬 '김창기' 편과 이번 주에 방송된 '조덕배' 편이었죠. 그 때 '김창기' 편을 보고도 불만을 삭이지 못해 한 편의 글을 포스팅했었습니다. (불후의 명곡 김창기 편, 사라져버린 쓸쓸함의 감성 <--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 보세요^^)

 

차라리 격렬한 슬픔을 절규하는 노래라면 빠른 템포와 밝은 감성으로 바꾸어도 거부감이 적습니다. 오히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웃음이 터져나오는 경우도 있고, 격한 감정은 격한 감정끼리 통하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김창기와 조덕배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아주 잔잔하고 쓸쓸한 감성을 담고 있거든요. 비가 와도 초여름 장마비처럼 주룩주룩 내려 흠뻑 젖는 게 아니라, 늦가을 스산한 바람 속에 오는 듯 마는 듯 가늘게 내리며 옷깃을 천천히 적셔가는 느낌이죠. 이토록 미묘한 감성이 담겨있는 작품들은 사실 건드리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아니, 어쩌면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인지도 모르겠어요.

 

 

더 포지션의 '꿈에'와 문명진의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는 원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서 그냥 무난했습니다. 가창력은 뛰어나지만 딱히 조덕배의 원곡보다 좋다는 느낌은 없더군요. 그리고 주석&임정희의 '뒷모습이 참 예쁘네요'는 조덕배 노래 중 거의 유일하게 빠른 템포의 밝은 노래여서인지 흔히 말하는 요즘 스타일에 맞는 편이었습니다. 엠블랙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의 경우는 아이돌 버젼으로 바꾸느라 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원곡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살려두었고... 그런데 문제는 '나의 옛날 이야기'를 부른 바다의 무대였습니다. 조덕배의 원곡을 제가 너무 좋아했던 탓일까요? 바다의 가창력은 역시 훌륭했지만, 그리고 저는 평소 그녀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 무대는 정말 쇼킹했습니다. 의상도 춤도 창법도..ㅜㅜ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 ...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네요... 아니, 내 노래에다가 무슨 짓을 해 놓은 거야, 지금? ... 땡큐!" 바다의 무대를 보고 나서 전설 조덕배의 감상평은 이러했습니다. 물론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불후의 명곡' 특성상 그 자리에서 좋다고 말해야지 안 좋다고 말할 수 없어서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바다가 이 노래로 리메이크 앨범을 내고 싶다고 말하자 MC 신동엽은 저작권료가 있으니 당연히 좋아하실 거라고 부추겼고, 조덕배는 "오히려 부탁은 내가 하고 싶다"면서 선선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판단할 때 이건 완전히 다른 노래라서 말이죠. 조덕배 작사 작곡 '나의 옛날 이야기'의 리메이크 버젼이라고 해도 괜찮은 건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오래된 노래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결국은 좋은 거라고 봐야 할까요?..;;
 

바다는 노래하기 전 인터뷰에서 말하길 "생각하기 나름"이라면서, 자기는 "애잔함을 자축하는" 느낌으로 이 쓸쓸한 노래를 '축제'로 만들어 봤다고 자신있게 선포했지만, 저는 애잔함을 자축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을 영원히 기다린다는 내용인데... "응답받지 못한다 해도 진정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 이런 정도로 해석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뭐 기뻐서 신나게 웃으며 펄쩍펄쩍 뛰는 축제까지 될 수가 있겠어요? 그게 이해가 되나요?..;; 바다의 무대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지만, 마지막 무대에 오른 서인영의 '너풀거리듯'도 비슷한 식이었습니다. 너풀거리며 나비 쫓아 떠나버린 애인을 그리워하는 쓸쓸한 노래인데, 서인영은 시종일관 활짝 웃는 얼굴로 귀엽고 섹시한 춤을 추면서 경쾌하게 부르더군요.

 

 

조덕배의 노래를 부르겠다더니 원곡의 감성은 몽땅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내고 자신들만의 감성을 넣어 완전히 다른 노래로 바꾸어 버린 바다와 서인영의 무대를 보며, 저는 얼마 전에 시청했던 '히든싱어'에서 주영훈이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싫어해요. 한 20년 전의 곡들을 보면 슬픈 노래가 많았거든요. 그 때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슬픈 노래를 듣기 싫어해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밝은 노래를 듣겠대요." 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노래 중에도 슬픈 곡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드물죠. 그리고 몇 곡 안 되는 슬픈 노래들도 20년 전쯤의 노래들과 비교하면 그 느낌이 다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애절함'은 증폭되었지만 '쓸쓸함'은 사라졌다고나 할까요? 요즘 사람들의 감성은 '신나는 축제' 또는 '애끓는 절규'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나 봅니다. '잔잔한 쓸쓸함'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그런 바다가 '전설 조덕배' 편의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내가 정말 이상한가보다..." 라는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꾹꾹 눌러 두자니 너무 답답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노래를 워낙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신나는 무대였으니까, 방청객들도 그 무대를 함께 즐겼으니까 투표했을 거라고 이해는 하지만... 제가 수십년 동안 아끼고 사랑해 왔던 조덕배의 노래가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무대를 본 제 느낌은 약간 상처받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상실감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요즘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싫어할까요? 왜 슬픈 감성을 멀리하고 기피하려는 걸까요? 슬픔에서 전해지는 카타르시스도 분명 있는 건데 말이죠. 생각해 보니 노래만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도 새드엔딩은 무척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새드엔딩이 될 듯한 분위기가 보이면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한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난리가 나거든요. 하지만 작품에 따라서는 새드엔딩이라야 훨씬 완성도가 높고 감동도 극대화되는 경우가 분명 있는데 말입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 시대의 분위기에 맞추어 감성도 달라졌다는 것쯤은 알겠는데,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20년 전의 젊은이들과 비교했을 때... 더 행복한 걸까요? 아니면 더 불행한 걸까요? 거리에 온통 매캐한 최루탄 연기로 가득해서 학교 다니기도 힘들고 무서웠던 20여년 전과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겉으로나마 평온해진 요즘은 더 행복할까요? 아니면 아날로그식의 온정이 남아있던 그 때보다 훨씬 개인주의화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극심한 취업 경쟁에 시달리며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요즘의 청춘이 속으로는 더 불행할까요? 슬픈 노래를 싫어하고 밝은 노래만 듣고 싶어하는 이유가 행복해서인지 불행해서인지, 저는 도무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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