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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교실' 강찬희, 소름끼치는 현대판 엄석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여왕의 교실

'여왕의 교실' 강찬희, 소름끼치는 현대판 엄석대

빛무리~ 2013. 7. 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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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아역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여왕의 교실'에 또 한 명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나타났습니다. 초반에 심하나(김향기)의 남자친구로 등장하여 과감한 놀이터 키스신(?)을 선보였지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는 설정 때문에 곧바로 퇴장했던 김도진(강찬희)이 다시 돌아왔거든요. '여왕의 교실' 작가들은 아마도 '신사의 품격' 팬이었던 듯 김은숙 작가의 남녀 주인공 김도진, 서이수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이건 무슨 장난인가 싶을 정도로 뜬금없는 설정이라 조금은 황당했답니다. 1회에서 심하나는 가슴 아픈 첫키스의 추억을 남기고 떠난 첫사랑 김도진이 사실은 옆 반 서이수와도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었죠. 그래서 6개월만에 다시 만난 김도진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김도진은 놀라운 언변과 현란한 처세술로 단숨에 6학년 3반 아이들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김도진은 한 마디로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와 같은 캐릭터였죠. 그가 전학을 오자마자 폭력, 속임수, 협박, 회유 등 각종 비열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굴복시키고 학급 내 서열 1위로 등극하는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초반에는 별 의미도 없이 초등학생들의 키스신을 삽입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엇지만, 알고 보니 심하나와의 키스신은 김도진의 재등장을 위해 미리 깔아 둔 포석이었어요. 김도진은 눈엣가시와도 같은 오동구(천보근)를 제거하기 위해 그 사건(?)을 입에 올리게 되는데, 11회 엔딩 무렵에 방송된 그 장면은 김도진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이들의 사회를 소재삼아 어른들의 사회를 풍자했듯이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인데, 점차 김도진에게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인간들의 사회란 과학 기술이나 사회 제도의 발전과는 별 상관없이 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고, 정의로운 자와 비열한 자가 있으며, 권력에 반항하는 자와 순응하는 자가 있지요. 신흥 세력이 나타나 지배자가 바뀌어도 단지 권력이 이동했을 뿐 부정부패와 비리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이리저리 부화뇌동하는 자들이 다수이나 드물게는 독야청청 제 갈 길을 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시대와 공간적 배경이 모두 바뀌었지만, 강자가 약자들을 아우르고 지배하게 되는 과정은 2013년 서울 초등학교의 김도진이나 1960년대 소도시 국민학교의 엄석대나 전혀 다를 바가 없더군요.

 

지금은 부잣집 외동아들로 사랑받고 있지만, 사실 김도진은 고아원 출신의 입양아입니다. 지금의 양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은 7살 때였는데 그 전까지 무려 5번이나 되는 파양 경험을 갖고 있다니, 어린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하기도 힘든 지경이네요. 언제 또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보니 이상 성격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몹시 가엾기도 합니다. 거리의 애견 샵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며 즐거워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도진이는 어두운 눈빛으로 차갑게 비웃는군요. "놀고들 있네. 키우다 맘에 안 들면 버릴 거면서!"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가 불과 6개월만에 돌아온 이유는 "엄마가 너무 외로워하며 나를 그리워하셔서" 라고 도진이는 하나에게 말했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캐나다에서 폭력 사건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만큼, 사무치게 외로웠던 건 엄마가 아니라 도진이였죠. 그가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심각하게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와 현란한 언변으로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6학년 2학기 반장으로 선출된 김도진은 새로운 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는데, 그 마수에 걸려든 첫번째 희생양은 우등생 손인보(강현욱)였습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 점수를 기록할 때 손인보의 점수를 일부러 높여 주고는, 그것을 빌미로 협박하기 시작한 거였죠. 단순히 새 반장의 호의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던 인보는 꼼짝없이 약점을 잡히게 되어, 김도진의 숙제를 대신 해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김도진의 세력권이 넓어지자, 반장에게 아부하는 아이들은 청소 당번에서 제외되었지만, 그렇지 않거나 만만한 아이들은 계속해서 돌아가며 청소 당번을 맡게 되는 등 부작용이 심해졌지요.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긴 했지만, 벌써 갖가지 이유로 김도진의 세력권에 포섭되어 버린 아이들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김서현(김새론)이 나서서 바로잡으려고도 해 보았지만, 김도진에게 돈을 빌려 PC방에 가는 등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부당한 일이 없었다며 증언을 거부했고, 게다가 김도진의 매끄러운 궤변까지 더해지니 아무리 전교 1등 김서현이라도 별 수 없이 물러나고 말았군요. 2학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마녀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다며 좋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담임 마여진(고현정)의 자리를 새로운 폭군 김도진이 반장이라는 이름으로 차지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김도진의 신경을 거슬리는 눈엣가시가 발생했으니, 바로 의리의 동키호테 오동구였습니다. 감히 대놓고 반항을 했으니까요. 똑똑한 김서현은 건드리기 어려워도, 오동구 쯤이야 쉽게 짓밟을 수 있을거라고 김도진은 생각했죠.



하지만 오동구는 의외로 만만찮은 상대였습니다. 반에 셔틀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냐면서 자기 심복들을 구워삶아 오동구를 잡아 보라고 해도, 아이들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거든요. 일단은 착하고 유머러스하고 의리있는 오동구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오동구의 단짝인 심하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일련의 가혹한 왕따 사건에 대해서 심하나에게 정식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던 참인데, 예전에 뽀뽀까지 허락할 정도로 자기를 좋아했던 심하나로부터 "너같은 찌질한 놈보다 오동구가 백배 천배 더 멋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김도진은 살짝 눈이 뒤집히고 말았던가봐요.

 

체육관에서 공 정리를 도와달라며 오동구를 부르더니, 슬쩍 심하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죠. "너 심하나 좋아하냐? 심하나는 나 좋아하는데!" 오동구가 "무슨 소리야. 뻥치지 마!"라고 응수하자 김도진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난 키스도 했는데... 너도 했냐? 별로지? 아이고, 심하나는 아무하고나 막 하는구만, 막 해... (오동구 : 말 함부로 하지 마. 심하나 그런 애 아냐!) 아니긴, 설마 그 애가 너랑 첫키스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애 완전 쉬운 애야."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오동구는 김도진의 얼굴을 쳐서 코피를 내고 말았습니다. 글쎄 뭐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좀 싸울 수도 있는 건데, 교감은 김도진 양부모의 눈치를 보는 건지 무척 오버하면서 마여진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마여진은 단칼에 이런 답변을 내놓는군요. "오동구를 강제 전학시키겠습니다!"

 

 

할아버지 오여사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연하게 버티던 오동구가 화들짝 놀라며 안색이 변합니다. 대전에 내려가면 이모 집에서 살 수도 있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근처 고아원으로 가겠다고 했던 오동구였거든요. 한편 김도진은 드디어 성공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띠는데, 이 모든 일들을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눈매에 담아 둔 마여진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엄석대의 담임 선생은 게으르고 무신경해서 아이들을 방치해 두었지만, 지금 마여진의 행동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견고하던 엄석대 천하가 붕괴된 이유는 강인하고 열정적인 새 담임 선생 때문이었는데, 과연 김도진 천하를 붕괴시킬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만약 여기서도 담임 선생 마여진의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어른들의 사회에 빗대어 말하자면, 그건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강력한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아이들 스스로 힘을 합쳐 김도진을 제압해야만 진정한 승리라 할 수 있고, 달콤한 열매 또한 온전히 아이들의 소유가 될 수 있겠죠. 물론 그 해결 과정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야 할 테고요.  

 

 

교장 용현자(윤여정)는 일찍부터 이와 같은 사태를 염려하고 있었죠. 지난 몇 년간 마여진이 왜 교사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교장으로서는 "지난 번 마선생이 겪었던 아이랑 묘하게 닮은" 김도진이 하필 마여진의 반으로 전학 온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던가 봐요. 원래는 양선생(최윤영)의 6학년 2반으로 가야 할 상황이었지만, 고나리(이영유)의 지갑 절도 사건과 왕따 주도 사건을 학적부에 기록하겠다는 마여진에게 앙심을 먹은 나리 엄마(변정수)가 일부러 문제 학생을 3반으로 보낸 거였죠. 마선생의 교사 생활이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고, 절대 지난 번처럼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던 교장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여진의 과거가 한 뼘쯤 궁금해지긴 합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여왕의 교실'이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평가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데, 물론 각각의 캐릭터 구축과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지는 주제의식은 커다란 약점입니다. 아무리 어른들 사회의 축소판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들이기에, 교육적인 부분의 주제의식이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과연 마여진은 김도진이라는 못된 송아지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정한 교육자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을지, 아이들은 또 어떤 식으로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게 될지... 이 작품이 진정한 명작으로 탄생할지 어설픈 원작 흉내내기에 그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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