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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황금의 제국

'황금의 제국' 박근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빛무리~ 2013.07.16 06:30

 

예상보다는 다소 이른 시기에 한정희(김미숙) 여사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황금의 제국' 5회에서 한정희는 24년 동안 숨겨왔던 원한과 욕망을 남김없이 드러내었군요. 후계 다툼에 관심이 없는 아들 최성재(이현진)를 설득하기 위해 그의 생부가 어떻게 죽었는지, 또 어미인 자신은 어떻게 해서 원수의 아내가 되었는지를 낱낱이 털어놓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옛날 한정희는 청마건설 사장 배영완의 아내였고, 최동성(박근형)은 청마건설에 시멘트를 납품하던 업자였죠. 그런데 불량 시멘트가 원인이 되어 청마건설이 짓고 있던 아파트가 공사중에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책임을 지게 된다면, 맨손으로 10년 동안 일구었던 기업은 그대로 날아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죠. 때마침 최동성과 함께 성진 시멘트를 창업했던 동생 최동진(정한용)은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최씨 형제는 부패한 권력을 이용해 부실 시공의 책임을 모조리 청마건설에 뒤집어 씌웠고, 대표 배영완은 남산으로 끌려가 열흘만에 풀려났지만 극도로 피폐해진 심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군요. 상을 치르고 일주일이 지난 후, 최동성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남편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고 있던 한정희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최동성의 품에 먼저 안겼고 그로부터 열 달 후, 간절히 기도한 소망대로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스물 네 살의 말쑥한 청년이 되어 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진건설은 네 아버지 회사야. 알잖니, 청마건설... 우리 성재가 그룹 회장이 되면, 초상화부터 바꿔야지!"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최동성 회장이 최서윤(이요원)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 아비는 무서웠다. 맨손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자신이 없었어... (중략) 상 치르고 일주일이 지나서 찾아갔다. 돈이라도, 아니면 아무거라도 돕고 싶었어... 울고 있더라. 불도 안 땐 방에서, 그 냉골에서, 불도 안 켠 채 구석에서... 나는 죄를 지었는데, 고맙게도 하늘은 선물을 주셨어. 네 엄마... 그리고 성재... 나한테 너희한테 고마운 사람이다. 애비 떠나고 없어도 네 엄마를 부탁한다, 서윤아!" 놀랍게도 이 비정한 재벌 총수의 목소리에는 애틋한 회한과 사랑이 가득하더군요. 뇌종양과 치매에 시달리며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딸에게 당부하는 유언은 더없이 무겁고 진실했습니다.

 

 

저는 지난 회 리뷰에서 한정희의 과거와 최성재의 생부에 관한 추측을 다루었는데, 비슷한 부분도 좀 있지만 관계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빗나간 셈이네요..;; 저는 최동성 회장이 한정희에 대한 욕망을 품고 일부러 그녀의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거라 예상했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그녀의 남편을 죽게 만든 후 속죄의 마음으로 가련한 여인을 데려온 거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의외의 대반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4남매 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 최성재...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설마 최동성 회장이 전혀 못 했을까요?

 

잉태 시기가 생부의 죽음과 거의 맞물려 있었다면, 충분히 헛갈릴 수는 있었던 부분이겠죠. 남편의 상을 치른지 일주일 후, 한정희는 의도적으로 최동성의 품에 안겼으니까요. 그러나 최회장처럼 무서운 사람이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 아이가 자기 핏줄이라고 믿었을 리는 없습니다. 의심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고, 지금처럼 정확한 유전자 검사까지는 아니라도 무슨 방법을 통해서든 증명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최동성은 한 번도 의심하는 기색 없이 최성재를 사랑했고, 한정희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요? 최성재가 사실은 자기가 죽인 배영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한정희의 온화한 미소 속에 숨겨진 칼날까지, 모두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인간미의 대반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진그룹 회장이라는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타인을 짓밟고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며 지나왔을 텐데, 수많은 죄악과 원한들에 일일이 속죄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괴로움에 어찌 살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선량하고 심약한 인물이라면 절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겠죠. 그런데 청마건설 사장 배영환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마도 최동성의 생애 처음으로 저질렀던 극악한 행위였던 모양입니다. 그 후로는 차츰 무디어져 갔겠지만, 첫번째 죄악의 기억은 마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처럼 잊혀지지 않고 가슴 속 깊이 새겨졌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항상 곁에서 헌신적인 내조를 아끼지 않는 한정희의 모습을 보면,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었겠죠. 그녀의 마음 속에 여전히 자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있음을 알면서도, 최성재가 자기 자식들을 둥지에서 밀어낼 뻐꾸기 새끼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고 있는 거라면, 처음에는 속죄로 시작했지만, 최동성은 점차 진심으로 한정희를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참 얄궂은 운명이죠? 후계자를 최서윤으로 지목한 걸 보면 한정희와 최성재에게 성진그룹 전체를 넘길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그가 치러야 할 죄의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제 또 얼마나 지독한 폭풍우가 몰아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박경수 작가는 온통 황금에 눈 먼 악인들의 세상을 그리면서도, 그 탐욕의 언저리에 자리잡은 한 조각 양심과 따스한 인간미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군요. 자기 손으로 비정하게 쳐냈으면서도 속으로는 동생과 큰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는 최동성... 병든 몸에 가족도 없는 불쌍한 처지의 아내 윤희(이일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10년 동안 병상을 지켜왔던 최민재(손현주)... 막강한 재력의 사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임에도 죽은 며느리와의 도리를 생각하여 아들의 재혼을 막으려 했던 최동진... 처음에는 돈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장태주(고수)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윤설희(장신영) 등... 사실 이들은 황금의 권력을 손에 움켜쥐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악인들인데, 그들의 내면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인간미는 오히려 슬픔과 처연함을 더합니다.

 

아, 저들도 원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황금이 지배하는 이 세상 속에서는 다들 그렇게 메마르고 차가워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 선함과 악함을 떠나 모든 인간이 불쌍하게 여겨지는 거죠. 이제 거대 자본의 힘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 장태주에게, 다시 비상을 꿈꾸는 최민재가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내밉니다. "성진그룹 최동성 회장... 싸인 하나로 수조원의 투자를 결정하고, 말 한 마디로 수천억의 현금을 움직이지.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백화점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수백억의 돈을 날리고도 아버지한테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나는 곳이지. 나 거기서 왔다. 다시 거기로 갈거야. 태주야, 같이 가자. 황금의 제국으로!" 하지만 그들이 가려는 곳에는 끝없이 바닷물을 들이키며 목말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아무래도 진짜 행복은 황금의 제국에 있지 않은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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