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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김미숙, 악역 중의 끝판왕 포스 작렬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황금의 제국

'황금의 제국' 김미숙, 악역 중의 끝판왕 포스 작렬하다

빛무리~ 2013. 7. 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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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THE CHASER'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경수 작가가 1년만에 신작 '황금의 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적자'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폐단이라 할 수 있는 '뒷심 부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보기 드문 수작이었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려 온 차기작인데, 아무래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청하기는 그른 듯 싶군요. 홈페이지를 둘러 본 느낌부터 쎄하더니 첫 방송을 시청한 후에는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하긴 돌이켜 보면 '추적자'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전혀 아니었죠. 볼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이끌림에 빠져들게 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도 가감없이 표현되는 잔혹한 현실은 차라리 눈 감은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 깨우기에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추적자'에는 응원할 사람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죽은 딸과 아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거대 권력과 맞서던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이 바로 그 중심이었죠.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았고, 그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했습니다. 비록 합법적인 수단은 아닐지언정 그가 하는 일들이 모두 잘 되기를 응원했고, 그의 활약을 통해 견고한 세상의 권력이 조금이나마 변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그 꿈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기대는 더욱 '추적자'를 놓을 수 없게 했었죠. 그리고 박경수 작가는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 속에서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엔딩을 이끌어 냄으로써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해 주었습니다. 91.4%라는 경이로운 투표율만으로도 비현실적 설정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도 허황되다 탓하지 않았던 까닭은, 드라마 속에서나마 이룰 수 있었던 희망이 그만큼 커다란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황금의 제국'에는 가녀린 마음 하나 기댈 곳이 없어 보이는군요. 이 곳은 서늘한 벌판이며 한겨울의 은빛 지옥입니다. 심장까지 얼어붙는 이 곳의 추위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밀랍인형처럼 창백할 뿐이네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선역(善役)이 없습니다. 털끝 만큼의 과장을 섞어 말한다면, 주인공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악역이에요. 그러니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입장에 몰입을 해야 할지,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선역이 없다 보니, 누군가에 의해 엉킨 실타래가 풀리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마저 차단된 셈입니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시도로군요. 어둠이 있어야 빛의 고마움을 알듯이 빛이 있어야 어둠의 추악함도 극대화되는 법인데, 이렇게 온통 어둠뿐이면 필연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필력과 치밀한 구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혜성처럼 나타난 괴물 작가 박경수의 능력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싶네요.

 

주인공 장태주(고수)의 등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자기를 짝사랑하는 여자 윤설희(장신영)를 적의 품에 안기게 하더니, 자기 손으로 적을 죽이고 나서는 그 죄를 윤설희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저 놈이 너를 덮치려고 했어. 너는 거부했어. 그랬더니 저 놈이 네 옷을 찢었어. 너를 때렸어. 손으로, 골프채로 때렸어. 그래서 네가... 저 놈을 찔렀어!" 장태주는 한 마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자기 손으로 윤설희의 옷을 찢고 그녀의 뺨을 세차게 연거푸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피 묻은 단검 손잡이에서 자기 지문을 닦아내더니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죠. 전화기를 들어 112를 누르고는 윤설희의 귀에 갖다 대며, 이 남자는 악마의 키스로 그녀에게 속삭입니다. "알아서 해. 나를 신고하든지... 자수를 하든지!"

 

눈앞에서 살인 현장을 목격한 직후, 피투성이 시체를 옆에 두고,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폭행까지 당한 윤설희가 어떻게 제정신일까요? 극심한 충격과 공포에 질린 그녀는 수화기 저편의 사람에게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사람을...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장태주는 정말 나쁜 놈이었습니다. 명색이 주인공인데, 적을 상대하느라 칼부림 좀 했다고 나쁜 놈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렇게 대한다는 건 재고할 여지도 없는 나쁜 놈인 겁니다.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해 놓았으니, 앞으로 당최 어떻게 이끌어갈 속셈인지 궁금하군요. 아무리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다 해도, 이미 악마로 변해버린 놈에게 감정 몰입이나 응원을 할 수는 없는 법인데 말입니다.

 

 

여주인공 최서윤(이요원)도 대다수 드라마의 보편적인 여주인공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똑똑하고 강인하긴 한데, 밝고 긍정적이거나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는 별로 찾아볼 수 없군요.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재벌의 딸로서 형제 및 사촌들과 후계 다툼을 해야 하는데, 혈육을 숙청해야 할 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그 추악한 전쟁 속에서 밝음이나 선량함이나 순수함 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추적자'의 서회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노배우 박근형이 또 한 번 대재벌 성진그룹의 최동성 회장으로 등장하는데요. 그래도 서회장에게는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은 막내딸 서지원(고준희)이 있었던 데 비해, 최동성의 자녀들 중에는 그런 이상한(?) 아이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게 훨씬 더 현실적인 설정이겠죠.

 

'추적자'에서 눈물겨운 선역이며 희망의 대변인이었던 배우 손현주도 이번에는 악역입니다. 최동성 회장의 큰 조카 최민재 역할인데요. 그의 아버지 최동진(정한용) 부회장은 젊어서부터 형과 함께 성진그룹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기에, 비록 조카이지만 그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최회장의 아들들이 무능하거나 어리기 때문에 2세들 중에서는 단연 실세였으며, 최회장이 뇌종양 수술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자 쉽게 회사를 차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최서윤이라는 계집애가 걸림돌이 되겠군요. 머지 않아 광기로 번뜩이는 눈을 지닌 장태주가 그녀 곁을 지키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허다한 악역 중에서도 제 눈길을 잡아끄는 인물은 최동성 회장의 아내인 한정희(김미숙) 여사였습니다. 단정하고 현숙하며 자애롭고 기품있는 그녀가 왜 저는 그토록 무서웠을까요? 연령대로 보아 최회장의 4남매를 직접 낳은 친모는 분명 아닌 듯한데, 최서윤은 추호의 질시도 없이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르더군요.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한 그녀... 부친이 뇌종양으로 쓰러지고 회사일까지 겹쳐 힘들어하는 서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어린 것이 혼자 애쓰는 게 가엾다고 눈물마저 글썽이는 그녀...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에도 한정희에 관해서는 온통 좋은 내용뿐이었습니다. 뇌종양 수술 후 치매에 걸려 변조차 가리지 못하게 된 최회장을 지극정성으로 간병하고, 4남매를 걱정하고 챙기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며, 집안 싸움을 말리기 위해 최동진 부회장의 집에 가서 화해를 주선하기도 하는, 격전을 벌이는 두 집안에서 그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고 지내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최서윤을 안고 토닥이는 한정희의 손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저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손가락의 커다란 반지가 무슨 절대반지처럼 보이는 거였어요. 큼직한 보석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남편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는 아내의 손에 끼워져 있기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거든요. 욕망이로구나... 저 숨겨진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날, 온 세상이 진동하겠구나 싶었죠. 제 생각엔 주인공 장태주와 맞서게 될 최후의 인물은 바로 선량한 미소의 한정희, 그녀일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모두 악역이라서 누구를 응원하게 될지, 누구의 입장에 좀 더 몰입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요.

 

'황금의 제국' 1회에서 장태주의 부친 장봉호(남일우)는 자신의 가게 하나 가져 보겠다고 평생 고생해서 차린 밀면집을 지켜내려다 화재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밀면집을 차렸던 상가 건물은 운 나쁘게도 3개월만에 신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고,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모두 떼인 채 보증금만 받고 나가라는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어 농성 대열에 참여했던 장봉호는 강제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신 85%에 3도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왔지만, 가족들은 무려 3천만원이나 되는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죠.

 

 

장태주는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고 앞날이 촉망되는 수재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광기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이며 오빠인 그가 악마로 변해버렸으니, 남은 가족들의 더욱 큰 비극도 이제 시작되는군요. 장태주의 여동생 장희주(윤승아)가 무척 예쁘고 청순하던데요. 앞으로 그 아이의 인생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고운 모습이 더욱 애잔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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