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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이요원, 탐욕 아닌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황금의 제국

'황금의 제국' 이요원, 탐욕 아닌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빛무리~ 2013. 8. 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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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을 시청하다 보면 그 누구 한 사람에 몰입하기도 쉽지 않고 응원할 대상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딱히 선역이라 할만한 캐릭터는 없고 모두 비슷한 탐욕과 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보니 인물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시청하는 저로서는 시시각각으로 몰입하거나 응원하는 대상을 바꾸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순수함을 지키고 있는 막내아들 최성재(이현진)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한정희(김미숙)와 최성재 모자를 응원했습니다. 무려 27년 동안이나 속으로 칼을 갈면서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곁을 지켜 온 한정희 여사의 캐릭터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과 재산을 모두 잃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내동댕이 쳐졌던 과거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아직도 흐르는 피가 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엾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최동성의 곁에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최후의 숨결 한 모금까지 압박하는 한정희의 태도는 너무 잔인하더군요. 아무리 그 인간 비명소리 한 번 듣자고 27년을 참아 왔다지만, 임종을 앞둔 노인이 애타게 자식을 찾는데 "서윤이는 오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차갑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싹 달아났습니다. 살아 생전에 재산이나 빼앗고 회사를 망하게 했다면 나름 통쾌한 복수라고 생각해 줬겠지만, 아무리 원수라도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쩌면 그럴 수가... 더구나 최동성은 27년간 속죄하는 마음으로 배영완의 묘소를 돌보았고, 그가 남긴 처자식을 지극 정성으로 아끼며 품어 왔는데... 늙은 호랑이의 비참한 최후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저절로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저는 최동진(정한용) 부회장의 캐릭터에도 매우 큰 호감과 연민을 느꼈는데요. 젊은 시절부터 형과 함께 성진그룹을 일으켰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으며 회사를 지켜 왔지만, 결국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하에 형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둘째아들 최용재마저 잃어야 했던 최동진의 생애는 정말 처연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서도 형으로부터 정을 떼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경영권에는 더 이상 욕심 없다는 듯 선선히 함평농장으로 물러나는 최동진의 순수한 모습은, 과연 재벌가에 저런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결하더군요. 하지만 아들 최민재(손현주)는 아버지처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최민재의 가슴 속에는 백부와의 애틋한 추억이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평생 최동성의 마부 노릇이나 하다가 버림받은 아버지 때문에 분노만 가득할 뿐이었죠. 분명 성진그룹은 최동성과 최동진 형제가 함께 일군 터전인데, 최동성의 자식들은 안방에서 태어나 편안히 거실을 지나 권력의 핵심부에 이르는 반면, 최동진의 아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해외 공사 현장에서 온갖 땀과 먼지를 먹고 한 계단씩 차례로 올라와야 했으니, 그 불공평함에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었고 능력도 있는데 이제는 규방규수처럼 자라난 사촌누이 최서윤(이요원)에게 번번히 패배하며 깨지고 있으니, 정말 억세게 불운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네요. 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끌리진 않는 캐릭터였습니다.

 

 

그건 남주인공 장태주(고수)도 마찬가지였죠. 초반에 너무 악랄한 모습을 보여준 탓인지 그의 행보는 언제나 섬뜩하고 무섭게만 느껴졌을 뿐 한 번도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어요. 별다른 노력 없이 아버지의 낙점을 받아 성진그룹을 차지하게 된 여주인공 최서윤에게도 몰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여린 듯하면서 의외로 강인하고 똑똑한 공주님의 캐릭터가 매력 없는 건 아니었지만, 특별히 선량하지도 순수하지도 않고 눈부신 천재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좀 밋밋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12회을 시청하며 제 마음은 그녀에게로 확 기울어졌습니다. 이제껏 '황금의 제국'을 보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렇게까지 몰입해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27년보다 3일을 용서 못하겠네요. 아빠가 병원에 계시던 마지막 3일... 얼마나 무서웠을까..." 친엄마 못지 않게 좋아하며 따르던 계모 한정희의 정체가 드러나자, 최서윤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주주총회를 열어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자, 성진시멘트 차명주식의 원천소유자가 한정희라는 심증이 굳어가는 상황에서도 최서윤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죠. 심지어 최동성 회장이 사흘을 넘기기 어렵다고 주치의가 말했을 때, 한정희가 남편과 단 둘이 있고 싶다며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소식이 박전무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그래도 최서윤은 믿지 않으려 했어요. "두 분 금슬이면 그랬을 수도 있어요.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을 수도... 아빠가 먼저 원했을 수도 있어요... 27년은 증오심만으로 버틸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에요!"

 

 

하지만 술김에 병실을 찾았던 큰오빠 최원재(엄효섭)의 아내로부터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해듣는 순간, 끝까지 엄마를 믿고 싶었던 최서윤의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죠. "서윤 아가씨를 불러 달라셨다네요. 장남이 눈앞에 있는데 서윤이를 불러달라고만 하셨다고 엄청 서운해 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신이 흐려서 서윤이만 찾으시는 거니까 알릴 필요 없다고 다독여 주셨대요. 하지만 나중에 이 사람 후회 많이 했어요. 아버지의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서윤이한테 이야기했을 거라고..."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증세가 가벼운 감기 합병증이라고, 며칠 후면 퇴원해서 집에 오실 거라고 속여서 유언을 듣지 못하게 한 사람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 계모 한정희였어요.

 

계모가 성진시멘트 주식을 가로챈 것보다도, 그래서 회사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보다도, 늙은 아버지가 최후의 3일 동안 홀로 겪었을 고통 때문에 최서윤은 뒤늦게 오열합니다. 좀 더 일찍 병원에 가볼 걸 그랬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후회했는데, 그게 우연이나 착오가 아니라 의도적인 악의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몇 년 후에나 알아버린 딸자식의 가슴이 찢겨져 나갑니다. 넌즈시 계모 앞에서 지주회사를 바꾸겠다고 말을 흘리자, 한정희는 최동성과의 추억을 하나씩 들춰내며 설득을 시작하는군요. "아버지한테 성진시멘트는 고향이면서 뿌리야. 든든하게 지주회사로 세워두면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최서윤의 눈에서 참지 못한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한 자식들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병실에 갇혀 쓸쓸하게 죽어간 아버지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늦게 달려갔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한정희는 물론이거니와, 사흘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을 엄마와 함께 전해 듣고도 그 사실을 숨겼던 막내동생 성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는 위독함을 알려주어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지만, 27년 동안 따스히 품어주었던 아버지를 배신한 녀석이니 제 엄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비가 떠나고 없어도 네 엄마를 부탁한다 서윤아..." 간절히 당부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군요. 사랑하던 엄마와 귀여운 꼬맹이 동생은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가족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나가게 만들 거예요. 아빠와 우리를 속인 27년... 마지막 날까지 후회하게 만들 겁니다. 말했잖아요. 아빠가 병원에 계시던 마지막 3일... 용서 안 할 거라고!" 충신 박전무 앞에서 굳은 맹세를 했건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군요. 단기 차액금 10억 달러를 손에 쥔 장태주가 성진그룹 식구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죠. 그 자리에서 본색을 드러낸 한정희와 최서윤은 정면 대결을 선포하고, 장태주의 10억 달러는 양측 모두에게 결코 빼앗겨선 안 될 키포인트로 부각되는데, 언제나처럼 장태주는 무모한 레이스를 펼칩니다. 무려 성진그룹의 절반을 요구하다니, 아무리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지만 푼돈으로 판 전체를 뒤집겠다는 그 태도는 어지간히 담대하군요. 아버지의 회사를 그토록 쉽게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는 사이, 최민재와 결탁한 한정희는 잽싸게 장태주의 손을 잡았습니다.

 

 

전세가 심히 불리하게 기울었지만,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최서윤은 생각했죠. 가족회의를 열어 한정희로부터 성진시멘트의 차명주식을 빼앗아 온다면 경영권은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에 분노하는 아들 딸과 달리, 며느리와 사위는 주판알을 튕기며 냉정한 선택을 하고 있었네요. 일단 경영권이 최서윤에게서 한정희에게로 넘어가면, 제3의 인물이 다시 공격하여 되찾아 오기는 훨씬 쉬울 수 있습니다. 최서윤은 최동성의 딸이며 생전에 친히 지목한 후계자로서 막강한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단지 후처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오랫동안 배신을 꿈꾸어 온 한정희에게는 아무런 명분도 없거든요. 게다가 최성재는 최동성의 친자도 아니니, 경영권을 지킬 방패는 하나도 없는 셈이죠.

 

결국 최원재와 최정윤(신동미)은 최서윤을 버리고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 한정희의 편에 섰습니다. 가족회의는 그렇게 무산되고, 이제 차명주식을 가진 한정희에게 장태주의 10억 달러가 입금되면 게임은 끝나버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최서윤에겐 마지막 한 수가 남아있었죠. 아무도 생각지 못한 최후의 한 수... 그것을 생각해낸 최서윤의 내면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적 승부사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겨우 스물아홉 살의 막내딸을 후계자로 지목한 최동성 회장의 안목은 과연 틀리지 않았군요.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과감히 올인,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레이스하는 그 무모한 용기는 얼핏 남주인공 장태주와도 닮았습니다. 모 아니면 도, 천국 아니면 지옥,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그 아찔한 승부의 세계.

 

 

마침 장태주는 7년 동안 동고동락해 온 윤설희(장신영)의 사랑을 받아들인 참이었습니다. 내 곁에 있으면 위험하고 다칠 테니까 떠나라고도 했었지만, 고집스레 곁을 지키는 그녀의 사랑과 의리에 감동이라도 했던가봐요. "이리 와서 안기세요. 내 뒤에 서세요. 넘어지지 말고 다치지도 말고, 조심해서 따라 오세요!" 아주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인 프로포즈로 윤설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갑자기 장태주의 눈 앞에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패가 던져집니다. "장태주씨와 나 최서윤... 결혼할까요?" 장태주의 10억을 손에 넣을 유일한 수단... 최서윤으로서는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장태주로서는 성진그룹을 통째로 삼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제안이었습니다.

 

이제 1회 초반에 방송된 내용처럼 탐욕에 눈 먼 장태주는 윤설희의 사랑을 배신하고, 살인을 저지른 후 그녀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하는 철면피한으로 변신하겠죠. 점점 악마가 되어갈 장태주보다, 저는 피하고 싶었던 잔을 끝내 집어들 수밖에 없었던 최서윤에게 마음이 쓰이는군요. 형제와 다투어 가면서 필사적으로 경영권을 지키려는 최서윤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탐욕 때문인지, 아니면 죽은 아버지의 유훈 때문인지를 지금까지는 몰랐습니다. 무능한 오빠와 언니 대신에 지키고 있다가 나중엔 조카에게 물려주겠노라고 늘상 말은 했지만, 최서윤도 사람인데 자기 가족이 생기면 어떻게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12회에서 아버지의 최후를 알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무척 순수한 인품을 지닌 캐릭터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탓인지, 욕심도 별로 없는 그녀였어요.

  

 

한정희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복수보다 사랑, 분노보다 연민이라 여기고 싶군요.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불쌍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너무 커서 그런 거라고 말이죠. 욕심없는 최서윤에게 성진그룹의 경영자 자리는 허리가 휘도록 무거운 짐이었어요. 하지만 자기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맡길 사람 없었던 아버지의 외로운 고충을 이해했기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그녀였는데,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애타게 자기 이름만 부르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군요. 행여 자식이 달려왔을 때 정신 못 차리고 있을까봐 진통제도 거부한 채 그 고통을 다 견디며, 마지막 한 마디 전하고 싶어서 버티다가 쓸쓸히 떠났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아버지가 전하려던 마지막 말은 당연히 성진그룹을 지키라는 게 아니었을까, 최서윤은 그렇게 판단했겠죠. 한정희에게 복수를 하라든가 최성재를 내치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최서윤의 입장에서는 복수가 곧 사랑일 수 있어요. 한정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빈손으로 만들어야만 성진그룹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사랑하지 않는 장태주에게 먼저 결혼을 제안하며 여자로서의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던져버린 최서윤의 선택이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네요. 과연 최서윤은 탐욕으로 가득찬 승부의 세계에서, 홀로 지키려는 그 사랑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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