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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2' 이건우의 작사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2' 이건우의 작사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빛무리~ 2012. 4. 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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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가 하차한 뒤 처음으로 방송되는 '불후의 명곡2'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새 MC로 합류한 전현무의 어리버리 좌충우돌 적응기도, 어떻게든 전현무와 손발을 맞추어 진행해 보려는 문희준의 몸부림도, 평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입담과 재치로 무대를 장악하는 신동엽도, 전부 다 흥미로웠어요. 전현무가 김구라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기는 좀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은 성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군요. 대기실에서는 MC들뿐만 아니라 출연 가수들까지 한 마음으로 뭉쳐 김구라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그 가족적인 모습이 참으로 훈훈하고 좋았습니다.

 

이번 주의 전설은 80~90년대의 전설적인 명곡들을 수없이 탄생시킨 작사가 이건우였습니다. 원래 작사가나 작곡가가 출연하면, 가수가 전설로 출연할 때보다 더욱 다양한 노래와 여러 종류의 리메이크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이번 주의 무대는 특별히 더욱 다채롭더군요. 도저히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각각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안에 깃든 사상과 주제마저 노래마다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DJ DOC의 '미녀와 야수'를 이건우가 작사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공통적인 느낌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미녀와 야수'는 아무리 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쓴 것만 같았죠. 자신이 작사한 수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고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냐고 신동엽이 묻자, 이건우는 전영록의 '종이학'과 수와진의 '파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본래 성향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DJ DOC의 '미녀와 야수'를 썼을 줄이야!

 

'파초'의 가사는 매우 종교적이며 금욕적입니다.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 해...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수와진의 맑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원래 욕망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정열은 본질적으로 순하지 않습니다. 거칠고, 뜨겁고, 강하죠. 따라서 맹목적으로 정열과 욕망을 쫓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파초'의 가사는 불타는 정열과 본능적 욕망을 절제며 순하게 살도록 권고하는데, 이는 곧 자기를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살라는 뜻이니, 대중가요 중에서 이보다 더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10년쯤 흐른 후에 쓰여진 DJ DOC의 '미녀와 야수'는, 모든 금욕과 이성 따위를 내팽개치고 순간적인 욕망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격적일 만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성은 행위 앞에 노예~ 관념은 이유 없는 참견~ 금지된 사랑이라 해도~ 난 너를 놓칠 수가 없어~ 이 밤이 다시 오진 않아~" 발표 당시 너무도 원색적인 내용과 마치 '원나잇 스탠드'를 연상시키는 듯한 가사 때문에 사회적 물의까지 빚었던 노래가 바로 '미녀와 야수'입니다. 특히 "금지된 사랑이라 해도 너를 놓칠 수 없다"는 가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든 말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따르겠다고 당당히(또는 뻔뻔히) 선포하는 내용이죠. 

 

 

 

저는 지금까지 이 노래의 작사가가 이건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DJ DOC와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에 막연히 그 세 사람 중 한 명이 만든 노래인 줄 알았으며, 그렇지는 않더라도 훨씬 젊은 연배의 신세대 작사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수와진의 '파초'를 쓴 사람과 동일인물이었다니,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증명하는 예가 또 있을까요?

 

자신이 만든 노래 중에서도 '파초'에 깊은 애착이 간다고 했으니, 이건우가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삶은 분명 '파초'에 그려진 것과 같은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삶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내면에는 꺼지지 않은 정열과 욕망의 불씨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을 만큼 강렬한 욕망에 휘둘릴 때가 있지요. 그 아찔한 순간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형상화시킨 노래가 바로 '미녀와 야수'입니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상반된 기질을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이건우의 능력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글솜씨가 좋다 해도 자기가 추구하는 삶과 그에 따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뿐이며, 때때로 전혀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 해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간신히 쓸 수는 있다 해도, 결과물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미녀와 야수'는 더없이 자연스럽고 리얼한 표현으로 억눌린 욕망의 발현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모든 노래가 그것을 불렀던 가수의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벌써 20여년째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수와진'에게 '파초'보다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요? 결코 DJ DOC를 폄하하는 것은 아닌데, 그들이 가진 이미지 또한 '미녀와 야수'라는 노래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수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춰서 노래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노래를 먼저 만들어 놓고 그에 맞는 가수를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건우의 팔색조같은 작사 능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주의 우승은 '미녀와 야수'를 부르며 실제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열광적 무대를 꾸민 홍경민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관객 호응도가 최고였고, 저 역시 그 강렬함에 매혹되었지요. 그러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소냐의 '파초'는 또 다른 의미로 가슴을 진하게 울렸습니다. 이건우가 잠시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도 화면에 비치더군요.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그 노래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면, 아마도 약간은 '파초의 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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