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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잠정은퇴가 그리 가혹한가? 그를 옹호하는 비논리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김구라, 잠정은퇴가 그리 가혹한가? 그를 옹호하는 비논리들

빛무리~ 2012. 4.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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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공소시효가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좀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한둘은 아닐 터, 어차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멘탈의 강도가 다르니, 어떤 사안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사람마다의 공소시효(이 단어가 너무 살벌하다면 대충 유효기간 쯤으로 바꾸어도 좋다..)가 다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시점이 아무리 오래 전이라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면, 그 사건을 단순히 '과거에 지나간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인터넷 방송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김구라가 예전에 어떤 말들을 했었는지 잘 모른다. 그 당시의 방송을 들은 적도 없거니와, 나중에 그로 인해 적잖은 사회적 파문이 일었을 때도 굳이 찾아서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기사들만 보았을 뿐 실제로 그가 하는 막말을 내 귀로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제 그가 대략 10년 전의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한 마디 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구라는 당시 천호동 텍사스촌의 윤락여성들이 경찰의 단속에 반발하여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 인권위 사무실 앞에서 집단으로 침묵시위를 벌이던 사안을 두고 "창녀들이 전세버스 두 대에 나눠 타는 것은 예전에 정신대라든지 이런... 참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악명높은 막말의 아이콘이지만, 설마 저런 소리까지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문희준이나 베이비복스 등의 연예인을 대상으로 그랬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 사건이 들춰진 현재 김구라는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잠정 은퇴 선언을 함으로써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떠나서 일단 그 자세는 좋다.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가려 하지 않고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이며, 그 결정을 우물쭈물 미루지 않고 즉시 결정한 태도가 보기 좋다. 그런데 내가 이 시점에서 김구라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구라 본인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건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방송 중단과 잠정 은퇴가 그렇게 가혹한 일인가? 본인 스스로 결정한 일임에도, 마치 이 사회가 김구라를 마녀사냥해서 잠정 은퇴로 몰아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무리 10년 전의 일이라 해도 오늘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분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지금에야 알게 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더 이상 브라운관에 비친 김구라의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김구라가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의 훈훈한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2'에서 계속 김구라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면, 과연 나는 그 역겨움과 불쾌감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그나마 은퇴 선언이라도 했기 때문에 분노를 잠재우고, 예전에 오죽 힘들었으면, 얼마나 악에 받쳐 살았으면 그랬을까 하면서 약간의 딱한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계속 김구라를 욕하거나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다. 국민감정을 거스른 막말에 대해 그는 방송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죄를 했고, 정신대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죄는 차후에 봉사활동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져도 좋을 것이다. 잘못의 정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김구라의 은퇴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당최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극소수이지만 10여년 전 당시에는 김구라도 "뭘 잘 몰라서" 그랬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모르다니... 뭘??? 정신대가 무엇인지를? 창녀와 정신대가 어떻게 다른지를? 그 두 가지를 빗대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김현동'이라는 본명을 쓰는 김구라는 명백한 한국인이다. 외국인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니고 금치산자도 아닌데, 도대체 뭘 몰랐다는 걸까? ...... 몰랐다는 것은 그 어느 쪽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아, 물론 시궁창같은 나날 속에서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그 말이 나중에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뒤늦게 구로다와의 설전에서 보여주었던 김구라의 곧은 태도가 다시 회자되면서, 문제가 된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였을 뿐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며, 말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방식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적절하다 생각했기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빌미로 한 집안의 가장인 그로 하여금 생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공중파에 진출해서 이 시대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으로 살아온지가 벌써 근 10년인데, 솔직히 이제껏 벌어놓은 것만 해도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평생 꿈도 못 꿀 액수가 아닐까? 그것을 밑천으로 사업을 해도 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쓰기만 한다 쳐도 절대 굶을 일은 없을 듯한데, 심지어 영구 은퇴가 아니라 잠정 은퇴이니 언제 되돌아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솔직히 은퇴한다고 해도 전혀 걱정되거나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이런 내가 잘못된 걸까?

 

다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면서 그를 옹호하는 일부의 의견을 보면 참 기막힌 수준이다. 10년 전에 잊혀진 일 가지고 생트집 잡는게 웃기다? 여태까지 가만 있다가 왜 10년 전에 철없을 때 한 말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나? 인터넷 방송을 듣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10년 전에 잊혀진 일이 아니라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무슨 철없을 때 한 말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다니, 10년 전에도 이미 김구라는 30대의 장년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늙어야 철이 드는 거란 말인가? 잘못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김구라의 태도는 칭찬할만하나, 그를 옹호하는 이상한 말들 때문에 올바른 선택마저 빛이 바랜다.

 

마지막으로 적잖은 사람들은 이 경우를 정치인을 비롯한 다른 공인들과 비교하면서, 왜 연예인에게만 가혹한 세상이냐고들 한다. 하지만 그 의견들은 김구라를 옹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해당 공인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공인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불만이라면,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콕 집어서 그 이름을 거론하며, 김구라도 물러났으니 그 또한 물러나야 한다고 당당히 성토하면 된다. 김구라의 10년 전 망언이 하필 이 시점에 공론화된 것 또한 정치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렇다 해도 김구라가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어쨌든 김구라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아 번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매우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친다면 어찌 밝은 내일이 없을까?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나는 김구라와 그 가족의 미래가 행복할 것을 믿는다. 그의 유려한 말솜씨와 독한 개그를 즐기던 팬들도, 이제는 왈가왈부하지 말고 편하게 보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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