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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소냐의 수화(手話)에 눈물을 흘린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 소냐의 수화(手話)에 눈물을 흘린 이유

빛무리~ 2012. 4. 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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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패티김이 얼마 전 54년 동안의 가수 인생을 마무리하겠노라며 은퇴 선언을 했군요. 만 74세의 고령이지만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가장 좋은 모습일 때 떠나고 싶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데뷔 40주년에는 "앞으로 10년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를 더 들려드리겠다" 약속했던 그녀이고, 50주년이 되던 해에는 실제로 은퇴를 고려했지만 체력과 성량이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보니 조금 더 욕심이 났다는군요. 이제 다가오는 6월부터는 은퇴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가 무려 1년에 걸쳐 계획되어 있다하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패티김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칭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였습니다.

 

배우(연기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능은 아무래도 감정 몰입과 전달이라 할 수 있겠지요. 캐릭터에 전혀 감정을 이입하지 못한 채 대사만 달달 외워서 국어책 읽기 신공을 선보인다면, 아무리 외모가 예뻐도 그 연기자는 날선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법입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수에게는 연기력이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목청과 리듬감, 훌륭한 발성법 등을 갖추고 있으면, 감정 몰입이 잘 되지 않아도 일단 노래는 잘 하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저는 최근 임태경과 소냐 등 뮤지컬 배우 겸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한 모습을 보며, 노래에 있어 가창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연기력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캐릭터에 감정을 몰입하여 연기하는 데 익숙해진 그들은,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 가사를 읊조리는 시인이 됩니다. 가사의 내용에 따라 달콤한 첫사랑에 빠진 청년이 되기도 하고, 이별의 아픔에 몸부림치는 여인이 되기도 합니다. 단지 '소리'를 내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話子)의 감정에 최대한 집중하는 그들의 노래는, 그래서 더욱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 같아요.

 

그러잖아도 임태경이 고정출연하면서부터 '불명2'의 즐거움이 2배로 늘어났는데, 송창식 편에 첫 출연하자마자 '상아의 노래'로 우승을 차지했던 소냐까지 때때로 얼굴을 비추면서, 방송의 전체적인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노래에 감정을 싣는 것은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던데, 경력으로도 선배뻘인 이들의 모범을 통해 후배 가수들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주 '패티김 은퇴 특집' 1부에서 임태경은 패티김에게 바치는 헌정 무대로 20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사랑은 생명의 꽃'을 열창했습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무대였지요. 3연승을 거둔 후 괴물신인 에일리를 만나 득표수에서 밀리고 말았지만, 역시 제 마음속의 우승은 임태경이었습니다. 이번 주 2부에서 소냐의 무대를 보기 전까지는요. '노래하는 흑진주'라 불리우는 혼혈 가수 소냐... 여러가지로 참 인상깊은 그녀입니다.

 

소냐에게 주어진 노래 '사랑의 맹세'는 패티김이 '초우'로 정식 데뷔도 하기 전에 불렀던 번안곡이었습니다. '불명2'의 선곡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때로는 특정 가수에게 좀 불리하겠다 싶은 경우도 많더군요. 인지도가 낮은 데다가 잔잔한 곡조로 진행되는 노래는 아무래도 경연에는 걸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훌륭한 요리사는 어떤 재료가 주어져도 일품 요리를 만들어내듯, 훌륭한 가수는 어떤 노래가 주어지든 자기 안에서 또 다른 모습의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을 시키더군요. 이번에 소냐는 '사랑의 맹세'를 통해서 가장 좋은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외국곡이지만, 가사는 작곡가이신 故 박춘석 선생이 쓰셨다는군요. 무대에 오른 소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분들께도 이 아름다운 가사를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 제가 급하게 수화를 조금 배웠습니다. 미흡하나마 노래와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목소리와 손짓, 두 가지 언어를 함께 사용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수화 때문에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노래 자체가 낯설고 잔잔한 데다가, 이제껏 보여주었던 무대에 비해서는 소냐의 목소리가 좀 약하게 들렸거든요. 무엇이든 자기가 익숙한 상태에서 하는 것과, 새로 급하게 배워서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위대한 탄생2'에서 푸니타가 못 치던 기타를 새로 배워갖고 나와서 연주하며 노래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그 정성을 칭찬하기보다 어설픈 기타연주에 신경쓰느라 노래에 집중하지 못했던 실수를 훨씬 더 많이 지적했고, 결국 푸니타는 그 관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는데... 물론 '불후의 명곡2'는 형식적으로만 경연일 뿐 점수가 그리 중요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탈락도 없지만, 하여튼 좀 약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오더니, 생각지도 않은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 갑작스런 감정의 파고(波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찬란한 태양이 그 빛을 잃어도 사랑은 영원한 것~ 강물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영원한 것~ You are my reason to live~" 약간은 어설픈 동작으로, 하지만 진심 가득한 눈빛으로, 소냐는 온 몸과 마음을 다 쏟아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가... 느껴져 오는 듯했어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예전보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줄었다지만, 한국 사회에서 흑인 혼혈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한미군이던 아빠는 소냐가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갔고, 엄마는 그녀가 8살 되던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시골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중학교까지 마친 소냐는 궁핍한 살림을 거들다가, 구미공단으로 가서 낮에는 공장에 다니며 밤에는 야간여고를 다녔습니다.

가수의 꿈을 키우며 공장 기계 앞에서 노래 연습을 했던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지요. 유명 가수가 되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소냐의 믿음은 기적같은 결실을 맺어, 몇년 후 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는 아빠를 만났습니다. 몇 차례나 한국 근무를 자원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던 그녀의 아빠는 더없이 반갑게 딸을 맞이해 주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노래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에서 왜 갑자기 뜬금없는 수화일까 의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외된 자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소냐로서는 뜬금없는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더군요. 오늘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내일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또 다음 날은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언제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소냐였습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아무리 초라하고 못났어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하다는 것을, 그 당연한 진리를 어째서 잊고 살았을까요?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소냐의 목소리와 눈빛과 몸짓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허벅지와 복근에 열광하며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송매체들 사이에서, 소냐와 같은 흑진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위 사진 중 일부는 영화 '도가니'의 화면 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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