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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구구절절한 해설은 감동을 좀먹는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구구절절한 해설은 감동을 좀먹는다

빛무리~ 2012. 3.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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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사형 제도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사형수로 등장한 숀펜의 캐릭터가 소름끼치도록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그 주제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팀 로빈스 감독은 무조건 한 쪽의 타당성만을 주입식으로 전달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양쪽의 입장 모두를 관객에게 제시하려 했다는데, 저의 견해로는 객관적인 거리 유지를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헬렌 프레장이라는 수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헬렌 수녀(수잔 서랜든)는 영적 지도자로서 사형수 매튜(숀펜)의 상담을 해주고 있었는데, 영화 초반에 억울한 누명을 쓴 힘없는 피해자로 보였던 이 인물이 알고 보니 가장 야비하고 교활하고 극악한 인물이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을 이유없이 강간 살인한 자신의 죄악에 대해 뉘우치려는 기색도 전혀 없었고, 헬렌 수녀를 비롯하여 자기를 믿어준 사람들에게도 야비한 조소로 일관할 뿐이었습니다. 죽어도 싼 놈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하이킥3' 104회를 보면서 저는 문득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헬렌 수녀의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지요. "그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어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화두를 던져 놓고는,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을 상당히 구구절절하게 이어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개봉관에서 저와 함께 그 영화를 본 사람은 당시 소방관이셨던 육촌오빠였는데, 그분은 얼마 후 서른을 앞둔 늦은 나이로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했고 지금은 신부님이 되어 계십니다. 소방관으로 근무할 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구조요원으로 투입되어 끔찍한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는데, 그 경험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 싶군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주제를 너무 직접적인 대사로 말해주니까 재미가 없네요. 무슨 교과서처럼 자세히 설명까지 하고, 그러니까 참 수준이 낮은 영화처럼 느껴져요. 좋은 작품이라면 주제를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오빠는 대답하셨습니다. "너처럼 말해주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줘야만 아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 단순한 대답을 듣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더군요. 그게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영화의 작품성보다 주제의 전달을 우선시했다면,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보다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유치해 보일 만큼 직접적인 대사의 기법을 쓴 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오빠의 언어는 매우 단순하고 투박한 가운데 진실을 담고 있다는..^^

서론이 너무 길어진 것에 대해 독자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사실 요 며칠간 몸도 좋지 않고 오늘은 별로 쓸 이야기도 없고 해서 포스팅을 건너뛰고 푹 쉴까 하다가, 그냥 이런저런 넋두리를 섞어 잡담식으로 진행하더라도 아예 쉬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아주 만족스러웠던 103회에 비해, 104회는 급격한 실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너무 달라져버린 김지원의 모습에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윤계상이 건네준 편지를 서슴없이 태워버리던 그 결연한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구차스런 애원의 말들로 상대를 붙잡으려는 태도를 보이니, 어찌 같은 인물이라 인식할 수 있을까요? "왜 거절이에요? ... 제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건, 아저씨가 훈남이어서가 아닌데... 아저씨를 좋아하는 건, 제가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우연히 제 옆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문득 아저씨도 그럴 때, 옆에 우연히 제가 있었다고... 아니었나요?"

Oh my god...! 이제껏 지상커플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신비로운 기운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계상과 지원이 서로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지요. 100회를 넘기도록 그들의 관계를 천천히 진전시키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세심히 증명해 온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직접적이고도 구구절절한 대사로 촌스러운 도장을 콱 찍어야만 했던 걸까요? 이건 고작 100분 내외의 제한된 시간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영화도 아닌데... 설마, 이해하지 못하는 극소수 시청자를 위한 배려의 차원이었을까요? ;; ... 더욱 슬픈 것은 그 대사가 두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하늘의 오묘한 빛깔을 크레파스의 불투명한 파란색 하나로 진하게 칠해버린 것처럼...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윤계상에게, 놀이공원에 데려가 달라고 어린애처럼 떼쓰는 모습에서부터 실망은 시작되었습니다. 눈썰매장으로 잡아끌 때 한 번쯤은 당돌한 귀여움으로 봐줄 수도 있었지만, 금방 또 그러니까 이번에는 예뻐 보이지 않더군요. 윤계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할 때마다 "그럼 내일은요? 안되면 그 다음날은요?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요?" 이런 식으로 구차하게 매달리다시피 하는데 정말 왜 저러나 싶었죠..;;

놀이공원에서 "왜 나의 사랑을 거절했느냐?" 고 약간 따지듯이 묻는 모습은 좀 심하게 표현하면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고, 짐작컨대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인 듯 혼자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식상함의 절정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온 김지원의 캐릭터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라, 실망도 무척 컸을 뿐 아니라 솔직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어요.

그녀를 바라보는 안종석의 우직한 짝사랑은 제법 감동적이었지만, 급격히 변해버린 지원 캐릭터에 실망한 나머지 종석의 사랑마저 빛바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가엾게도 종석에게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사랑을 자발적으로 화끈하게 고백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배, 나 좋아하지?" 라고 느닷없이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그녀 앞에서, 당황한 나머지 비겁하게 부인하지 않은 것만도 충분히 멋지기는 했지만요.

"나 좋아하지 마... 내가 그 마음, 돌려줄 수 없으니까!" 거절하는 김지원의 대사도 너무 뻔하고 직접적이고 설명적이었습니다. "너라면... 그렇다고 네 마음 접을 수 있겠니?" 라고 되묻는 안종석의 대사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식상함 뿐이었습니다.

안내상-윤유선의 코믹 에피를 제외하고, 윤계상-김지원-안종석 관련 에피에 있어 104회는 그 전체가 모두 구구절절한 해설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까지는 직접적인 말을 최대한 억제하며 은은한 분위기와 여운으로 표현해 왔는데, 느닷없이 그 모든 것들이 직접적이고도 촌스러운 말들로 형상화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니, 갑자기 작품의 퀄리티가 확 떨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구차스럽고 구구절절한 해설은 감동을 심하게 좀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몰입하지 말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시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계상 캐릭터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김지원 캐릭터가 그에 상응하는 매력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별 소용이 없거든요. 당차고 어른스러운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징징거리는 어린애 같은 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이제 겨우 19세의 소녀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윤계상의 르완다행이 코앞으로 닥쳐온 이 중요한 시점에서는 징징거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타공인 열혈 지상커플 매니아였던 제가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저는 원래 이렇습니다. 아주 좋아하던 캐릭터나 연기자라 해도 한 번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면 사정없이 깎아내리죠..;; 저의 비판글을 읽고 단순하게 해당 연예인이나 캐릭터의 안티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제 특성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어쨌든 윤계상-김지원-백진희-안종석 네 사람을 둘러싼 앞으로의 전개는 더욱 더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네요. 그 동안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피곤했는데, 약간이나마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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