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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이별에 대처하는 김지원의 자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이별에 대처하는 김지원의 자세

빛무리~ 2012. 3. 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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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찾아올 줄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언젠가 봉사를 가실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일 줄은 몰랐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듯이, 지원에게도 이별은 그렇게 인식되어 있던 걸까요.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예상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너무 빨리 찾아왔던 아빠와의 이별처럼, 이제야 비로소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서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계상 아저씨와의 이별도 잔인할 만큼 빠르게 닥쳐왔군요.

"새는 왜 울어?" ... "웃고 싶어서!" ... 오래 전 밤하늘에 로켓을 쏘아 올리던 그 날처럼, 김지원은 윤계상의 독거노인 방문 진료에 따라 나섰습니다. 달동네 판자촌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나 멀고 지루한데, 그들은 심심풀이로 오자(五字)문답 놀이를 시작하는군요. "새는 왜 울어?" 하고 그녀가 묻자 "웃고 싶어서!" 라고 그는 대답합니다. 한 줄의 슬픈 싯귀와도 같은 문답이었지만, 이어지는 윤계상의 '배는 안 고파?" 라는 질문 덕분에 대화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사주게?"... "고기 좋아해?" ... "말이라고 해?" ... "왜 자꾸 반말?" ... "죄송합니다..-_-" ... "농담입니다..^0^" ... 그렇게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던, 그 평범하고 따뜻한 저녁 무렵의 일상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어머니, 다음부터는 저 말고 다른 의사가 올 거거든요. 그분은 저보다 더 좋으신 분이니까 잘 봐주실 거예요..." 방문 진료를 마치며 할머니께 전하는 윤계상의 말에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원... 그래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땅굴로 이어져 있어도 옆집은 옆집이구나... (아무리 마음이 통해도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는 뜻일까?) 사실은 나... 다음 달에 르완다 가거든... 일부러 이야기 안 한 것은 아니었는데, 갑작스럽게 알게 해서 미안하다..."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기에, 계상은 진심으로 미안해 합니다.

늦은 밤까지 홀로 생각에 잠겼던 지원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계상을 땅굴로 불러내는군요. 노란 백열등 아래 비춰진 그의 미소는 오래 전 그 날과 똑같습니다. 그녀가 이 땅굴에 처음으로 들어서던 날, 캄캄한 어둠을 밝히며 백열등이 켜지던 순간, 그 불빛 아래 환히 드러나던 미소와 똑같습니다. 이 땅굴에서 그들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기도 했고, 그녀의 기습적인 볼 키스로 새해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매듭지으려면 어떻게 해요?" 김지원이 고백의 장소로 이 땅굴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그 사랑이 조금씩 키워져 갔던 곳... 그녀는 다짜고짜 질문 형식의 고백만을 툭 던져놓은 채,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현실 속의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 앞에서도 이 소녀는 무척이나 강인하고 주체적이군요. 그녀는 상대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불쑥 보건소 앞으로 찾아간 지원은 계상을 보자마자 마치 꾸어준 돈을 달라는 것처럼 당당히 요구합니다. "진희 언니랑 눈썰매장에 가셨다면서요? 저도 눈썰매장에 데려가 주세요!" 언제나 그랬지만 갑자기 더욱 당돌해진 그녀의 태도에 계상은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너는... 눈을 안 좋아하잖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의 말문을 막아 버립니다. "아저씨랑 같이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데려가 주세요! 눈썰매장 아니더라도 눈 있는 데, 어디든..."

하필 눈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지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상은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의 철벽같은 도덕성으로 미루어 보면, 학생 신분으로 학교 수업을 땡땡이치고 눈썰매장에 놀러가겠다는 그녀의 뻔뻔함을 받아줄 리 만무한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기이하게도 그녀의 떼쓰는 듯한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는군요. 애써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보려는 어린 그녀의 용기에, 아직은 자신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요?

하긴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 "아무튼 저는, 아저씨가 가든 안 가든 내일 학교 빠질 거예요!"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요! 한다면 꼭 하고야 마는 그 고집스런 성격을 아는 계상이 어떻게 승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이 조그만 소녀의 강한 기세가 윤계상을 제압해 버린 셈이죠. 사실 103회에서 김지원은 시종일관 윤계상을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땅굴로 불러내어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했고, 수동적인 그의 손을 잡아 올려 막무가내로 손가락을 걸었고,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약속을 그로부터 이끌어냈습니다.

2월 막바지에 그토록 눈이 펑펑 날리는 곳을 어떻게 찾아냈을까요? (미리 찍어둔 거겠죠? ㅎㅎ) 새하얀 설원에서 두 사람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눈싸움을 합니다. 눈사람 앞에서 마주보며 웃는 모습은 '겨울연가'의 느낌이고, 눈밭을 뛰놀다 하늘을 보며 나란히 누운 모습에서는 '러브스토리'가 연상되는군요. 도대체 어디를 봐서 아빠와 딸의 느낌이란 말입니까? ㅎㅎ 그 어떤 아빠도 딸한테 자기를 받아달라고 하면서 뒤로 넘어지는 장난을 치지는 않습니다. 눈밭 속을 뒹굴며 두 사람은 한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문득 제 머릿속에는 이런 오자문답이 떠오르더군요. "지금 왜 웃어?" ... "울고 싶어서!"

고장나버린 낡은 휴대폰 속에는 아빠와의 추억이 가득했는데, 이제 새로 장만한 휴대폰에는 계상과의 추억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다른 세계에 갔다 온 느낌이에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하지만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네요!"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려는 지원을 붙잡고 계상은 봉투에 담긴 편지 한 장을 건넵니다. "그 때 물어봤었지? 어떻게 마음을 매듭지어야 하는지... 너도 답을 찾고 있겠지만, 이건 네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야..."

저는 그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 죽겠는데, 정작 지원이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가 봅니다. 그 날 밤에도, 다음 날 아침에도, 편지는 곱게 봉해진 채 서랍 속에 들어 있을 뿐이네요. 그리고 다음 날 밤, 그의 존재를 느끼려는 듯 편지를 소중히 가슴에 안고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지원은... 결연히 눈을 뜨고는 봉해진 편지를 그대로 촛불에 가져가 불태워 버립니다. 그렇게 윤계상의 마음은 아무에게도 읽혀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모두 타서 재가 되고 말았군요. 읽지 않고 태워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김지원은 굉장히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서, 상대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사랑 앞에서도 그러했고, 이제 가까이 다가온 이별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지를 읽지 않고 태워버린 이유는, 그의 대답과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흠... 그녀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당차고 강한 아이였군요.

아직 미성년의 소녀인 지원에게, 삼촌뻘의 어른으로서 윤계상이 해줄 수 있는 답변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설령 마음속에는 폭풍이 불고 있을지언정,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사실 그 편지의 내용은 읽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가 있지요.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지원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편지를 태우며 속으로 결연히 되뇌었을 것입니다. "상관없어요... 결정은 제가 할 테니까요!"

구체적으로 그녀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김지원에게로 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예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었지요. 읽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드디어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다!] 저는 이 포스팅에서 '하이킥3'의 주인공을 한 명으로만 규정한다면 바로 김지원이 될 것이며, 어쩌면 윤계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트콤 전체의 향방을 뒤흔들 수 있는 주도권은 모두 이 소녀의 작은 손에 쥐어져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제 103회를 보고 나니 당시의 예측에 확신이 더해지는군요.

보통 여자라면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준 편지를 태워버리는 것은 너무 아파서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김지원은 소중히 가슴에 품었던 편지를 촛불에 갖다 대기까지 약간의 머뭇거림이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보통 내기가 아니네요. 그 결연한 눈빛과 서슴없는 동작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윤계상 캐릭터는 은근한 허당입니다. 책에서 배운 당구로 고수를 이길 수 있다며 큰소리를 탕탕 치고, 그저 이론만 내세우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곰에게 따귀를 맞아 쓰러지고, 깡패보다 자신의 팔다리가 길기 때문에 싸워도 승산이 있다며 까부는... 어린애처럼 허술한 면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윤계상보다는 현실적이고 당찬 이 소녀에게 주도권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든든한 느낌이라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요... 이제 저를 괴롭히는 것은 지원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몹시 궁금하다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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