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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물질(돈)을 바라보는 김병욱의 시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물질(돈)을 바라보는 김병욱의 시선

빛무리~ 2012. 2. 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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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스텐레스김은 가난한 사람의 캐릭터를 멋지게 그려주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박영규가 가장 찌질한 못난이였죠. 손윗 동서 노주현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에 툭하면 병원 공금을 횡령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등 민폐 행각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자' 노주현이 너그러운 아량으로 늘 용서해주며 데리고 살았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설정은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은 사람의 마음조차 척박하게 만들어 버리니,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사회적 정의 따위를 챙길 여유가 없겠지요.

스텐레스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지붕킥'의 신세경 한 사람을 제외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찌질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 중에서도 최고봉이군요. 쫄딱 망해서 처남 집에 얹혀사는 안내상의 뻔뻔한 민폐 행각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혼나고도 임간호사에게 또 윙크하고 집적대다가 아내 윤유선에게 들키자, 백진희가 고자질했다고 생각하며 자기 잘못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비열한 복수를 꿈꿉니다. 한동안 좀 나아졌나 싶더니만, 요즘은 안내상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싶어질 지경이에요..;;

가난한 백진희도 안내상보다야 훨씬 낫지만 별로 우호적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붕킥'의 신세경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던 세경과 달리 애걸복걸하며 박하선의 집에 얹혀살러 들어왔던 초반의 진희는 참으로 비굴해 보였지요. 그리고 언제나 철저한 본분을 지켰던 세경과 달리 진희는 중간중간에 시험지 컨닝이라든가 남의 편지 훔쳐보기 등의 옳지 못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으로 따지면, 완전무결했던 신세경에 비해 오히려 백진희가 훨씬 더 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

이처럼 김병욱이 그려내는 적나라한 현실은 편치가 않습니다. 비율로 볼 때, 절대 다수의 대중은 가난한 사람에 속하거든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좀 따뜻하게 멋있게 그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않습니다. 고영욱과 백진희 등 가난한 사람의 애절한 짝사랑도 좀 이루어 주면 좋겠는데, 대부분은 차갑게 외면해 버립니다. (신세경만 빼고..^^) 왜 그러는 걸까요?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면 가난한 사람을 무조건 행복하게 해주고, 웬만하면 적당히 신데렐라 캐릭터도 만들어서 여성 시청자들의 대리만족 욕구를 채워주면 될텐데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역설적 항거'라고 생각합니다. 흔한 경우, 가난은 모든 불행의 이유가 되곤 하지요. 좀처럼 일이 안 풀리는 것도 가난해서이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도 가난해서이고, 민폐를 끼치는 것도 가난해서이고, 심지어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도 가난해서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가난은 또 다른 불행들의 원인이 되어 왔지요.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가난은 모든 경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힘들긴 하겠지만 굳게 마음만 먹으면, 가난해도 꼿꼿하게 민폐를 안 끼칠 수 있고, 가난해도 정직하게 살 수 있고, 가난해도 인연이 닿는다면 사랑을 얻을 수 있겠죠. 가난이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 핑곗거리로 전락한다면, 그 또한 일종의 물질만능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텐레스김이 가난한 사람의 캐릭터에 더욱 냉정한 이유는 "가난을 핑계대지 말라" 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보기에 스텐레스김은 물질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질과 상관없이 언제나 '영혼의 울림'을 중요시할 뿐이죠. 영혼이 통한다면 가난해도 상관없고 부자여도 상관없습니다. 사랑에 장애물이 있거나 없거나도 중요치 않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 속의 사랑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군요. 이미 확정된 윤지석(서지석)-박하선 커플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스텐레스김이 처음부터 메인커플로 지목했던 윤계상-김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후 김지원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지요. 그까짓 나이차야 뭐...

엇비슷한 환경의 '가진 자'들... 별다른 애절함도 없고 장애물도 없는 그들끼리의 결합에 대중이 열광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굉장히 희박했습니다. 대중을 자극할만한 포인트가 너무 없지요. 다행히 박하선의 귀여운 캐릭터가 대박을 치면서 '지하커플'에는 든든한 팬덤이 형성되었지만, 부유한 소녀 김지원의 캐릭터가 다수의 공감 얻기에 실패하면서 '지상커플'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군요. 가난한 백진희의 짝사랑을 응원하는 열기에 '지상커플'은 대책없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스텐레스김이 이러한 반응을 예측 못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오히려 "예상보다는 심하지 않은 걸!" 하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김지원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혹독한 세상에 부모 없이 홀로 남은 이 어린 소녀는 마음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이제껏 하루하루의 인생을 즐겁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 견디어 왔지요. 지원이는 또래 소녀들처럼 티없이 밝게 웃지도 않고, 수정이처럼 까불거나 애교를 부리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날씨에도 관심없고, 발렌타인 데이 및 각종 기념일에도 무관심하고, 세상 만사에 시큰둥해 보입니다. 최근 윤계상을 만나서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초반의 그녀는 무척이나 음울한 이미지였죠.

그에 비해 백진희는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입니다. 이룰 수 없는 짝사랑으로 아파하던 모습만 빼면, 진희는 언제나 명랑 쾌활하고 잘 웃는 아가씨였어요. 그녀는 시골에 부모님도 살아계신 것 같고, 동생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부양 가족이 많다고 생각하면 짐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 많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지원이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 혈혈단신에 사촌언니 박하선을 빼고는 가까운 친척도 없어 보이는데...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진희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희망을 느끼는 반면, 지원이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고통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쯤 되면 확실히 지원이보다 진희가 더 행복한 게 맞지 않나요?

보통 사람들은 '외면적(물질적) 결핍'을 중요시하고 '내면적 고통'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병욱은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봅니다. 물질의 절대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가난해도 내면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고, 부유해도 내면이 불행하면 불행한 거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물질만능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연스레 물질과 연결시킵니다. 고통도 물질에서 비롯되고, 사랑도 물질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스텐레스김은 물질과 고통, 물질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가볍게 무시해 주십니다. 물질과 상관없이 '고통의 본질'과 '사랑의 본질'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질만능주의에 대항하는 김병욱의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추측입니다. 스텐레스김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이되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 각자의 몫이니, 저의 해석이 원작자의 의도와 좀 어긋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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