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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윤계상이 김지원에게 반말을 한 의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윤계상이 김지원에게 반말을 한 의미

빛무리~ 2012. 2. 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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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뉴질랜드에서 아빠를 영영 잃어버렸을 때, 김지원은 초등학교 5학년, 12살이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 19살이죠. 과거 뉴질랜드 에피소드가 나왔을 때, 저는 그 시간차 때문에 혹시 구멍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원이는 아직도 아빠와의 추억이 가득 담긴 구형 휴대폰을 소중히 간직하며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7~8년 정도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저도 물건을 상당히 오래 쓰는 편이고 휴대폰도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이상은 바꾸지 않는 편이지만, 휴대폰은 아무리 곱게 아껴 써도 3년 반 정도 지나면 저절로 망가져 버리던데, 7년 이상을 썼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혹시 시간 설정이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보니 98회의 에피소드를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최대한으로 설정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아빠의 영혼이 그녀를 지켜주는 것처럼, 지원이 곁에서 오랫동안 잘 버텨주던 휴대폰이 결국은 망가져 버렸거든요. (왜 하필 지금일까?) 김지원에게 그 휴대폰을 잃는다는 것은 아빠를 또 한 번 잃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아무리 당차도 겨우 19세 소녀에 불과한 지원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뒤로 넘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일텐데... 하지만 이제 그녀의 등 뒤에는 '받아줄'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엔, 언제라도... 내가 뒤에서 받아 줄게요!" 라고 약속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지금이겠죠. 아빠의 영혼이 안심하고 지원이 곁을 떠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윤계상과 김지원은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그 때 하필 같은 책의 같은 부분을 읽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절대적 소울메이트임을 인증하는군요. 그들이 읽던 책은 엘러리 퀸의 유명한 추리소설 'X의 비극'이었는데, 현재 1/3 정도를 읽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추측하는 범인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내일까지 책을 다 읽고 범인을 맞히지 못한 사람이 딱밤을 맞기로 내기를 거는데, 다음 날 아침 승리자는 윤계상으로 밝혀졌군요. 계상은 특유의 장난꾸러기 미소를 지으며 딱밤 맞을 준비가 되었느냐고 지원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의 휴대폰은 하루종일 꺼져 있습니다.


늦은 밤,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에서 또 다시 마주칩니다. "핸드폰이 고장났어요. 배터리 문제인가본데, 너무 오래 전에 단종된 기종이라 못 고친다고..."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는 김지원... 그녀에게 그 휴대폰이 어떤 의미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계상은 웃던 얼굴이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곧바로 웃음기를 회복하고,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며 각종 해결책을 찾아내기 시작하는군요. 하루종일 휴대폰 수리점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지원은 마치 벼랑 끝에 선 듯 절망적이고 위태로워 보였는데, 윤계상의 미소가 쓰러지려는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다음 날, 윤계상은 김지원을 데리고 청계천 부품 상가를 돌아다니며 고칠 방법을 찾아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하긴 요즘 세상에 7~8년이나 된 휴대폰을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죠. 김지원은 벌써 의기소침하여 축 늘어지는데, 그래도 윤계상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에라도 부품을 구할 수 있는 공장이 있는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고, 수십 군데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군요. 드디어 경남 김해 쪽의 한 공장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비춰 옵니다.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휴대폰을 가지고 와보라는 답변이 들려온 거죠.


다음 날 새벽 공장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려면 밤에 출발해야 하니까 10시쯤 만나서 함께 가자고 김지원과 약속한 뒤, 윤계상은 평소처럼 독거노인 방문 진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해서 병원에 옮겨 드리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그 곁을 지키느라 많이 늦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네요. 윤계상은 문자와 음성으로 일단 집에 가 있으라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가 닳아 없어질까봐 휴대폰을 꺼 놓은 김지원은 그 메시지를 받지 못한 채 계속 추위에 떨며 밤거리에서 기다립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집에 가 있을 줄 알고 집을 향해 차를 몰던 윤계상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김지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황급히 차를 멈추고 그녀에게로 달려가서는 막 화를 내는군요.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요? 좀 기다리다 안 오면 그냥 가지... 아니면 나한테 전화를 하든가!" 언제나 차분하고 담담한 미소를 잃지 않는 윤계상의 완벽한 마인드 컨트롤이, 김지원과 함께 있을 때면 이렇게 종종 무너지곤 합니다. 그녀에게 옷을 덮어주며 집에 가서 쉬라고, 김해 공장에는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지만 지원이가 말을 듣지 않는군요. 밤새도록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 희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이제는 작별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할 만큼 했는데 안 된 거니까... 괜찮아요!" 윤계상의 도움을 받아 여한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봤다는 것만으로도 김지원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저씨... 아빠가 보냈던 문자, 보실래요? 저 혼자만 봤던 건데, 이제 다시 못 보니까... 같이 보실래요?" 김지원의 그 제안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닌데......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윤계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고...

두 사람이 함께 들여다보는, 이제 곧 스러져 버릴 낡은 휴대폰의 조명 속에는, 그녀의 아빠가 보냈던 문자들과 추억의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햇살이 비쳐드는 거실에서 아빠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던 어린 지원의 모습도 사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왜 기면증 치료를 안 받냐고 하셨죠? ... 꿈을 꾸어요, 잠시 동안... 늘 같은 꿈을..." 날마다 그녀의 꿈 속에 등장하는 아빠는 어떤 모습일지 늘 궁금했는데, 가장 행복한 시절의 아빠였군요. 이제 김지원은 또 다시 꿈을 꿉니다. 만 하루 동안, 24시간이나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 열병같은 마지막 꿈을 꿉니다. 추측컨대 그녀의 기면증은 이로써 치유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닐까 싶군요. 어쩌면 그녀 스스로가 치료를 받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모르겠네요.


꿈에서 깨어나니 휴대폰은 꺼져 있습니다. 지독한 이별의 상처를 고작 하룻 동안의 열병으로 떨쳐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든든하게 뒤를 받쳐준 윤계상의 팔 덕분이지요. 새로 장만한 김지원의 스마트폰에 띠리링~ 문자가 도착합니다. "지원아, 아저씨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발신인은 '아랏샤라무니에' 입니다. 그런데 믿을 수가 없군요. 가족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5살 꼬맹이한테도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그 남자... 이거 정말 윤계상이 보낸 메시지가 맞는 걸까요?

그를 만나러 반갑게 달려간 김지원이 묻습니다. "맛있는 거, 뭐 먹으러 가요?" 그러자 윤계상이, 분명 윤계상이 입을 열어 또렷한 발음으로 되묻습니다. "뭐 먹고 싶어? 파스타 어때?" (반말이다!) 어리둥절한 김지원이 "네, 좋아요!" 하자, 윤계상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가까운 데 파스타 잘하는 집 있다. 가자!" 그의 놀라운 변화에 적응되지 않는 김지원은 옆을 졸졸 따라가며 묻습니다. "아저씨,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갑자기 저한테 왜 말을 놓으세요?" 그러자 윤계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글쎄..." 하는 애매한 대답만 남기고 앞서 걸어가 버리네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는..;;)


어쩌면 윤계상의 존댓말은 타인들과의 사이에 스스로 둘러쳐 놓은 울타리의 상징입니다. 언제나 뒤에서 받아주던 엄마가 떠났을 때, 더 이상 자기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느꼈던 어린 계상의 깊은 상처와 상실감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의 내면에 남아 있지요. 또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다가는, 또 한 번 그와 같은 상처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박하선의 마음에 채워져 있던 빗장과도 같은 의미인데, 하선의 경우는 그 상처가 '연애감정'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윤계상의 경우는 모든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는 점이 다르겠군요.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그 누구도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하며 그저 혼자서만 해맑게 웃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윤계상은 스스로 울타리 한 쪽을 허물고 김지원이라는 소녀를 그 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벌써부터 예고된 일이었죠. 그녀 때문에 흔들리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발견하던 언젠가부터... 엄마 말고는 아무한테도 쳐 본 적이 없던, 목숨 걸고 뒤로 넘어지는 위험한 장난을 그녀에게 다시 치던 그 날부터... 처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그녀에게 털어놓던 그 날부터... "다음엔 내가 뒤에서 받아 줄게요" 라고 약속하던 그 날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었어요.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을 떠나보내며, 먼저 손을 내민 쪽은 김지원이었습니다. 아빠의 문자를 함께 보자고 한 것은, 이제껏 혼자서만 간직해 왔던 삶의 추억과 아픔을 공유하겠다는 의미였고, 그녀의 울타리 안에 그의 존재를 들여놓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김지원에게도 역시 울타리는 존재하고 있었던...) 이에 윤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지요. 그녀의 울타리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울타리도 허물고 그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지원은, 아무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 이 남자가 유일하게 말을 놓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까지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났을 겁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던 아픔이 있으니까요. 그럼 이제... 3월 말로 결정되어 있는 윤계상의 르완다행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는 도대체 어쩌려고... 무슨 결심으로 이렇게 거침없이 마음을 열어 버리는 걸까요? 앞으로 당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 수 없으니, 설렘 속에서도 슬퍼지고 감미로움 속에서도 불안하지만...... 벌써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린 듯, 머뭇거리지 않는 과감한 태도와 자신감으로 가득찬 윤계상의 미소는 아찔할 정도로 멋있군요.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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