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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지원에게 보내는 종석의 편지 - 내 마음은 온통 너로 가득차 있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지원에게 보내는 종석의 편지 - 내 마음은 온통 너로 가득차 있다

빛무리~ 2012. 2. 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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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거긴 내 지정석인데!"

거짓말처럼 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처음 만나던 그 날처럼... 햇살이 눈부시던 가을 날의 그 모습 그대로 너는 그 자리에 서 있다. 너는 변한 게 없는데, 나만 혼자 이렇게 변해 있다. 너는 여전히 교복 입은 여고생인데, 나는 이제 스무 살의 어른이다. 그리고 ... 네 마음에는 여전히 내가 없는데, 내 마음은 온통 너로 가득차 있다. 아주 먼 훗날, 열 아홉에서 스물이 되던 해의 이 추운 겨울을 다시 떠올리면, 나는 너 말고 다른 무엇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 가끔은 이렇게 바보처럼 변해버린 내가 믿어지지 않는다.

나 안종석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자존심 뿐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비록 아빠의 사업 실패로 운동을 그만두고 이 꼴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 조각 남은 자존심이 내게는 소중했다. 그것마저 버리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고, 나의 존재 모두가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한 살 어린 너한테 과외를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 너를 가방 속에 숨겨 들고 다니다가 떨어뜨려 뇌진탕에 걸리게 할 만큼, 한때는 너보다도 그렇게 자존심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느 새 너무 커져버린 내 안의 네가, 그 자존심을 사정없이 밀어내 버렸구나. 너와 같은 공간에서,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자존심 쯤은 눈덩이처럼 꽁꽁 뭉쳐 멀리 던져버릴 수 있게 된 거다. 단과학원에 다니기 싫었던 것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곳에 네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졸업생이면서 고등학교 교실에 다시 돌아와 앉아 있는 이 치욕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 나는 미친 게 확실하다.

막무가내로 너를 잡아끌고 겨울바다로 떠났던 하루 동안의 졸업 여행...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게 타던 내 속을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까? 정말 죽으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심장을 억누르는 일은 그렇게 힘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내 심장 속으로 겁도 없이 첨벙 첨벙 걸어들어온 것은.

잘나가는 얼짱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시절, 내게도 열광하는 팬클럽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목 터져라 외치던 그 아이들은, 우리 학교까지 찾아와 나의 몰락한 꼴을 직접 확인하고는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한 순간에 구겨져 버린 자존심 만큼이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게 허무한 것이었고... 설상가상 아무리 너의 설명을 들어도 공부를 이해할 수 없는 등신같은 돌머리는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때 네가 나를 다시 아이스링크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완벽한 네가 얼음판 위에서 뒤뚱거리다가 수없이 넘어질 때, 나는 가르쳐 줘도 못한다고 너를 탓하면서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최소한 얼음판 위에서는 너보다 내가 잘난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제로에 가깝도록 추락했던 나의 자존감이 다시 상승했던 거다. 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선배, 나 등신같지?"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까? 너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내 상처를 어루만진 네가, 죽음같은 절망에서 나를 구해주던 그 때부터.

네가 기면증을 앓는 줄도 모르고, 나는 계상 삼촌의 목에 걸려있던 스쿠터 열쇠를 몰래 빼앗아 돌려주었다. 어째서 그 날 밤에 눈치채지 못했을까? 큰삼촌이 괜히 그랬을 리가 없는데, 왜 네가 스쿠터를 못 타게 하려고 열쇠까지 빼앗았는지 그 이유를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저씨, 자면서도 웃어!" 하며 멍하니 삼촌의 잠든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너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왜 느끼지 못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돌머리가 확실하다.

내가 열쇠를 돌려주었으니까, 네가 스쿠터를 몰다가 잠들어서 사고라도 당하면 그건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아니, 더 이상 너를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온통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까? 너의 모습을, 너의 그림자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뛰어다니던 그 날부터.

하이힐을 신고 아파하던 네 발에 내 손으로 직접 신겨준 운동화가 어떤 의미였는지,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날이 올까?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던 마음... 너와 함께 세상의 모든 길을 달리고 싶던 마음... 하지만 너는 그 운동화를 신은 채, 나를 뒤에 남겨두고 멀리 달려가며 외쳤다. "빨리 스무 살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던 너의 마음... 너의 시선이 닿은 곳은 아득히 높아서 내 손이 닿지 않았다. 숏달, 네 앞에서 9등신 안종석은 이렇게 초라하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내 키가 얼마나 더 자랄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없이 발돋움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너의 시선이 닿는 그 높은 곳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한 뼘의 희망으로도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너를 놓으면 곧바로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이 기분.

졸업한지 며칠만에 청강생 신분으로 다시 교실에 돌아와 후배들과 공부하게 되어버린 내 꼴은 눈 코 입이 모두 사라질 만큼 창피스러웠지만 "뭐, 어때? 선배랑 같이 공부해서 나는 좋은데... " 하고 네가 말하는 순간 모두 극복했다. 선생님과 학우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홀로 나를 돌아보며 "기죽지 마!" 하고 격려하는 너의 미소 한 번에, 나는 그저 좋아서 키득키득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 나는 미친 게 확실하다.


*** 에필로그

오늘 포스팅에서는 모처럼 청춘의 사랑을 다루었으니, 번외편으로 몇 장의 사진과 몇 줄의 글을 첨부합니다.
'하이킥' 시리즈의 애청자라면 누구나 기억하실 그리운 모습들이지요...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란다.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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