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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왜 벌써 엔딩 분위기? 혼란에 빠지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왜 벌써 엔딩 분위기? 혼란에 빠지다

빛무리~ 2012. 2. 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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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윤계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죠. 몇 번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 머릿속에 생각나는 장면들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김지원과 함께 돌보아 드리던 독거노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두번째는 김지원이 어린 시절에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닮은 그림 속의 여자를 보았을 때였죠. 그리고 이번에 91회에서 김지원에게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털어놓으며 흘리는 눈물이 세번째입니다.

이처럼 윤계상의 눈물은 모두 김지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눈물은 슬픔을 의미하며,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하지요. 드라마 '49일'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매개체도 역시 눈물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김지원은 윤계상의 슬픔을 자극하여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네요.

어렸을 때 가장 사랑하고 따르던 엄마를 잃은 후,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윤계상은 줄곧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습니다. 생각에 잠길 때마다 보자기를 뒤집어쓰는 습관도, 어릴 적에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배냇이불의 아늑함을 잊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어린 계상은 그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내내 그 이불을 끼고 살았었다지요. 하지만 그의 상처를 알게 된 김지원이 '생각중'이라는 글자를 직접 수놓아 예쁜 보자기를 선물한 이후, 이제 윤계상의 머릿속에서 그 습관에 얽힌 아픈 기억은 귀여운 소녀와의 재미있는 기억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윤계상의 가슴속에서 엄마의 빈 자리는 김지원의 존재로 인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김지원에게 있어 윤계상의 존재가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누차 언급한 바 있습니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그 존재감이 증명되었고, 결정적으로 뉴질랜드 에피소드에서 윤계상은 그녀를 눈 덮인 강원도로 데려가서, 아빠의 죽음과 눈에 얽힌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하지만 아직도 기면증 치료를 거부하는 그녀의 태도는 상처가 완전히 나으려면 아직 멀었음을 의미합니다. 김지원이 기면증 치료를 이토록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요?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면 일단 숨겨두었던 상처를 밖으로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무척 힘들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을 생생히 다시 떠올려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니까요. 혹시 그 고통스런 과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거부하는 걸까요? 하지만 김지원의 엄청난 깡과 자존심으로 미루어 볼 때,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가능성은, 김지원의 마음속에 기면증이라는 병 자체가 죽은 아빠와의 연결고리로 인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원아, 잠깐만 여기서 자고 있어... 잠깐만 자고 있으면, 아빠가 사람들을 데려와서 너를 깨울게!" 끝없는 눈밭 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직전, 어린 지원에게 남긴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죠.

뉴질랜드에서의 충격적 경험이 기면증의 원인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지원에게는 어쩌면 아빠가 남기고 간 선물처럼 인식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차 안에서 혼자 버텨야 했던 그 악몽같은 이틀... 깨어있는 동안은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한없이 기다리며 절망과 불안에 떠는 지옥이었지만, 잠들어 있는 동안은 이제 곧 돌아올 아빠를 기다리며 희망에 젖어드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그녀는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잠깐만 자고 있으면 곧 돌아올 거라던 아빠의 말을 믿었기에, 잠들어 있는 동안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아직도 잠을 잘 때마다, 꿈을 꿀 때마다, 그 속에서 아빠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차가운 현실은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분명히 싫다고 말했는데도 윤계상이 자기를 속여서 의사에게 데려갔으니, 김지원이 화를 내는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치료를 거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인데, 가장 믿었던 사람이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속여서 치료를 받게 하려 했으니까요. 물론 자기의 건강과 안위를 염려하는 윤계상의 진심은 알고 있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는 판단력을 흐려지게 합니다. 영리한 그녀도 어쩔 수 없어요. 아빠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고, 자신의 달콤한 잠을 빼앗아가려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윤계상이라는 사실은 그녀를 더욱 화나게 합니다. 그는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준 사람이니까요.

평소의 성숙한 그녀답지 않게 삐딱한 철부지처럼 엇나가기 시작한 김지원은 윤계상의 말을 듣지 않고 모두 반대로 행하기 시작하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너면 위험하니 지금은 건너지 말라는 윤계상의 말을 반대로 행하기 위해 느닷없이 차도로 뛰어든 거죠. 깜짝 놀라며 그녀를 간신히 붙잡아 세운 계상은 전에 없이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장난 그만 쳐요, 세상에 장난을 목숨 걸고 치는 사람이 어딨어!" 하지만 고집 센 소녀의 반항은 그 정도로 꺾이지 않습니다. "할 거예요!" 하면서 다시 차도로 뛰어들려는데, 윤계상이 "좋아, 그럼 나도 그렇게 한 번 해봅시다. 나 지금 뒤로 넘어질 테니까, 받아요!" 농담인 줄 알았는지 그녀는 또 튕깁니다. "받아요? 그럼 안 받아야겠네!"

하지만 보도블럭의 끝에 서서 차도 쪽으로 등을 돌린 윤계상은, 몸을 일직선 상태로 뻣뻣이 한 채 거침없이 뒤로 넘어집니다. 그녀가 받아주지 않았을 경우, 운이 나쁘면 달려오는 차바퀴에 곧장 짓밟히게 될 것이고, 운이 좋다 해도 머리가 아스팔트에 세게 부딪힐 것입니다. 운 좋으면 뇌진탕이고 운 나쁘면 사망입니다. 말을 듣지 않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윤계상은 기꺼이 '목숨 건 장난'에 동참한 것이죠. 진짜로 넘어지는 윤계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김지원이 달려들어 가까스로 그의 상체를 얼싸안고 함께 쓰러지는데, 설마 잘못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보면서도 간담이 서늘할 만큼 아찔했던 이유는 제가 그 두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일까요?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을 염려하는 계상의 진심 앞에서, 지원은 더 이상 철부지 투정이나 고집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넘어지는 그를 받아줌으로써 "반대로 하겠다"는 고집은 꺾인 셈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로써 윤계상의 아픈 상처 하나가 또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뒤로 넘어지는 놀이는 그가 어렸을 때 엄마와 더불어 자주 하던 놀이였거든요. 그러나 병이 깊어진 엄마는 어느 날 기운이 없어서 넘어지는 계상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어린 계상이 몹시 다친 것은 엄마에게 커다란 한으로 남았습니다. 임종의 순간, 계상의 손을 잡고 "못 잡아줘서 미안하다"고 하신 것이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지요. (보자기 에피소드와 뒤로 넘어지기 에피소드에 관련된 추억은 모두 계상의 누나인 윤유선의 입을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더 이상 뒤로 넘어져도 받아줄 사람이 없음을 깨닫게 된 윤계상은 그 날 이후로 장난을 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없는 추운 세상을 홀로 견디며, 세상에 아무 위로도 없다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그 장난(?)을 칠 수 있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김지원이라는 소녀 때문이지요. 이 두 사람이 얼마나 여러 겹의 견고한 실로 묶여 있는지는 불을 보듯 확실하군요. 참 많이도 닮아있는 그들은 이렇게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기대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윤계상의 일방적 베풂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김지원을 통해서 윤계상 자신의 상처가 많이 치유되고 있었네요.

그가 그녀에게 말합니다. "전에 내가 보여줬던 그림 있죠? 눈밭에 여자의 뒷모습이 있던... 그 그림이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뒷모습 같다고 했나요? ... 나도 그랬어요... 하선씨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사건... 하지만 그 사고 때, 지원 학생 마음속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요. 그건 세상에서 지원 학생 혼자만 아는 일이겠죠...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 다친 마음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치유되었으면 해서... 나도 어릴 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적이 있으니까... 내가 열아홉 살 때 뭘하고 살았냐고 물었죠? 그 때... 난 정말 세상에 아무 위로도 없다고 느끼며 살았어요. 지원 학생에게서 가끔... 그 때의 나를 봐요... 언제라도 들어 줄게요. 무슨 이야기든... 그리고 다음엔, 내가 뒤에서 받아 줄게요."

말을 이어갈수록 자신의 슬픔과 그녀의 슬픔이 가슴 속에서 합쳐지며, 윤계상은 점점 더 목이 메어 옵니다. 그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김지원의 눈에서도 어느 새 눈물이 흘러내리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합니다. "아저씨... 저 그 때... 정말 무서웠어요... 아빠가 가고 나서 차 안에 혼자 남았을 때... 지금처럼 밤이었고..." 그저 무서웠다는 단순한 말에 불과했고 그나마 미처 끝맺지도 못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상처를 그녀 스스로 끄집어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드디어... 진짜 치유가 시작된 거죠.

91회의 내용은 사실 제가 '하이킥3' 초반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계상과 지원이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될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남녀간의 설레는 감정을 확인하는 것보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에피소드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나온 경향이 있네요. 이건 거의... 마지막회 분위기에 가까운 느낌인데 말이죠..;; 차 안에서 자기 상처를 털어놓는 지원의 모습은, 역시 차 안에서 지훈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놓던 세경의 모습과 겹쳐졌고, 더구나 두 사람이 타고 달리는 자동차가 정지화면으로 잡히며 의미심장하게 떠오르는 엔딩 크레딧은 가슴이 철렁할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원하고 기다렸던 내용을 깊은 감동으로 시청했는데도 마음이 개운치 않은 이유는, 앞으로도 30회나 되는 분량이 남아 있는데 과연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120부작에서 30회라면 무려 1/4 이나 되거든요. 중후반에 결성된 커플들은 대부분 새드엔딩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저는 오히려 계상과 지원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기가 최대한 늦춰지기를 바랬습니다. 윤지석(서지석)-박하선의 '지하커플'은 워낙 해피엔딩의 기운을 강하게 풍기고 있으니 지금쯤 결성되어도 괜찮지만, '지상커플'은 그러잖아도 비극적 기운을 잔뜩 내포하고 있는데 벌써 본격 궤도에 접어든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비록 연인 관계가 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급속도로 가까워졌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중심축이 윤계상이 아니라 김지원이라는 사실은 정말 다행입니다. (관련 포스팅 : 하이킥3,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다) 윤계상 캐릭터는 이미 정점에 달해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지요. 그가 중심축이라면 이로써 그들의 이야기는 끝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지원은 이제 시작이죠. 그녀는 지금부터 기면증을 치료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진로를 선택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등, 수많은 일을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앞길에는 무궁무진한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껏 김지원의 활약은 다른 주요 캐릭터에 비해서 상당히 미미한 편이었고, 그녀의 구체적인 속마음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그녀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군요. 91회를 보고 나서 잠시 감동에 파묻혀 있던 저는, 곧바로 밀려드는 혼란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는 온통 물음표만 가득한데, 이런 상황에서 MBC 파업의 여파로 결방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견디며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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