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박2일' 시즌2, 욕하더라도 일단 보고 나서 하면 안 될까? 본문
정식 발표는 2월 중순에 될 거라고 하지만, 사실상 '1박2일' 시즌2의 새 멤버가 이미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소식통에 의하면 새로 합류할 멤버는 김승우, 성시경, 주원의 3명이고 기존 멤버 중에는 엄태웅, 이수근, 김종민이 잔류한다고 합니다. 이승기와 은지원의 하차는 이미 결정된지 오래라고들 하더군요. 게다가 나영석 PD를 비롯한 제작진 또한 시즌2에 합류하지 않고 모조리 새로운 인물들로 바뀐다 하니 아무래도 우려가 커지긴 합니다. 특히 나영석 PD가 빠진 '1박2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터라, 그 이름으로 계속 불러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마저 생기네요.
실질적 에이스 역할을 해 왔던 이승기와 은지원의 하차도 치명적입니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 후, 나영석 PD와 손발을 맞추며 '1박2일'을 이끌어 온 것은 이 두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엄태웅의 뒤늦은 약진이 있었지만 그 역시 이승기를 비롯한 동생들의 든든한 조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김종민은 여전히 구멍 역할에서 벗어날 둥 말 둥 하는 중이며, 이수근은 손발이 잘 맞는 리더가 이끌어 주지 않는 한 자기 단독으로는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갈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 합류하는 멤버들이 과연 강호동, 이승기, 은지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솔직히 저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겠습니다. 별로 가능성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뚜껑이 열리려면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 새 멤버가 정해졌다는 기사조차도 아직 100%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너무 심한 비난의 소리들이 흘러나오는 것은 매우 듣기가 거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절대 '1박2일'을 안 볼 거라는 말이나, 몹시 실망스런 선택이라는 말은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그 정도면 개인적인 의견 제시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가 차다는 둥, 아예 망할 작정이라는 둥, 심지어 저주스럽기까지 하다는 둥, 이런 표현들까지 접하게 되니 약간 섬뜩해지더군요. '1박2일' 시즌2에 새 멤버로 합류를 결정한 것이 뭐 그리 죽을 죄라고, 시작도 하기 전부터 온갖 비난과 욕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는 걸까요?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단지 '1박2일'에 한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여주인공을 맡은 한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그녀의 출연 분량은 5초 밖에 방송되지 않았고 한 마디의 대사조차 없었건만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리고 예전에 연기력 논란이 좀 있었다는 이유로, 정말이지 엄청난 비웃음과 혹평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지요. 한가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일 겁니다. 여주인공과 본인의 나이대가 맞지 않는데도 무리해서(?) '해품달'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 외에, 아직은 뚜렷한 잘못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한가인을 향한 우려의 시선들에는 저도 꽤나 공감을 하는 터이기에,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섬뜩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일단 '해를 품은 달'은 이미 차려진 밥상입니다. 뚜껑이 활짝 열린지도 3주일이나 지났습니다. 그 동안 아역 연기자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밥상은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말하자면 전채요리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메인요리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치가 최고조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지요. 성인 연기자들로 바통 터치되면서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허염의 급노화라든가 민화공주의 발연기 등)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특히 한가인과 쌍벽을 이룰 남자 주인공 이훤 역할의 김수현은 6회 전체를 혼자 이끌다시피 하며, 썩 괜찮은 연기력과 더불어 맡은 배역과의 훌륭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인의 존재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위험요소이며, 시청자를 불안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자칫 그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이렇게 잘 차려져 있는 밥상 전체가 그녀 하나 때문에 와장창 뒤집힐 수도 있으니까요. 좀 억울하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데뷔 10년차의 배우로서 여태까지 연기력을 검증받을만한 작품을 단 한 편도 찍어놓지 못한 것은 엄연한 그녀의 책임이거든요. 쏟아지는 비난을 부당하다고 탓하며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이를 악물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것만이 그녀가 살아남을 길입니다.
하지만 '1박2일' 시즌2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일단 그 쪽 집에는 아직 밥상이 차려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상다리도 펴지 않고 숟가락도 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채요리를 맛보기는 커녕 아직 음식 냄새도 풍겨오기 전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맛이 없을 것 같다고 온갖 비난에 욕을 해댄다면 그게 정당한 일일까요? 물론 집안 살림도 워낙 빈곤해 보이는데다, 멀찌감치 보이는 음식 재료들을 보니 왠지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은 느낌도 들긴 합니다. 하지만 혹시 또 압니까? 아직 소개받지도 못한 그 댁 주부님의 음식 솜씨가 의외로 뛰어나서, 부족한 식재료들을 멋지게 활용하여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물론 새로운 제작진이 나영석 PD보다 훌륭한 요리 솜씨를 지녔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형편없을 거라고 단정지을 필요도 없는 일이죠. 새로 합류할 멤버들의 예능감이라든가 리얼 버라이어티 적응 능력 또한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2007년 말, 이승기가 처음 합류할 당시에는 그런 우려가 없었던가요? 솔직히 저는 얼짱 캐릭터에 엄친아 이미지를 가졌고 나이까지 어린 이승기의 합류가 별로 반갑지 않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너무 안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반듯하게 생겨서 노래도 잘 부르던데, 그냥 가수 활동에만 전념하지 왜 이런 데까지 기웃거리나 싶어 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 때 저는 이승기처럼 반듯한 캐릭터의 합류가 '1박2일' 특유의 재미를 조금씩 갉아먹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 출발부터 야생 버라이어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1박2일'은 온갖 종류의 망가짐과 생고생, 엉망진창, 제멋대로, 이기적인 행동들, 기타 등등의 진상(?)들이 모여서 독특한 재미를 자아내고 있었거든요. 반듯한 이승기가 그런 특성을 중화시켜서 점점 재미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프로그램의 특성이 중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이승기가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아들면서 '허당'이라는 대박 캐릭터가 생겨났고, 우리는 그 반듯한 아이가 사정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가장 통쾌한(?), 아니 흐뭇한 기분으로 즐기면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막상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겁니다. 이미 인생의 틀이 잡혀 있고 변화가 쉽지 않은 나이... 44세의 김승우는 솔직히 여러모로 많이 걱정되지만, 성시경과 주원의 경우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기대해 볼만도 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특히 지난 번 시청자투어에서 객원 MC로 초빙되어 90대 어르신팀의 조장을 맡았던 성시경은 퍽이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차가워 보이지만 의외로 따스하고, 부지런하고 적극적이었지요. 가끔 독특한 말실수를 해서 밉상으로 찍힐 때가 있지만, 잘만 하면 그런 부분도 재미있는 캐릭터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껏 예능 활약이 전무하여 백지상태인 주원에 대해서는 미리 걱정하거나 욕할 필요가 더욱 없습니다. 일단 보고 나서 무슨 말이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기존 '1박2일'의 정든 멤버들과 제작진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다는 것,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각각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어쩌겠습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니 이별은 순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에는 좀 미덥지 않더라도 우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는 게 어떨까요? 정말 못하면 나중에 가서 욕해도 늦지 않습니다. 혹시나 시즌2가 '1박2일'의 명예로운 이름에 먹칠을 할까봐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봐야 벌써 이룩해 놓은 업적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너무 앙앙불락하지 말고 마음 편히,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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