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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공황장애, 왜 이경규를 비난하는가?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남자의 자격' 공황장애, 왜 이경규를 비난하는가?

빛무리~ 2012. 1.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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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자 '남자의 자격' 방송에서 이경규는 자신이 4개월 전부터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꾸준한 약 복용과 운동 요법 등으로 현재는 많이 나아진 상태이지만, 툭하면 예고 없이 닥쳐오는 강한 죽음의 공포는 견디기 힘들었노라 고백하더군요. 가슴 통증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자신이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꼬집어 보기 일쑤였으며, 느닷없이 녹화를 중단한 채 병원에 달려갔던 적도 몇 차례나 있었다고 합니다. 병을 숨겼던 탓에, 모두들 그저 과로 때문인 줄만 알았다지요.


방송을 보며 저도 많이 놀랐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얼마 전 이수근이 아내와 둘째 아들의 투병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언제나 밝은 모습만을 보여왔던 그들이기에, 감추어야만 했던 고통은 더욱 큰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수근 관련 기사에도 엄청난 악플이 많이 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유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수근의 과거 행적 때문이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너무 잔인하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병석에 누워 있는 젊은 여인과 어린 아기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설령 그 추악한 이야기가 사실이라 한들, 아픈 가족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까지 가짜이겠습니까?

이제 수개월 동안 홀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방송을 계속해 왔다는 이경규의 고백에도 어김없이 악플은 쏟아집니다. "공황장애 고백 이경규, 돈도 인기도 부질없어" 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포털 메인에 떴는데, 추천수 높은 댓글들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더군요. 고통받는 사람을 향해 위로를 건네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욕하고 비아냥거리는 모습들을 보니, 과연 이 시대가 얼마나 각박하고 험악한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난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경규의 '정치색'과 '돈'이었습니다.


우선 저는 이경규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여기서 말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저 맨 윗사람의 댓글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색이 곧 사람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경규의 정치색 때문에 그의 고통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사람들의 부모님 중에는, 과연 그와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안 계실까요? 그들은 만약 자기 아버지가 공황장애에 걸려서 날마다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다면 "그 따위 쓰레기 정당을 지지하셨으니까 아버지는 병 걸려도 쌉니다!" 이렇게 말할 건가요? 굳건한 소신을 지니는 거야 좋지만,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과신으로 타인을 무조건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둘째로 이경규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더욱 황당합니다. 댓글을 보니 "돈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많은 돈을 깔고 앉아서 돈이 부질없다는 소리나 하다니!"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의견들이 꽤 있더군요. 하지만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좀 자극적으로 뽑혔을 뿐, 이경규는 돈이 부질없다거나 쓸데없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인기로 사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결국은 인간관계죠.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가... 그거예요!" 이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 뜻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관계다" 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도 아니고, 누군가 저 말을 듣고 상처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비난받을 근거가 되는 거죠?

자신의 고통을 근거로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가난한데 너는 부자니까, 나는 못생겼는데 너는 잘생겼으니까, 너는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졌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아파하는 것은 엄살이다!" ... 살다 보면 의외로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아니지만, 일단 자신의 고통이 워낙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미워하게 되는 것이죠.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게 아닌 것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해서 아픔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30년이나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 온 이경규가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은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왜 그것을 이유로 병의 고통마저 비난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저 가슴 속 가득찬 울분을 누군가에게 토해내고 싶은 군중심리라고 밖에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서 날마다 울화가 치미는데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내색도 할 수 없으니, 익명의 공간에서 화풀이 상대를 찾는 거겠죠. 하지만 그 대책없는 화풀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돌아갈테니, 이것은 끔찍한 악순환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유없이 칼을 겨누고 있는 형국입니다. 남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 상처를 겨누어 후벼파는 잔인한 행동은 하지 맙시다. 이 돌고 도는 세상 속에서, 그런 행동은 결국 나 자신의 고통으로 돌아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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