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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의사(醫師), 성현과 인간의 갈림길에 선 그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브레인' 의사(醫師), 성현과 인간의 갈림길에 선 그들

빛무리~ 2011. 11. 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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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끌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2007년의 '하얀 거탑'이 그러했고, 이제 2011년 초겨울에 새로 시작된 '브레인'이 또한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 1~2회를 보면서도 느낌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특히 어제 시청했던 3회는 저의 개인적인 기억과 맞물려 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주인공 이강훈(신하균)의 캐릭터에 제가 몰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이 인물에게는 변화가 예정되어 있거든요. 신경외과 전임의(펠로우) 2년차인 이강훈은 개천에서 난 용이며 욕망의 화신입니다. 아직까지는 '하얀 거탑'의 주인공이었던 장준혁(김명민)과 흡사합니다. 모두가 장준혁에게 열광할 때 저는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지요. 의사도 인간이기에 출세하고 싶은 그의 개인적 욕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환자의 안위보다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기는 그의 자세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명민의 신들린 연기력과 더불어 드라마상에서는 너무 매력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저는 대다수의 시청자들과 달리 끝내 장준혁에게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하얀 거탑'이 절반의 성공작이었던 이유는 명의(名醫) 장준혁만 부각되었을 뿐, 그 상대편에서 굳건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던 인의(仁醫) 최도영(이선균)의 캐릭터가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무능하고 나약하게 표현되는 최도영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터졌던지, 저는 그 답답한 속을 풀기 위해 생전 안 보던 일드까지 챙겨 보아야만 했습니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에서는 최도영에 해당되는 캐릭터가 그토록 멍청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과연 그러했습니다.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서야 미칠듯 답답했던 제 속이 좀 풀렸고, 일본판 '하얀 거탑'은 지금까지도 제가 유일하게 본 일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인'은 '하얀 거탑' 보다 더 제 취향에 잘 맞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의(仁醫) 캐릭터가, 역시 제가 좋아하는 배우 정진영에 의해서 아주 멋지게 표현되고 있거든요. 바로 천하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인 괴짜의사 김상철입니다. 김상철은 신경과와 신경외과, 뇌 과학 분야를 두루 통달한 천재이며 세계적인 뇌 전문가입니다. 실력면에서도 최고이지만, 무엇보다 환자들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김상철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그저 착하기만 할 뿐 무능하고 찌질해 보이던 최도영과 달리, 최고의 인품과 실력을 겸비한 김상철의 캐릭터는 매우 강력합니다.

욕망의 화신이며 출세를 지향하는 주인공 이강훈은 현재 김상철과 대척점에 서 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김상철을 진심으로 따르는 제자로 변신한다는군요. 그 때가 되면 저도 주인공에게 홀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환자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한 이강훈의 실책 때문에 당장 3회에서도 한 명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이강훈의 실수가 아니라 신경외과 과장 고재학(이성민)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그 곁에서 끝없이 딸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던 이강훈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력과 인품으로 나날이 스타가 되어가는 김상철 교수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낀 고재학 과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칠만한 이슈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그에게 잘 보이고 싶던 이강훈은 김상철 교수의 환자를 교묘히 설득하여 고재학 과장에게로 넘어오게 합니다. '각성수술'이라는 독특한 뇌종양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였는데, 그의 수술과 회복 과정은 메디컬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될 예정이었지요. 그 수술의 집도의는 당연히 이슈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테니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고재학 과장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각성수술이란 언어중추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수술 중 환자의 마취를 깨워서 대화하며 수술하는 거라는데, 아무리 뇌는 통증을 못 느낀다지만 상상만 해도 섬뜩하긴 하더군요..;;

워낙 관심이 집중되는 수술이다 보니 병원장(반효정)을 비롯하여 온갖 취재진과 김상철 교수까지 참관하는 와중에 고재학 과장은 메스를 들었습니다. 환자를 깨우고 대화를 시작하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표하는 언어중추가 쉽게 잡히지 않자 고재학의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다들 보고 있는데 훌륭한 실력을 증명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결국 고재학은 이강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티벨레이터(?)의 수치를 높였는데, 의학 용어라서 잘 모르겠지만 짐작컨대 환자의 각성 수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환자가 좀 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해서 언어중추를 빨리 찾으려는 거였나봅니다.

하지만 의사의 욕심 때문에 위험을 무릅쓴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뇌가 열린 상태에서 환자는 경련을 시작했고,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입으로는 거품을 내뿜기 시작했거든요. 4회의 예고편을 보니 다행히 환자가 죽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려 하는 의사의 탐욕스런 모습이, 무섭게 경련하는 환자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련한 삶의 비애를 느끼게 했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3회의 내용이 저의 개인적 기억과 맞물렸다 했었죠. 제 블로그의 오래된 단골 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올해 초에 제가 코의 물혹 제거와 부비동염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수술받던 무렵에 어느 메디컬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찾아와 그 의사 선생님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약간 카메라 기피증이 있는지라 평소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제가 환자로서 선생님과 상담하는 중에 느닷없이 카메라를 들이대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니만, 설상가상 제 수술 과정을 촬영하고 싶다면서 양해를 구하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들도 알았다고 했는데, 수술 전날 미리 입원해서 링거를 맞으며 잠들어 있던 오밤중 12시에 갑자기 1층에서 웬 수련의(?)가 저를 호출해서 내려오라고 하더니 다 끝난 줄 알았던 촬영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불쾌한 감정이 확 치밀더군요. 아무리 작은 수술이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진행해야 하는 터라 그러잖아도 긴장되고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분명히 거부했던 촬영을 왜 다시금 강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수술 앞둔 환자의 마음을 재차 거북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음 날 오전, 혼자 입원실에 있던 저에게 간호사가 오더니 촬영 때문에 수술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었다면서, 자세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무작정 저를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수술실로 끌고 내려가는 바람에 혼비백산을 했습니다. 혹시 마취된 상태에서 나 몰래 찍으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 시간이 안된 줄 알고 보호자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누구와 의논할 겨를도 없었고, 간호사가 너무 급히 재촉하는 바람에 속절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수술 침대에 누웠는데, 거의 눈물이 다 날 지경이더군요.

하여튼 그놈의 촬영 때문에 수술 전에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브레인' 3회를 보면서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드라마에서 연출된 사건에 비한다면야 저의 경험은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했지만, 환자의 입장보다 의사 또는 촬영팀의 입장을 우선시함으로써 환자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레인'을 시청하며 저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그들은 인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성현(聖賢)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할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남에게 '이타적인 삶'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이기적으로 살든 이타적으로 살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그 중에도 특히 ... 의사들은 말입니다.

어쩌면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성현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환자에게 유리하다면 그쪽을 선택할 수 있는 희생적인 마음... 어찌 보면 가혹하다 싶을 만큼 무리한 요구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강요될 이유가 없는 이와 같은 무리한 덕목이 의사에게는 강요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순간 타인의 삶과 죽음과 운명을 자기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진실을 자각하는 의사들은, 어쩌면 날마다 성현과 인간의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현실 속의 의사들은 너무 바빠서 이런 한가로운 생각 따위는 할 겨를조차 없을까요? 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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