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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약속' 미워도 부인할 수 없는 김수현의 능력 본문

드라마를 보다

'천일의 약속' 미워도 부인할 수 없는 김수현의 능력

빛무리~ 2011. 11. 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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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제 마음 속에도 타인에 의해 모욕당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역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가톨릭 신앙입니다. 진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가치를 모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절대로 타종교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부정적인 언급도 하지 않으려고 주의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일상 생활 중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든 손가락으로 치는 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종교인이 아니라고 해서, 특정 종교에 대해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눈앞에서 자기 아버지의 따귀를 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면 과연 참을 수 있을까요? 무슨 이유로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마음 속 가득히 차오르는 분노와 충격을 억누를 수 있을까요? 발만 담그고 있는 종교인이 아니라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의 종교가 모욕당하는 것은 그와 똑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타종교인들의 어떤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불쾌했던 기억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잘못일 뿐 그 종교 자체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종교라 해도 그 안에는 분명 자기 자신보다 타인의 삶을 더 귀히 여기는 훌륭한 신앙인들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절대로 그 종교 자체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어렵지만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 종영 당시에 김수현 작가가 보여주었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수십년 동안 그녀의 팬이었기 때문에 분노는 더욱 컸습니다. 나이는 70대에 이르렀고 평생토록 작가 활동을 해 온 지식인이면서, 남의 종교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 하나를 간직하지 못했다니 그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더러운 걸레로 얼굴을 닦인 기분' 이라는 그 표현은 지금 생각해도 파르르 치가 떨립니다.

동성애 커플의 언약식 장면을 실제 성당 안에서 촬영하려다가 무산되자,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아마도 촬영팀을 쫓아냈던 성당의 압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가톨릭의 품이 넓다 생각했던 것도 오해였나보다... 나는 성당이라는 곳은 살인범이 숨어들어도 내치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저렇게 단순한 말로 가톨릭을 디스하는 김수현 작가의 태도는 경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이 포스팅에 길게 언급할 수 없으니, 예전의 포스팅을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김수현 작가에게 실망한 이유]

그 이후부터 저는 김수현의 드라마를 외면할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천일의 약속'이 새로 시작될 무렵, 공중파 3사의 월화드라마는 기근 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볼 게 없었단 이야기죠..;; 초반에 흥미를 갖고 시청하던 '계백'의 스토리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참을성이 부족한 저는 이미 시청을 포기한지 오래였고, 아이돌 출신의 신인 연기자들을 주연급으로 기용했던 '포세이돈'에도 좀처럼 흥미가 끌리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저는 원래 수애라는 여배우를 매우 좋아했고, 치매에 걸린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그 소재에도 은근히 끌렸습니다.

내 종교를 모욕한 김수현 작가도 싫고, 하필 텐프로 술집에서 단합대회인지 뭔지를 하다가 폭력 사건에 휘말린 김래원도 싫지만, 호기심 반 흥미 반에 이끌려 결국 '천일의 약속'을 시청하고 말았습니다. 초반부터 지나치게 선정적인 베드신으로 시선을 끌어 보려는 그 유치한 시도를 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고소했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김수현도 한물 갔구나, 저렇게 안 하면 시청률을 잡을 자신이 없나 보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볼 것이 없어서 일단 보기는 한다만, 절대로 이 드라마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썩 괜찮은 의학드라마 '브레인'이 동시간대에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지난 2주 동안은 '천일의 약속'을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요? 오랜만에 '천일의 약속'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더해가는 '브레인'이 있고, 설상가상 제가 좋아하는 탤런트 안재욱이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하는 작품 '빛과 그림자'도 새로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둘 다 외면하고 '천일의 약속'을 시청했습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던 겁니다. 그리고 제 가슴을 울리는 몇 마디의 대사를 듣는 순간, 마력처럼 끌려온 그 이유를 알 듯도 싶었습니다.

점점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가는 이서연(수애)은 늘 다니던 길에서도 넋을 놓고 헤매기 일쑤였는데, 그런 그녀가 여전히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박지형(김래원)은 화를 냅니다. 돈 아까워서 택시를 못 타겠다는 서연에게 지형이 하는 말... "나한테 아까운 건 너밖에... 아무것도 없어!"

한 때 박지형의 약혼녀였던 노향기(정유미)는 아직도 박지형을 사랑합니다. 그 동안 양다리를 걸치고 다른 여자를 몰래 사랑해 왔다는 그 치떨리는 이유로, 결혼식 전날 모든 것을 박살내고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그 남자를 여전히 사랑합니다. 따뜻한 쿠키를 구워서는 자기를 배신한 그 남자의 오피스텔에 찾아가 살며시 문 앞에 놓고 오는, 바보같은 그녀의 사랑에 자존심 따위는 없습니다. 우연히 그 시간에 집에 돌아온 박지형과 마주쳤을 때 향기가 하던 말... "오빠, 쿠키 버리지 마... 먹기 싫으면 사무실에 갖고 나가..."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꼭 한 번은 다시 만나고 싶다면서 박지형을 불러낸 노향기는 말합니다. "앞으로 어떤 곳에서 우연히 나랑 마주치더라도... 나 모른 척하지 마..." 그리고 헤어지면서 또 말합니다. "오빠, 결혼 축하해... 오빠가 행복하지 않은 건 싫어... 행복해야 해!" 

박지형의 엄마 강수정(김해숙)을 통해 그 녀석이 결혼하려는 여자가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노향기의 엄마 오현아(이미숙)은 펄펄 뛰며 분노합니다. "치매환자한테 우리 향기가 까였다는 거니? 치매환자 때문에 우리 개떡을 만들었다는 거야?" 하지만 엄마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노향기는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그 사람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오빠를 왜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아. 어쩌면 오빠랑 나는 닮은꼴이야. 나도 그런 사랑 할 수 있는데...나도 할 수 있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기에는 너무 무리하고 비도덕적인 면이 많았던 박지형의 행동이지만, "나한테 아까운 건 너밖에 아무것도 없다" 는 대사 한 마디는 묘하게도 그 캐릭터에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 과연 너밖에 아무것도 없는 미친 사랑이구나... 그런 느낌이랄까요. 특히 '지고지순'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어울리는 노향기의 대사들은 너무나 바보같고 천사같은 그녀의 마음을 더없이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노향기의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답답해서 짜증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인물이 현실 속에 많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특별한 사랑은 제 마음에 더욱 깊이 와닿았습니다.

사실 저는 김수현 특유의 대사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지나치게 시끄럽고 따발총 같다는 이유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 날카롭고 직설적인 대사들에 오히려 속이 시원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녀가 가톨릭을 디스한 이후로 절대 김수현을 칭찬하는 일은 없으리라 저는 다짐했지만, 오랜만에 '천일의 약속'을 다시 시청하면서 그녀의 죽지 않은 능력을 부인할 수는 없더군요. 이렇게 멋진 대사를 쓰는 작가인데, 트위터 발언에 있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김수현 작가는 최근까지도 각양각색의 트위터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더니만, 결국은 11월 초에 트위터 계정을 탈퇴하고 말았다더군요. 하지만 그녀의 경솔한 발언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힌 후였습니다. (그 발언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일이 주워섬기기도 힘드니 역시 예전의 포스팅으로 대신합니다. [김수현 작가, 대체 어디까지 가실 겁니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그 연세에도 좀 더 시청자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는 좋은 뜻에서 트위터를 시작했겠지만, 결국은 서로 상처투성이가 된 채 끝나고 말았군요.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것을 가까이 하지 말고 오직 드라마만 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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