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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약속' 초장부터 베드신 남발, 그래야만 했을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천일의 약속' 초장부터 베드신 남발, 그래야만 했을까?

빛무리~ 2011. 10. 1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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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의 사랑을 지키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모토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지고지순하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첫방송만 시청하고 나서 볼 때는 남주인공 박지형(김래원)처럼 세상에 나쁜 놈이 없습니다. 친구의 사촌여동생인 이서연(수애)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봐서는 기이하게 집착하며 데리고 놀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 장재민(이상우)이 다음 회의 예고편에서 말하더군요. "멀쩡한 집안의 딸이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너는 서연이를 무시한 거야" 방송을 보면서 제가 받은 느낌도 그랬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채 어린 동생까지 데리고 고모네 집에 얹혀 살며 눈칫밥으로 성장했을 이서연으로서는, 벌써 약혼자까지 있는 부잣집 아들 강지형을 꽉 붙들 만큼의 자신감이 없었던 게 당연합니다. 강지형은 주장합니다. "나는 모든 판을 엎고서라도 너와 결혼하겠다 했지만,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기 싫다면서 끝내 거절한 것은 너였다" 고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변명이며 책임전가에 불과합니다. 1회 말미에 그랬던 것처럼, 진작에 용기를 냈어야죠.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두렵다면서 이제껏 시간만 질질 끌고, 그 와중에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녀 노향기(정유미)와도 몇 차례씩이나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렇게 지내온 강지형이, 어떻게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이서연을 사랑하는 남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서연을 대하는 강지형의 태도는 지나치게 고압적입니다. 면목 없어야 할 입장은 분명 자기 쪽이건만, 약속 시간에 좀 늦었다고 그녀에게 버럭버럭 화를 냅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달래지만 좀처럼 화를 풀지 않습니다. 바쁜 업무 중에 너를 만나려고 겨우 스케줄 빼내서 3시간 확보했는데, 네가 1시간 30분이나 늦게 오는 바람에 그만큼 손해를 봤다면서 말입니다. 사실 이서연은 전혀 예측도 못하고 있다가 "10분 내로 나와" 라고 명령하는 강지형의 전화를 받자마자 5분 대기조처럼 부리나케 뛰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점차로 치매 증상이 시작되면서 중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서 늦게 되었던 것이죠.  

강지형이 그토록 화를 냈던 이유는 노향기와의 결혼 날짜가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서연은 그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잠시 도둑질하겠노라며 사랑을 허락했으니, 이제 헤어질 때가 가까워 온 것입니다. 이별의 원인은 분명 자기에게 있건만 "싫다고 한 것은 너야" 라고 강지형은 말합니다. "내 탓으로 하면... 좀 편할 것 같니? 그럼 그렇게 해" 이서연은 슬픔을 삼키며 쿨하게 말하는데, 그녀의 어리석은 사랑은 그저 애처로울 뿐입니다.

방송 이후 시청자게시판에는 김수현 작가 특유의 따발총 같은 대사들이 시끄럽고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시끄러운 것보다도 그 고풍스런 소설적 대사들이 확실히 부자연스럽긴 하더군요. 예를 들면 "그 친구, 좀 전에 푹 삶은 영덕게처럼 얼굴이 벌개 가지고 뛰쳐 나갔어요!" 이와 같은 표현을 실제 생활에서 과연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80~90년대에는 그런 대사들이 나름 멋있었지만, 이 시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욱 불편한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초반부터 등장한 키스신과 베드신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 마치 에로물이나 포르노를 보는 것 같았다는 의견이, 대사에 관한 불만과 더불어 시청자 의견의 대다수를 이루었습니다. 노출이 그리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우들의 동작이며 분위기 자체가 너무 선정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은 오후 10시경인데 초장부터 그런 장면이 거침없이 등장하니, 대수롭지 않게 자녀와 더불어 시청하던 사람들은 민망함에 기절초풍을 했을 겁니다. 어떤 시청자는 딸과 함께 보다가 너무 당황해서 채널을 돌렸는데, 잠시 후 "이젠 지나갔겠지" 하고 다시 틀어보니 또 그러고 있었다면서 황당한 심경을 토로하더군요.

작정이라도 한 듯, 남녀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여 나누는 대화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란히 차 안에 앉아서 남자가 말합니다. "서연아,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그 날부터 난... 너를 안고 싶다는 욕심이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느낌이야. 어느 순간들은 내가 그 욕심만으로 다인 것 같아. 틈틈이 궁리하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덜 나쁜 놈이 되면서 너를 안을 수 있을까 뿐이야."

그 말을 듣고 여자가 대답합니다. "나는... 내가 먼저 덤벼들면 안되나? 그러는데... 망신당할까봐 아닌 척 하고 있는 건데!" 뜨겁게 마주치는 두 사람의 시선에서 화면이 넘어갑니다. 아까 언급했던 그 베드신의 시작입니다. 격하게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남녀의 모습이 탈의 장면에서부터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됨으로써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잠시 후의 장면에서는 남자가 몹시 화를 내고 있습니다. 자기는 업무 중에 간신히 3시간 짬을 내었는데, 그녀가 늦게 왔다고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그 장면도 얼마 못 가 베드신으로 이어집니다. 지형이 서연의 옷을 벗기려던 참에 약혼녀 향기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고, 서연은 그 전화를 받으라면서 자기는 욕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의 기쁨에 설레고 있는 천진난만한 향기에게 지형은 무뚝뚝한 몇 마디 말로 대꾸한 뒤 전화를 끊고, 욕실로 들어가 치약 거품을 가득 문 서연에게 막무가내로 키스를 시도합니다. 이 또한 다분히 변태스런 느낌을 풍기는 장면이라, 공중파 드라마에서 보기에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두 사람이 상의를 벗은 채,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그렇게 격한 사랑의 행위가 끝난 후,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결혼 날짜가 잡혔음을 통보합니다.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여자는 수차례 연습했다면서 쿨한 표정으로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남자는 그녀가 자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 또 불만입니다. 하지만 남자가 안 보는 곳에서 애끓게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의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안간힘을 써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녀의 어리석은 사랑은 그저 애처로울 뿐입니다.
앞으로 강지형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져 갈 것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첫인상부터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왜 첫회부터 남주인공을 이토록 비호감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정도가 지나친 베드신이나 변태적으로 보이는 키스신의 남발은 아무쪼록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홈의 시청자게시판에 한 고등학생이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 고등학생은 이 드라마의 시청 연령을 차라리 19세 이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앞으로는 청소년들을 위해 드라마에서 유해한 장면은 방송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말하더군요. 이렇게 청소년한테 혼나면서까지 노이즈 마케팅을 해야만 하는 걸까요? 작가도 연출자도, 좀 더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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