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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며느리' 가정불화를 조장하는 바이러스 같은 드라마 본문

드라마를 보다

'불굴의 며느리' 가정불화를 조장하는 바이러스 같은 드라마

빛무리~ 2011.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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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라든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등의 수식어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드라마 작가가 몇 명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영명, 문영남, 임성한 등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드라마에는 참으로 기이한 공통점이 있는데, 방송될 때마다 논란이 그치지 않고 호평보다는 악평이 자자한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동시간대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영명과 문영남의 작품은 제 취향에 맞지 않아서 거의 안 보았고, 임성한의 작품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동안 저의 사전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인생 최초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생겼으니 바로 구현숙 작가의 '불굴의 며느리'입니다. 한동안은 너무 짜증나서 시청을 딱 끊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렇게 되었군요. 김병욱의 '하이킥3'를 열렬히 애청하는 저로서는 일부러 신경써서 TV를 끄지 않는 이상, 같은 채널에서 바로 그 다음에 방송되는 '불굴의 며느리'를 저절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막장이라는게 참 묘한 중독성이 있더군요. 볼 때마다 너무 기가 차서 울분이 끓어오를 지경인데도, 다음 번 방송 시간이 되면 "오늘은 또 누가 무슨 황당한 짓을 하려나?" 싶은 궁금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입니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욕을 해대면서도 그 드라마를 계속 시청하는 사람들을 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네요..;; 아마도 막장을 쓰는 작가들은 오히려 칭찬보다 욕 먹기를 즐기는 듯도 합니다. 90회 방송에서 역겨울 만큼 포악을 떨어대는 최막녀(강부자)를 보니, 확실히 구현숙 작가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욕을 먹어 보자고 작정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내용을 쓸 수 있을까요? 그렇게 소원이라면 욕을 좀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컷 풀어놓고 나면 의외로 속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지도 모르죠..;;

차혜자(김보연)와 장석남(이영하)는 대낮에 커피숍 안에서 애절 모드로 끌어안고 있다가, 그 장면을 최막녀(강부자)에게 들켰습니다. 커피숍 문 밖에서 안쪽을 엿보던 최막녀는 장석남이 웬 여자를 끌어안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는 그것이 자기 딸 금실(임예진)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사랑에 빠진 남녀가 때맞춰 살짝 몸을 돌려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바람에 차혜자의 얼굴이 드러나고 만 것이죠. 최막녀의 성격으로 보아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적잖이 펄펄 뛰며 난리가 날 거라고 예측은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다리에 힘이 풀려 길바닥에 주저앉았다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온 최막녀는, 믿었던 며느리에게서 배신당했다며 서럽게 꺼이꺼이 울다가 자리를 펴고 누워 버렸습니다. 보통 노인의 우는 모습은 인간의 기본 심리 중 하나인 동정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라 저절로 가슴이 저린 법인데, 최막녀의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르르 치를 떨며 "저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최막녀는 이대로 굶어 죽겠다며 단식을 선언하고,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은 할머니를 둘러싸고 걱정하며 달래다가 지쳐 버렸습니다.

굶어 죽겠다더니만 어디서 또 불끈 힘이 솟았는지, 최막녀는 식식거리며 마당으로 나와 장독대로 다가가 미친듯이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에는 섬뜩한 귀기(鬼氣)까지 서려 있군요. 그녀가 땅 속에서 파낸 것은 싯누렇게 종이의 색이 바랜, 수십년 전의 편지 묶음이었습니다. 봉투 위에는 젊은 시절의 장석남과 차혜자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장석남은 차혜자의 남편이 죽었을 때부터 첫사랑 그녀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에 수십 통의 연애편지를 보냈으나, 그 편지들은 고스란히 최막녀의 손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네요.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사랑하는 남자와 얼마든지 새출발할 수 있었던 며느리를 만월당의 귀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의 편지를 가로채어 버린 최막녀의 행동은 파렴치한 범죄입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었을 수십년 세월을 헛된 그리움으로 보내야만 했던 장석남과 차혜자의 억울한 인생을, 최막녀는 대체 어떻게 보상할 것입니까? 하지만 최막녀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사위로 맞으려 했던 '커피 슨상님'의 정체가, 오래 전부터 자기 며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바로 그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최막녀는 분노가 치밀어 기절할 지경입니다. 

최막녀는 편지 뭉치를 차혜자에게 집어 던지고, 그것을 주워 본 가족들은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큰 딸 김연정(이하늬)의 반응입니다. 엄마의 편지를 가로채서 엄마의 아까운 청춘을 낭비하게 한 할머니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엄마가 우리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냐면서 오히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최막녀는 "바람난 며느리는 필요 없다" 면서 차혜자를 집에서 내쫓고, 오히려 원망해도 시원치 않을 차혜자는 그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울며 빌다가 결국 집을 나와 금실의 미장원에 주저앉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지가 수십년인데 어떻게 '바람났다'고 하는지 참 황당합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장석남까지 찾아와서 최막녀에게 무릎 꿇고 석고대죄한다는 설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중후한 신사가 남의 집 마당에 꿇어앉아 빌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최막녀는 한 됫박이나 되는 굵은 소금을 갖고 나오더니 사정없이 장석남의 머리에 주먹으로 뿌려댑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다행히 그것으로 그쳤지만, 다음 회 예고를 보니 최막녀는 빗자루를 들고 장석남의 커피숍으로 찾아가서 '혜자와'라고 새겨져 있는 간판을 부수고, 그것도 모자라 장석남을 빗자루로 마구 두들겨 패는 모양이더군요. 이것은 엄연한 폭행과 기물 파손으로 고발해야 마땅할 일인데, 오히려 피해자들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최막녀에게 고개를 숙이겠지요. 그것을 보는 우리 시청자들은 또 기막혀서 속이 뒤집히며 욕을 바가지로 해대겠지요..ㅎㅎ

'불굴의 며느리' 속에 등장하는 시어머니들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난 우리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 그래 놓고는 딸처럼 생각하는 과부 며느리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면서 화를 내고 펄펄 뜁니다. 예전에 오영심(신애라)이 문신우(박윤재)와 사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차혜자의 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었죠. 그 가증스런 모습 때문에 차혜자의 캐릭터도 욕 꽤나 먹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본인이 장석남과 사랑에 빠지면서 며느리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지만요.

그러나 평생토록 "딸보다 며느리를 믿고 의지하며" 지내왔다던 최막녀에게서는 개과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는 분노를 불태우면서 미친듯이 며느리와 그 애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이 노인을 어쩌면 좋을까요? 은발의 멋진 할아버지라도 소개시켜 드리면 좀 사람다워질까요? 아니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곱게 누워 단식이나 하다가 편히 떠나실 수 있도록 놓아 드려야 할까요?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은 저절로 자기 시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 중에서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나빴던 기억이 훨씬 더 쉽게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 시어머니는 어디까지나 시어머니일 뿐이지. 딸처럼 생각한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러면서 평소 시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내던 며느리까지도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에 젖게 될 것입니다. 최막녀의 포악스런 행패를 지켜보다 보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울분이 왈칵 솟구쳐 올라올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평화롭던 가정에 슬그머니 드리워지는 어둠의 그림자... 이쯤 되면 가정 불화를 조장하는 바이러스 같은 드라마라 표현해도 과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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