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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서지석, 아름다운 무존재감의 반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서지석, 아름다운 무존재감의 반란

빛무리~ 2011. 10. 1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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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의 '하이킥' 시리즈에는 언제나 '삼촌'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 '삼촌'들은 하나같이 훤칠한 외모의 싱글남으로서 멜로의 중심을 담당했고, 더불어 20~30대 젊은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하이킥3'에는 특이하게도 삼촌이 두 명이나 등장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 점이 매우 의외였고, 도대체 두 명이나 되는 삼촌 캐릭터를 어떻게 겹치지 않도록 조화시키며 이끌어 나갈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일단 '거침킥' 최민용과 '지붕킥' 최다니엘의 계보를 이어가는 삼촌 캐릭터는 윤계상입니다. 까칠민용, 시크지훈과 달리 윤계상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따스한 남자로서 성격은 전혀 딴판이지만, 시트콤 전체를 장악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며 여성 캐릭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포지션은 확실해 보입니다. 여고생 김지원은 벌써 사랑을 품기 시작했고, 낌새를 보아하니 머지않아 백진희도 윤계상을 좋아하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윤계상은 현재 누나의 식구들을 포함한 6인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의 중심이 됨과 동시에 모든 대소사의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누나 윤유선이 면목없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하무인의 뻔뻔한 자형 안내상조차 큰처남 윤계상은 약간이나마 어려워합니다.

이렇듯 윤계상이 절대적으로 주목받는 삼촌 캐릭터를 차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둘째삼촌 윤지석(서지석)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그의 포지션은 상당히 애매한 입장이에요. 한때 명인대학병원에서 잘나가는 의사로 근무했던 윤계상의 재력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따지고 보면 윤지석 역시 고등학교 체육교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누나의 가족들로 인해 부쩍 늘어난 생활비를 형과 함께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카들을 위해서는 형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하고 있지요. 창고로 쓰던 다락을 개조해서 방을 만들어 주고,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사라면서 문화상품권도 건네주고, 가격이 만만치 않을 노트북까지도 쿨하게 사주는 좋은 삼촌입니다.


이렇게 나름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건만, 이상하게도 윤지석이라는 인물은 그닥 돋보이질 않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있는 듯 없는 듯 편하게만 생각할 뿐, 별로 존중하는 기색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그에게는 행복한 러브라인조차 예정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는 이미 동료 국어교사 박하선을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아마 제대로 고백조차 못한 채 고영욱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더없이 선량하고 타인을 위할 줄 알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에게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무존재감... 그것이 현재까지 '하이킥3'에서 비추어지는 윤지석의 캐릭터입니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안내상과 그 가족들이 윤계상의 집에 더부살이하러 들어오던 날, 어떤 한 장면이 지금도 제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윤지석이 2층에서 내려오다가, 생각지도 않은 누나네 가족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우르르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머리를 다친 이유는 박하선에게 호신술을 가르쳐 준답시고 볼펜을 쥐어주며 자기를 공격해 보라고 깝치다가, 예상치 못한 박하선의 괴력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였죠) 


"누나가 여긴 웬일이야, 이 밤중에? 아니, 매형까지? 다들 꼴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냐니까? ... 아, 진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구? 왜 다들 대답을 안 해? 내가 투명인간이야? 내가 지금 다섯번째 묻고 있잖아? 누나, 누나, 무슨 일인데 응?"

흥분하던 윤지석은 급기야 피곤에 지쳐 축 늘어진 윤유선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데, 형 윤계상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조용히 하고, 이불이나 깔아!" 하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윤지석은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봤자 존재감 제로인데, 윤계상은 부드럽게 조근조근 말해도 그 한 마디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윤지석은 두말없이 형의 명령에 순종하는군요. "알았어. 이불 깔고 나서는 꼭 말해줘야 해!" 그러고는 식식거리며 이불을 깔러 방으로 들어갑니다.


참 이상할 정도로 개무시를 당하는 윤지석의 모습이 제 눈에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해 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듯했습니다. 왜일까요? 별로 무게감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는데 말이죠. 아마도 너무 잘난 형 때문에, 어려서부터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살아왔던 평범한 아우의 비애일까요? 한때는 서럽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그 자신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익숙해져 버린 그 무언가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윤계상은 누나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적금을 깨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윤유선의 손에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주고는 사람좋은 미소를 날리며 출근길에 나섭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유선은 작은동생 윤지석에게 묻습니다. "계상이가 정말 적금까지 깼니?" 그러자 윤지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합니다. "누나 신경쓰지 마. 비상시에는 비상으로 사는 거지 뭐"


하지만 별로 돈 쓸 일도 없는 총각 둘이서 살다가 느닷없이 6인 가족으로 늘어났으니 그 부담이 오죽 클까요? 먹고 사는 것만도 녹록치 않은데, 두 명이나 되는 조카들 학비에 교복비 등등까지 내줘야 하니까요. 자기 자식 키우기도 버겁다고 징징거리는 사람 많건만, 느닷없는 사태에도 불평 한 마디 없는 이 삼촌들 정말 대단합니다.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로서의 찬란한 미래를 포기하고, 작은 보건소에 근무하며 독거노인들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살아가는 윤계상의 인품이야 뭐 거의 슈바이처 수준이지만, 생각해 보면 형만큼 반짝반짝 빛나며 주목받지를 못할 뿐 윤지석의 인품 또한 형 못지 않게 훌륭합니다. 

16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캐릭터는 안종석(이종석)이었습니다. 언제나 동생 안수정(크리스탈)의 애교에 밀려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던 종석이가, 삼촌 윤지석으로부터 노트북을 받아내기 위해 필살의 "뿌잉뿌잉" 애교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뻣뻣한 소년이 굵은 목소리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애교를 부리는데, 그건 정말이지 보는 사람 누구라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죠.


하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석의 애교에 너무 놀라서 풀썩 주저않은 윤지석의 표정이었습니다. 말까지 더듬으며 "왜... 왜..." 하다가 결국은 "그래, 너 가져라" 하고 승낙하는데, 그 황당한 표정이 제 눈에는 너무 귀엽더군요. 그런데 애교까지 떨던 종석이는 원하는 것을 얻어내자 좋다고 "아싸~!"를 외칠 뿐, 삼촌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없습니다. 윤지석은 이렇게 베풀어도 생색이 나지 않고 대접도 받지 못하네요.

어쩌면 김병욱 PD는 윤지석을 통해,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젊음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특출한 재능이 있어야만 빛날 수 있는 사회...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티도 나지 않고 묻혀 버리는 각박한 현실... 용기가 없어서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손마저 안타깝게 놓쳐 버리고... 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그런 젊은이의 모습이 윤지석이라는 캐릭터 안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존재감 100%의 잘난 삼촌 윤계상도 멋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삼촌 윤지석도 무척이나 사랑스럽군요. 아름다운 무존재감의 반란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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