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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무심히 1, 2회를 보았다가 의외로 빠져들어 꾸준히 시청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더 해피엔딩'이 한국드라마의 고질병인 뒷심 부족을 극복할 수는 없을 듯하다. 생각지도 못한 로코의 재미에 흠뻑 젖게 만들었던 초반에도 사실 우려되는 부분은 있었다. 분명 남주인공은 송수혁(정경호)인데, 조연인 구해준(권율)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것이다. 어차피 여주인공 한미모(장나라)와 연결되지 못할 것을 아는데 너무도 심쿵하게 멋져 보이니, 이후의 전개가 설득력을 확보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우려는 적중했다. 물론 송수혁도 충분히 멋있지만 초반의 구해준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지는 못한 탓에, 한미모와 송수혁의 달달한 연애가 시작되었어도 나는 그에 빠져들기보다 구해준을 향한 안타까움이 ..
나에게 있어 홍자매표 남주인공은 아주 서서히 데워지는 크고 두꺼운 국냄비 같다. 나쁜 남자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성들은 홍자매의 남주인공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들지만 내 취향은 그 쪽이 아닌지라, 당최 몰입이 안 되면서도 꾹 참고 시청하다 보면 나중에는 좀처럼 끓지 않는 국냄비를 바라보며 짜증내는 심정이 되고 만다. 나도 남들처럼 열광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답답한 거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내 마음에도 까칠한 남주인공의 매력이 폭발하면 그 순간의 희열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홍자매의 모든 작품에서 그와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주군의 태양'에서는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종영을 불과 4회 앞둔 시점이라 ..
'유령' 11~12회에서는 이 드라마의 절대악이며 모든 범죄의 배후조종자인 조현민(엄기준)의 과거가 드러났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의 절대악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은 선천적 사이코패스에 가까워 사람을 죽이는 데에 타당한 이유가 없었지만, 조현민은 전혀 다르게 설정되었군요. 물론 지극히 냉혹하며 무차별적이라는 면에서는 강서연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스케일에 있어서는 강서연을 능가하는 수준이므로 사회에 전체적으로 끼치는 해악은 조현민이 훨씬 크다 하겠지만, 그를 희대의 악마로 만들어 버렸던 13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니, 저는 조현민을 탓하기에 앞서 이 썩은 사회와 인간의 추악함에 치를 떨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9년, 세상은 한 건의 빅뉴스로 떠들썩해졌으니, 바로 세강그룹 회장 조경문이 무..
김은희 작가 특유의 방식에 따라 '유령'은 두 갈래의 사건 진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최초의 사건과 관련된 난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며 드라마의 큰 줄기를 잡고, 한편에서는 자잘한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전작인 '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의 사건은 가수 서윤형 살해사건으로 듀스 김성재의 실화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의 배경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체포할 수 없었지요.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는 와중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고, 주인공 윤지훈(박신양)과 고다경(김아중)은 그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도 첫번째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윤..
'유령'은 상당히 특이한 드라마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1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2회부터는 슬슬 힘을 빼는 법이죠. 그래야 첫방송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수월하니까요. 최근 시작된 '추적자'와 '각시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막힐 듯 진행이 빠르고 역동적이던 1회에 비해, 2회는 현저히 늘어지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령'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1회는 첫방송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평이하고 잔잔하더니만, 오히려 2회가 상상초월 대박이군요. 저는 편안히 누워서 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까지 완벽 몰입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다음 주 종영을 앞둔 드라마 '싸인'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잘 짜여진 구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잘 어우러져서 긴장을 풀거나 지루할 틈 없이 계속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연기자 박신양에게는 별로 흡족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아픈 기억의 출연작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신양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은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쩐의 전쟁'까지의 시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역을 맡았던 여배우 김정은과 박진희도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박신양의 막강한 존재감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지요. 한창 물이 올랐던 그 시절에는 "애기야, 가자!"를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