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황금의 제국 (13)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지는 박경수 작가의 묵직하면서도 신선한 작품 세계에 적잖이 매혹당했던지라 그의 신작인 '귓속말'을 꽤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게다가 믿고 보는 여배우 이보영의 원톱 주연이라기에 더욱 기대가 컸는데, 한편으로는 박경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그려낼 수 있을지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워낙 선이 굵고 남성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하는 작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성의 섬세한 내면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좀 부족하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전작들은 모두 남주인공 원톱이었고, 여주인공들은 상대적으로 무척 비중이 적었을 뿐 아니라 충분히 매력적이지도 못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니, 나의 우려가 좀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보영의 연기력은 예상대로..
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
요즈음 나는 공포스럽도록 지독한 '드한기'에 허덕이고 있는 중이다. '드한기'가 무엇의 줄임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뜻은 '도통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서 지루한 시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평소 드라마 시청을 즐길 뿐 아니라 리뷰를 쓰는 활동을 통해서도 일상의 활력을 충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힘든 시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각종 드라마는 여러 방송국에서 차고 넘치게 방송되고 있으며 새로운 작품들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째서 당최 볼만한 것이 이토록 없는 것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황금의 제국'이 방송되던 6월부터 9월까지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 두 작품 외에도 썩 괜찮다 싶은 드라마가 초가을 까지는 제법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부터는 거의 전멸 수준이..
드디어 15년 전 납치 사건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중원을 납치해서 잔인한 추리소설을 읽히며 난독증에 걸리게 한 사람은 차희주였고, 폭발하는 차량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차희주의 쌍둥이 언니인 한나 브라운이었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던 주중원(소지섭)은 이제껏 차희주(한보름)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납치범의 정체가 자신임을 밝히며 "미안하게 됐어, 주중원!" 하고 말하던 순간의 얼음장 같은 모습과, 불타는 차에 갇혀 죽어갈 때의 애달픈 눈빛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증오해야 할지 가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주중원이 사랑했던 착한 한나는 죽었고, 질투심에 눈 멀어 납치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차희주는 뻔뻔하게 살아 ..
여전히 본방사수는 '황금의 제국'이다. 그러나 황금만 쫓는 사람들의 냉혹함에 가슴마저 시려올 때면 '굿 닥터'의 따스함에 저절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초반에 박시온(주원) 중심으로만 스토리가 전개될 때는 지나치게 교훈적이어서 오글거린다 싶었는데, 점차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나면서 색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소아외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개별적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역시 고정 출연자들의 이미지가 어필되어야 진정한 재미가 살아나는 것 같다. '굿 닥터'는 박시온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자폐증 환자를 비롯한 정신적 장애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쩌면 육체적 장애인들보다도 더욱 심한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비장애인들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한 가지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
이것은 명백히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지만, 전쟁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더욱이 사랑은 모든 예술작품의 영원한 테마가 아니던가? 치열하고도 복잡한 전쟁 스토리에 집중하다가도 처음부터 예고된 야수와 공주의 사랑이 언제 시작될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 24부작의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좀처럼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지 않았다.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은 형식적이나마 결혼을 했고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엔 오직 황금의 제국을 향한 욕망뿐인 듯, 서로를 향한 인간적 관심은 아예 차단된 상태로 줄곧 냉랭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영까지 불과 5회를 남겨둔 시점에서, 공주님의 오만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긴장감 넘치고 재미는 있는데, 경제 방면의 지식이 바닥 수준인 저로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드라마더군요. 그래도 월화요일의 본방 선택은 여전히 '황금의 제국'입니다. 전체적인 퀄리티도 가장 높은 듯하고, 일단은 신랑이 유일하게 몰입하며 신나게 보는 작품이라서 함께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초반에 큰 기대를 품었던 '굿 닥터'는 아예 대놓고 교훈적인 주제를 내세우며 눈물과 감동을 유도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매 회마다 꾸준히 반복되니 점차로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도리어 불편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7월까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덕분에 참 행복했었는데, 종영 후의 아쉬움을 달래줄 매혹적인 드라마는 아직도 나타나질 않고 있네요. 수목요일의 '주군의 태양'과 '투윅스'도 기대 ..
'황금의 제국'을 시청하다 보면 그 누구 한 사람에 몰입하기도 쉽지 않고 응원할 대상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딱히 선역이라 할만한 캐릭터는 없고 모두 비슷한 탐욕과 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보니 인물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시청하는 저로서는 시시각각으로 몰입하거나 응원하는 대상을 바꾸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순수함을 지키고 있는 막내아들 최성재(이현진)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한정희(김미숙)와 최성재 모자를 응원했습니다. 무려 27년 동안이나 속으로 칼을 갈면서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곁을 지켜 온 한정희 여사의 캐릭터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과 재산을 모두 잃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내동댕이 쳐졌던 과거의 상처가 얼마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혼자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최동성은 나의 아버지였다. 내 앞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씩 엄마의 두 눈에서는 증오의 푸른 불꽃이 일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그는 아버지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청마건설 사장 배영완보다, 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25년 동안 지켜보며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 주고 사랑해 준 성진그룹 회장 최동성이 내 마음 속에서는 더 진실한 아버지였던 거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생부의 기일마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 절하며 나는 빌었다. 제발 엄마의 증오를 잠재워 달라고, 엄마와 나를 이토록 사랑했으니 지금의 내 아버지를 부디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죽은 생부의 가슴 속에 맺힌 원..
예상보다는 다소 이른 시기에 한정희(김미숙) 여사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황금의 제국' 5회에서 한정희는 24년 동안 숨겨왔던 원한과 욕망을 남김없이 드러내었군요. 후계 다툼에 관심이 없는 아들 최성재(이현진)를 설득하기 위해 그의 생부가 어떻게 죽었는지, 또 어미인 자신은 어떻게 해서 원수의 아내가 되었는지를 낱낱이 털어놓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옛날 한정희는 청마건설 사장 배영완의 아내였고, 최동성(박근형)은 청마건설에 시멘트를 납품하던 업자였죠. 그런데 불량 시멘트가 원인이 되어 청마건설이 짓고 있던 아파트가 공사중에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책임을 지게 된다면, 맨손으로 10년 동안 일구었던 기업은 그대로 날아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죠. 때마침 최동성과 함께 성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