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주군의 태양' 황선희, 최강의 섬뜩한 악녀 포스 본문

드라마를 보다

'주군의 태양' 황선희, 최강의 섬뜩한 악녀 포스

빛무리~ 2013. 9. 27. 07:25
반응형

 

 

드디어 15년 전 납치 사건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중원을 납치해서 잔인한 추리소설을 읽히며 난독증에 걸리게 한 사람은 차희주였고, 폭발하는 차량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차희주의 쌍둥이 언니인 한나 브라운이었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던 주중원(소지섭)은 이제껏 차희주(한보름)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납치범의 정체가 자신임을 밝히며 "미안하게 됐어, 주중원!" 하고 말하던 순간의 얼음장 같은 모습과, 불타는 차에 갇혀 죽어갈 때의 애달픈 눈빛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증오해야 할지 가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주중원이 사랑했던 착한 한나는 죽었고, 질투심에 눈 멀어 납치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차희주는 뻔뻔하게 살아 남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쌍둥이 자매 중 한나는 영국의 부잣집으로 입양되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한국의 보육원에 남겨진 희주는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어린 차희주의 눈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온갖 선물을 가지고 보육원을 방문하던 소년 주중원은 왕자님 같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절대 사랑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중원을 좋아했다지만, 그 마음의 실체는 시샘과 욕망과 집착이었을 뿐이다. 영국에 살다가 쌍둥이 동생을 찾으러 한국에 돌아온 한나는 희주의 불행한 모습에 가슴 아파하며 어떻게든 동생을 도우려 했는데, 중원을 좋아하면서도 초라한 자기 모습 때문에 다가서지 못하던 희주를 대신해서 중원에게 접근했던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두 사람은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며 강렬한 첫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언니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마저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 차희주는 분노한다. 어린 나이에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차희주는 주중원을 납치했고, 그의 아버지에게 100억원 상당의 목걸이를 몸값으로 받아냈고, 차량 폭발 사고를 가장하여 언니 한나를 살해했다. "여기서 차희주는 죽는 거야. 아니면 난 주중원도 죽일 거야. 제발 네가 차희주로 죽어 줘!" 한나의 죽음은 그렇게 차희주의 죽음으로 위장되었고, 차희주는 한나 브라운으로 변신하여 언니가 가졌던 모든 것을 차지했다. 꼭 한 사람, 주중원만 빼고.

 

한나로 변신한 차희주는 줄곧 주중원의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엿본다. 한나가 가졌던 것들 중 유일하게 빼앗지 못한, 그 마지막 하나까지 차지하려는 무서운 집착이었다. 한나가 귀신이 되어서도 5년 동안이나 중원의 곁을 떠나지 못한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동생의 마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이틀 앞둔 날, 한나는 태공실(공효진)의 입을 빌어 희주에게 묻는다. "나 대신 한나 브라운으로 사는 게 좋았어? 너로 죽어주고 나로 살게 해 줬는데, 너 왜 돌아왔니, 희주야?"

 

 

그것은 한나와 태공실과 강우(서인국)가 연합하여 차희주를 잡기 위한 계략이었다. 한나가 공실의 몸에 빙의했다고 믿은 차희주는 안심하고 자신이 차희주라는 사실과 15년 전의 범죄를 인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녹음된 목소리는 움직일 수 없는 범행의 증거가 되어 차희주는 경찰에 체포된다. 외삼촌 김실장(최정우)이 한나의 납골당에서 찾아온 100억짜리 목걸이도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동생을 지켜주어야 한다더니, 아무래도 그 못된 계집애보다는 주중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희주를 감옥에 보내고 나서, 한나는 역시 공실의 몸을 빌어 중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중원아, 더 이상 너한테 내가 아픔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주중원이 대답했다. "미안해. 아무것도 모르고 미워해서, 미안해!" 15년 동안이나 슬픔과 두려움과 오해와 미움에 얽매여 있던 주중원의 마음이 드디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모든 오해와 의문이 풀리고 위험이 사라지자, 한나의 영혼은 안심하고 하늘로 떠나갔다. 이제 태공실은 주중원의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함으로써 100억짜리 레이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 하지만 자기 때문에 방공호가 또 위험에 처하거나 불행해질까 두려운 공실은 중원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은, 태공실이 의식을 잃고 있던 3년 동안 어째서 자기 육신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혼 상태로 진우(이천희)의 곁에 살았느냐는 점이다. 앞으로 남은 2회 동안 그 의문도 풀리게 될까? 어쨌든 자기와 똑같이 귀신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진우의 존재는 공실에게 큰 의지가 된다. 그래서 공실이 진우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중원을 위해 자기는 어차피 그의 곁에서 멀리 떠나야 하니까. 이제 주중원은 그녀의 확고한 결심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다소 낯설던 여배우 황선희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11년 드라마 '싸인'이었다. 희대의 악녀 강서연을 연기하던 황선희의 모습은 정말 신선했다. 가녀리면서도 강인하고 기품있는 외모,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섬뜩한 눈빛과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몹시 안정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 분위기 자체가 역할과 너무 잘 어울렸다. 그리고 2년 여의 세월이 지났다. '주군의 태양'에서 황선희가 맡은 배역은 사실 비중이 아주 큰 편은 아니었다. 한나와 차희주 쌍둥이 자매 역할은 기본적으로 한보름의 것이었고, 황선희는 15년 후 성형수술로 모습을 바꾸고 나타난 차희주의 모습만 짧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막강했다.

 

어차피 희주의 쌍둥이 한나 브라운 행세를 대놓고 할 거라면 굳이 성형을 해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만들 필요도 없었는데, 아마도 제작진은 한보름의 1인 2역에 뚜렷한 한계를 느꼈던 모양이다. 한보름의 순하고 어려 보이는 인상은 한나의 선량함을 표현하기에 제격이었지만, 차희주의 악독함을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적합치 않았던 것이다. 황선희의 투입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만약 한보름이 계속 차희주를 연기했더라면, 결코 이처럼 섬뜩하고 소름돋는 악역의 포스를 자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 그냥 처음부터 맞춰진 열쇠와 자물쇠처럼 타고나는 거라고 봐야 할 듯 싶다. '싸인'의 강서연이 그랬던 것처럼, 차희주도 배우 황선희에게는 맞춤옷이나 다름없었다.

 

 

천의 얼굴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장르나 캐릭터에 달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배우들 중 예를 든다면, 차태현은 누가 뭐래도 코믹 연기의 달인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와서는 약간의 식상한 느낌도 없지 않으나, 그래도 차태현의 코믹 연기는 항상 믿고 볼만하다. 억지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의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코믹의 기운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만약 차태현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시종일관 진지한 연기를 한다면, 과연 작품의 맛이 제대로 살아날까? 사람마다 잘 어울리는 옷이 있듯이, 배우에게 연기도 그런 것 아닐까?

 

예상컨대 황선희는 앞으로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한국에서 제일가는 악역의 여왕이 될 듯 싶다. 과연 어느 여배우가 황선희보다 더 섬뜩한 악녀의 포스를 연출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찬란한 유산'과 '황금의 제국'을 통해 악역의 대모로 인정받은 김미숙조차도 황선희의 타고난 악녀 카리스마를 제압하지는 못할 듯 싶다. 비록 연기 자체는 중견배우 김미숙보다 설익었지만, 악역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차갑고 소름끼치는 황선희의 눈빛과 표정은 누가 노력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황선희는 순하고 착한 비련의 여주인공 따위 역할에 욕심내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에 집중하면 좋겠다. 어쩌면 훗날 칸이나 베를린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으며 세계인의 갈채속에 최고의 악녀로 등극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