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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나와라 뚝딱' 장덕희에게 내려진 소름끼치는 업보 본문

드라마를 보다

'금 나와라 뚝딱' 장덕희에게 내려진 소름끼치는 업보

빛무리~ 2013. 9. 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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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만 자식 때문에 참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자식도 부모 때문에 참아야 하는 거야. 자식이 못났으면 부모가 참아주고 봐주는 것처럼, 부모가 못났으면 자식이 참아주고 봐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 늘상 철없는 할머니라고만 생각했던 김필녀(반효정)의 말이 모처럼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하긴 세상에 자식만도 못한 부모가 어디 한둘이던가?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되 자식만 덜컥 낳아 놓았다고 저절로 인격수양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무리 부모가 되었어도 속 좁은 사람은 여전히 속 좁고 무책임한 사람은 여전히 무책임하다. 자식을 키우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식을 향한 비뚤어진 집착 때문에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금 나와라 뚝딱'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못난 부모들'의 이야기이자, 그런 부모를 사랑으로 포용하여 변화시키는 '부모보다 나은 자식들'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부모들 중 멀쩡한 인간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잘 살면 잘 사는대로, 못 살면 못 사는대로 어쩌면 그렇게들 아집이 심하고 이기적인지 볼 때마다 진저리가 쳐진다. 박순상(한진희)은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작은 보석상을 국내 최대의 보석 브랜드를 소유한 현재의 주식회사로 성장시켰을 만큼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지만, 아무데서나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을 무책임하게 흘리고 다니며 각기 다른 세 여자에게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한껏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워진 가족 관계를 제대로 다스리고 감당할만한 그릇이 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토록 흐릿한 사리분별력으로 어떻게 사업에는 성공했을까 싶을 만큼, 그는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속아넘어가며 애꿎은 본처를 내쫓고 자식을 들볶았다. 단지 돈이 많다고 해서 존경받는 아버지가 될 수는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캐릭터였다.

 

 

장덕희(이혜숙)는 박순상의 첫번째 첩이다. 24년 전, 장덕희는 박순상의 본처 진숙(이경진)에게 누명을 씌워 내쫓고 안방을 차지했으나, 박순상은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았다. 장덕희는 어떻게든 자기 아들 박현준(이태성)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떳떳하지 못한 처지라 갈수록 애타고 목이 말랐다. 24년 동안 장덕희는 갖은 방법으로 진숙의 아들 박현수(연정훈)를 구박하고 모함했으며, 박순상의 두번째 첩 민영애(금보라)와 그녀의 아들 박현태(박서준) 역시 장덕희의 잔인한 뒷굽에 짓밟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현수에게 "네 엄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단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너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란다!" 하고 거짓말을 했을 만큼 장덕희는 악랄했다. 생모 장덕희의 비호를 받으며 박순상의 후계자로 길러진 둘째 현준과 달리, 장남 현수와 셋째 현태는 무심한 아버지와 못된 계모 슬하에서 상처투성이 미운 오리새끼처럼 자라났다.

 

부자인 박씨네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정씨네도 못난 부모가 문제다. 아빠 정병후(길용우)는 좀 유약하다는 것 외에 큰 결점이 없으나, 이 집안의 모든 불화와 분쟁은 엄마 윤심덕(최명길)에게서 비롯된다. 외할머니 최광순(김지영)은 걸핏하면 자기 딸 윤심덕을 감싸며 "평생 호강 한 번 못해 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없이 살다 보니 가슴에 한이 맺혀서 그런다"고 변명하지만, 평범한 서민들의 삶이란 모두 비슷한 법이니 윤심덕의 독특한 아집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은 될 수 없다.

 

아들 정몽규(김형준)와 막내딸 정몽현(백진희)을 어떻게든 상류사회로 밀어넣으려는 윤심덕의 집착과 노력은 무섭도록 처절하다. 빠듯한 집안 사정으로는 두 아이를 한국 최고 대학의 학벌로 무장시키는 것부터가 무리였지만, 윤심덕은 큰딸 정몽희(한지혜)의 도움을 받아 기어이 성공하고야 만다. 출중하게 타고난 외모와 그 정도 학벌이면, 결혼을 통해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한 소망에서였다.

 

 

더 웃기는 것은 엄마의 욕심을 위해 끝없이 희생하며 밑거름 역할을 톡톡이 했던 큰딸 정몽희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설정이다. 윤심덕의 친구였던 한선화는 젊은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몸으로 쌍둥이 딸을 낳고 죽었는데, 몽희는 바로 그 쌍둥이 자매 중의 동생이었다. 윤심덕은 불쌍한 친구를 생각해서 그 딸을 잘 키워주려고 데려왔다지만, 이후의 행동을 보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부러 시킨 것은 아니라지만, 큰딸이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길거리 노점상이 되었는데도 윤심덕은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몽희가 뼛골 빠지게 벌어 온 돈으로 자기가 낳은 몽규와 몽현을 대학원까지 보내면서 죄책감 한 자락 느끼지 않았다. 몽현이를 박순상네 막내아들 현태와 결혼시킬 때는, 상대의 수준에 맞춰 무리한 혼수를 장만하느라 몽희로 하여금 1억의 대출까지 받게 하면서도 미안한 줄 몰랐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위한답시고 자기 슬하에서 자란 남의 자식 인생을 짓밟는 윤심덕의 파렴치함은 악역 장덕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윤심덕 일생의 가장 큰 고난(?)은 금쪽같은 아들 몽규에게서 비롯되었다. 최고의 스펙을 갖춰 주려고 지금껏 들인 공이 얼만데, 이 호랑말코 같은 녀석이 난데없는 고아처녀 민정(김예원)을 만나 사귀더니 결혼까지 하겠다고 설치기 시작한 거다. 윤심덕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배신이 없다. 사기를 당해 집안이 폭삭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해도 이보다 더 끔찍하지는 않을 거라고 윤심덕은 말한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가난한 처지에 대학도 못 나왔고 가족 하나 없이 혈혈단신인 민정을 윤심덕은 결코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타락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몸가짐 단정히 하며 열심히 살아 온 민정의 노력과 의지를 높이 평가할 생각도 전혀 없다. 윤심덕에게 민정이는 천금같은 자기 아들을 꼬여서 날로 먹으려는 여우같은 년이라, 그 어떤 노력도 대견하긴 커녕 가증스럽고 앙큼하게 느껴질 뿐이다.

 

서민 출신인 자기 자식을 상위 1% 부잣집 자식과 결혼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던 윤심덕이다. 부잣집에 시집간 딸 몽현이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는 것을 보고 울며 가슴아파했던 윤심덕이다. 그런데 한층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며느릿감 민정을 반대하며 온갖 말들로 모욕하는 그녀의 행동은 얼마나 모순인가? 당연히 몽규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심하게 반항한다. 친할머니 김필녀의 대사는 바로 그런 몽규를 타이르는 말이었다. "부모가 못났으면 자식이 참아주고 봐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 하긴 부모를 버릴 수야 없으니 참아주고 봐줄 수밖에, 하지만 이 드라마의 부모들은 못났어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특히 장덕희와 윤심덕은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질타를 받으면서도 자기 잘못이 뭔지조차 모른다.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할 생각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왔던 장덕희에게 끔찍한 천벌이 내려졌다. 그녀 인생의 전부인 아들 박현준이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놓인 것이다. 게다가 그 사고의 원인은 바로 장덕희에게 있었다. 24년 전 현수 엄마에게 누명을 씌워 내쫓았던 악행이 밝혀지자 박순상은 이미 장덕희에게 축출령을 내렸고, 회사 경영권도 현준이 아닌 현수에게 물려줄 태세였다. 도저히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장덕희는 현수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고의적으로 핸들을 꺾으며 동반자살을 시도하는데, 엄마의 계획을 눈치채고 급히 달려온 현준이 그것을 막아 보려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현준은 수술 후에도 깨어나지 못했고, 장덕희는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아들이 대신 죗값을 치르는 거라는 생각에 오열했다. 혹시라도 자기가 뉘우치면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어 아들을 살려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덕희는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 24년 동안 누명을 쓰게 하고 아들 현수와 생이별 시켰던 진숙 앞에 장덕희는 무릎 꿇고 사죄했다. 마치 벌레 보듯 무시해 왔던 민영애한테도 처음으로 '현태 엄마'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사과했다. 어려서부터 몹시 구박해 온 현수와 현태에게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죄다 고개를 쳐들 수 없을 만큼 잘못한 일 투성이였다. 하지만...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박현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을 때, 나는 당연히 회생할 줄 알았다. 현준의 교통사고는 당연히 장덕희를 뉘우치게 만들려는 설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장스런 요소도 있지만 어쨌든 이것은 가족드라마니까, 마지막엔 서로를 용서하고 가슴에 맺힌 것을 털어버리며 모두 즐거운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청옥 작가가 장덕희에게 내려 준 것은 따뜻한 용서가 아니라 무서운 업보였다. 눈을 뜬 현준은 지그시 장덕희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 내가 엄마 사랑한 거, 알지?" 미처 소리도 내지 못한 그 한 마디가 박현준의 유언이었다. 그 말을 두 차례 속으로 반복하더니 박현준은 이내 다시 눈을 감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47회의 엔딩 장면이었다.

 

만약 이렇게 해 놓고 48회에서 박현준이 다시 소생한다면 그건 코미디가 따로 없을 것이다. 예상컨대 박현준은 이대로 사망했다고 보는 게 확실할 듯 싶다. 현준을 낳으면서부터 장덕희는 그 아들 하나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남들이 볼 때는 그저 허울좋은 핑계에 불과했지만, 장덕희에게는 그 모든 악행의 이유조차 현준을 위해서였다. 첩의 자식이란 소리를 안 듣게 하고 싶어서 박순상의 본처를 내쫓았고, 현준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서 현수와 현태를 밀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귀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장덕희 자신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업보가 있을까?

 

 

장덕희에게 내려진 업보는 심히 충격적이었지만, 그만큼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겨워도 우리는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 자기 욕심 채우자고 남을 짓밟으면, 그 죗값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박현준이 무사히 깨어났다면 이만큼의 효과가 있었을까? 어차피 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지나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박현준의 죽음은 엄마 장덕희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청자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소중한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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