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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 하지만 기대하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펀치

'펀치'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 하지만 기대하는 이유

빛무리~ 2014. 12. 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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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기대가 된다는 것이다. '황금의 제국'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황금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건조하게 진행되었을 뿐 특별한 악역이나 선역을 찾아볼 수 없었다. '추적자'에는 악역이 있었지만 그 악을 응징하는 인물은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평범한 아버지였을 뿐 선과 정의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런데 '펀치'에서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절대악과 절대선이 등장하여 첨예한 대립을 시작했다. 절대악은 서울지검장 이태준(조재현)이요, 절대선은 여검사 신하경(김아중)이다. 


신하경 혼자의 힘으로는 이태준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만, 법무부장관 윤지숙(최명길)과 사법연수원장 정국현(김응수)이 그녀의 편에 서 있으니 해볼만한 싸움이다. 문제는 절대선을 담당하고 있는 이 캐릭터들이 의외로 강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청렴함과 정의로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당최 알 수 없으니 그저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인가보다 생각해야 하는데, 신하경의 대쪽같은 기질은 아직 피끓는 청춘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윤지숙과 정국현처럼 나이도 지긋하고 높으신 양반들이 그토록 때묻지 않은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 선역들의 전형적인 캐릭터는 자칫 드라마 전체를 식상하게 만들 위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살려낼 핵심은 역시 주인공 박정환(김래원)의 캐릭터다. 박정환 검사는 현재 이태준의 오른팔로서 온갖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이제 곧 그에게 내려질 6개월의 시한부 선고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악의 하수인으로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어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 더럽혀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남은 삶을 진정한 검사로서 살고 싶은, 그리고 사랑하는 신하경에게 끝내 자랑스런 남자로 간직되고 싶은 박정환의 용감한 선택과 가슴 뭉클한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정글같은 세상을 상처투성이로 살아낸 한 남자의 핏빛 참회록... 작가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이렇게 압축한다.



 

사실 죽음을 앞두고 개과천선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크게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환과 이태준의 불꽃튀는 대결이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되는 까닭은, 이 시대가 헌신적인 영웅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선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돈에 꿋꿋이 맞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무슨 이유로 원래의 선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이태준의 하수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개과천선하기 이전의 박정환은 그야말로 섬뜩할 만큼 비열하고 냉혹한 악의 화신이다. 사법연수원장 정국현이 이태준을 누르고 검찰총장 자리에 내정되자, 박정환은 정국현의 약점을 잡아 자진사퇴시키려 하지만 워낙 청렴한 인물이라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박정환은 미국에서 유학중인 정국현의 아들을 마약사범으로 몰아 체포시켰다. 일리노이 주립 검사와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강직한 정국현도 사람이고 아비인지라, 자식의 인생을 움켜쥐고 협박하는데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환의 악행은 남의 자식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까지도 목표를 위한 희생물로 삼는데서 절정에 이른다. 그와 이혼한 전처 신하경 사이에는 일곱 살 난 딸 예린(김지영)이 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차가 급발진 사고를 당하면서 예린은 가벼운 부상을 입게 되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한 운전기사는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진다. 예린을 태우면서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신하경은 운전기사의 잘못이 아니라 차량의 결함임을 확신하는데, 해당 자동차 업체의 대표는 권력자 이태준의 친형 이태섭(이기영)이었고 사건은 운전자의 개인적 과실로 종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하경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며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래, 아줌마는 검사야. 나쁜 사람은 혼내주고 아빠처럼 열심히 일한 분, 억울한 일 당한 분 도와주는 사람이 검사야!" 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운전기사의 어린 딸을 토닥이던 신하경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정의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이태준의 검찰총장 취임을 앞두고 그의 형 이태섭에게 검찰 소환장이 날아오니 난처해진 사람은 박정환이었다. 결국 박정환은 신하경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동부지검으로 좌천되는데, 신하경이 말을 듣지 않자 예린의 양육권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치적 목표를 위해 자신의 어린 딸을 법정에 세우는 일조차도 불사할 만큼 비정한 아비였던 것이다. 


친누이동생인 의사 박현선(이영은)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은 박정환의 머리에서 치료 시기를 놓친 뇌종양이 발견되고,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최초로 전해들은 사람은 신하경이었다. 차마 오빠에게도 엄마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박현선이 가장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양육권 협박에도 굴하지 않던 신하경은 그 소식을 들은 후 증언을 포기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옛 남편 박정환을 바라본다. 생애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6개월 동안, 다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또 얼마나 뜨겁게 타오를까? 이 세상에 간절히 필요하지만 너무 큰 희생이 요구되기에 감히 바랄 수도 없는 헌신적 영웅의 이야기, 그 마지막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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