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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에 출연한 게스트들 중 (부정적인 평가에 있어) 이토록이나 솔직했던 사람은 지누(지누션)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누는 맹기용 셰프의 '맹모닝'을 맛본 후 '비린내'와 '군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언급하며 아쉬움을 표현했었는데, 김영광 역시 샘킴 셰프의 '영광의 바지락'을 맛본 후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며 '비린내가 좀 난다'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 후 시청자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어졌다. 지누의 시식평에는 완전 공감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던 반면, 김영광의 시식평에는 솔직한 태도가 보기 좋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배려심과 예의가 부족했다는 비난이 좀 더 많이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절대적 원인은 샘킴 셰프와 맹기용 셰프의 실력에 관한 대중의 인식 ..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이제 최종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39회를 시청하면서 나는 첨예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에게 그닥 공감은 못 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의 횡포는 참을 수가 없었다.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싫어도 꾹 참고 뱃속 아기의 아버지인 김준구(하석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또는 한 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은수를 위한답시고 나서는 그들의 행동은 명백한 오지랖이며 횡포에 불과했다. 오은수는 자기가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세결여'의 첫 리뷰에서 오은수의 재혼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
초중반 부진을 면치 못하던 김수현 작가의 최신작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뒷심이 발휘되고 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시청률 면에서도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앞섰고, 대중적 화제성도 높아졌다. 그런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도 아니고 남주인공격인 정태원(송창의)이나 김준구(하석진)도 아니다. 놀랍게도 주변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한 한채린(손여은)이 밤낮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채린의 캐릭터는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한채린을 악역이라 규정짓고 악녀라 부르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악역이라면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갖추고 있어야..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벌써 16회까지 방송되었음에도 시청률은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황금무지개'가 일주일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전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김수현의 이름값도 이제는 그 효력이 떨어진 걸까? 등장인물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치열한 심리 묘사도 여전하고, 칠순을 넘긴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통 튀는 대사의 재미도 살아있건만, '세결여'가 김수현의 전작들 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의 캐릭터가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수현 드라마의 시청층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몰입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반향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도, 아무리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 해도, 저는 언제나 솔직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많은 기대를 품고 기다렸던 만큼 제발 김지우 작가의 전작들 '부활', '마왕'에 필적할만한 명작으로 태어나 주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벌써 4회까지나 방송이 되었는데도 강력한 포인트 하나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이쯤에서 기대를 접어야 하는 걸까 싶네요. 단순한 개인적 원한 관계를 넘어 친일 역사 청산이라는 거대한 소재를 끌어들였다는 점, 그에 따라 공간적 배경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는 전작들보다 스케일이 커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스케일만 크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막무가내로 키워놓은 스케일을 감당 못해 헉헉대다가..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제가 본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하고 있는 '부활'의 콤비,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PD가 다시 뭉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어'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부활'과 '마왕'에 이은 세번째 복수극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설렘을 억누를 수가 없었죠. 김지우 작가의 복수극은 치밀한 전개로 스토리 자체가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복수라는 주제에 휘말려 등한시하기 쉬운 인간의 섬세한 감정들을 몹시도 리얼하게 표현해 주는 탓에, 언제나 극대화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거든요. 복수란 본질적으로 행복한 것일 수 없기에,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복수를 응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복수의 당위성을 고민하기도 하고, 복수의 과정 속에 점점 망가져 가는 주..
김병욱 사단의 이름을 내세우고 tvN에서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20부작 시트콤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4개월여만에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평소 공중파의 재방송을 보는 용도로만 케이블 TV를 사용하던 제가, 일부러 tvN의 채널과 편성표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열심히 본방사수를 하게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만큼 김병욱 시트콤의 광팬이거든요. 그런데 '생초리'는 너무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1회만 보았을 때는 앞으로의 전개가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한껏 부푼 기대감에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2회부터 급격히 늘어지는 호흡은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 겨우 20부작으로 진행하려면 한 회마다 깨알같은 에피소드를 꽉꽉 채워도 모자랄텐데, 러브라인도 미스테리도 전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
공중파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 방송이기에 오히려 김병욱표 시트콤의 진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벌써 13회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의 행보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시트콤의 특성상 각 회마다 개별적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해도, 그 중심이 되는 큰 줄거리는 뚜렷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굉장히 산만했거든요. 멜로는 멜로대로 밍숭밍숭하니 지지부진하고, 심각한 미스테리 부분도 뭘 어쩌자는 건지 계속 떡밥만 흘릴 뿐 그닥 진전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4명의 남녀 중, 이제까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민(김동윤) 밖에 없었지요. 다른 ..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일주일을 목빠지게 기다린 것에 비해서는 허무할 만큼 실망스러운 4회였습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삼진증권 식구들이 생초리로 내려오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었다면, 4회부터는 드디어 인물들 사이의 갈등구도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니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껏 좋은 재료들을 준비해서 기대치를 높여 놓더니, 첫 밥상의 요리를 망쳐 버린 경우라 하겠습니다. 밥이고 반찬이고 대충 만든 것처럼 설익은 느낌이더군요. 일단 조민성(하석진)과 유은주(이영은)의 갈등을 주된 소스로 풀어나가긴 했는데, 민망할 만큼 유치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까칠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사사건건 투덜대면서 누구에게나 말을 함부로 해대는 조민성의 모습은, 원래 그런 캐릭터임을..
한때는 매일을 행복하게 해 주던 김병욱표 시트콤을, 일주일에 달랑 1번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군요.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이하 '생초리')는 이제 겨우 3회까지 방송되었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거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중에도 단연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조민성(하석진)입니다. 그런데 왠지 하석진을 보면, 김병욱의 전작인 하이킥 시리즈에서 보았던 최민용과 최다니엘의 캐릭터가 자꾸만 겹쳐서 떠오르는군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3명의 남자에게서는 적잖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선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혹은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등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추억에도 잠길 겸 해서 이들의 흥미로운 캐릭터를 간단히 분석 비교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