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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역적'의 후속작으로 방송 예정인 드라마 '파수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배우 신동욱 때문이었다. '복면가왕'을 시청하던 중 뜻밖에도 가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동욱의 존재가 퍽이나 반갑게 느껴졌던 것이다. 한창 좋았던 시절에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라는 희귀병에 걸려 혹독한 아픔과 싸우며 무려 7년 동안이나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던 그의 얄궂은 운명은 참으로 가슴저린 것이었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져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신동욱은 '복면가왕' 인터뷰에서 자신의 복귀작인 드라마 '파수꾼'을 간단히 언급하며,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했다. 그 때 짧게 자료 화면이 나왔는데, 검은 사제복을 입고 천천히 화면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신동..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지는 박경수 작가의 묵직하면서도 신선한 작품 세계에 적잖이 매혹당했던지라 그의 신작인 '귓속말'을 꽤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게다가 믿고 보는 여배우 이보영의 원톱 주연이라기에 더욱 기대가 컸는데, 한편으로는 박경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그려낼 수 있을지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워낙 선이 굵고 남성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하는 작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성의 섬세한 내면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좀 부족하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전작들은 모두 남주인공 원톱이었고, 여주인공들은 상대적으로 무척 비중이 적었을 뿐 아니라 충분히 매력적이지도 못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니, 나의 우려가 좀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보영의 연기력은 예상대로..
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
이것은 명백히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지만, 전쟁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더욱이 사랑은 모든 예술작품의 영원한 테마가 아니던가? 치열하고도 복잡한 전쟁 스토리에 집중하다가도 처음부터 예고된 야수와 공주의 사랑이 언제 시작될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 24부작의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좀처럼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지 않았다.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은 형식적이나마 결혼을 했고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엔 오직 황금의 제국을 향한 욕망뿐인 듯, 서로를 향한 인간적 관심은 아예 차단된 상태로 줄곧 냉랭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영까지 불과 5회를 남겨둔 시점에서, 공주님의 오만한..
솔직히 말하면 권순규 작가의 전작이 '무사 백동수'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예 볼 생각이 없었던 드라마입니다. 초반에는 상당히 흥미진진했으나 가면 갈수록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던 '무사 백동수'의 그 황망한 전개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이죠. 전광렬 최민수 등 중견배우들의 묵직한 연기와 국민남동생 유승호의 매력적인 다크포스로도 감당할 수 없었던, 점차 산으로 가는 대본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신뢰를 갖게 할만한 다른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필모그래피가 (드라마로는) 달랑 그 '무사 백동수' 하나뿐이니, 동시간대에 다른 채널에서 '추적자 THE CHASER'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 '황금의 제국'이 방송되는 이상 '불의 여신 정이' 쪽으로 시선을 ..
'추적자 THE CHASER'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경수 작가가 1년만에 신작 '황금의 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적자'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폐단이라 할 수 있는 '뒷심 부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보기 드문 수작이었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려 온 차기작인데, 아무래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청하기는 그른 듯 싶군요. 홈페이지를 둘러 본 느낌부터 쎄하더니 첫 방송을 시청한 후에는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하긴 돌이켜 보면 '추적자'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전혀 아니었죠. 볼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이끌림에 빠져들게 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도 가감없이 표현되는 잔혹한 현실은 차라리 눈 감은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
무려 6회가 지나도록 초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스릴 넘치는 전개를 이어가고 있으니,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하 '너목들')는 점점 더 명작의 향기가 짙어지는 듯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표현함에 가벼운 코믹과 멜로를 섞어 받아들이기 쉽게 하는 기법이 과하지 않고 적정선을 지켰기에 매우 훌륭하다 생각되고요. 매력적인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서로 어울림마저 좋다 보니 그 달달함에 빠져들기 십상인데, 그러다가 느슨해질만하면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보임으로써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합니다. 그러니 한시도 쫄깃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지루해질 틈이 없군요. 흐름의 강약을 조절하는 작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지금껏 주목하지 않았던 박혜련 작가의 이름을..
강렬하고 자극적인 에피소드의 향연, 게다가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는 제법 흥미진진한 시청을 가능하게 하지만, 드라마 '다섯 손가락'의 완성도는 별로 높지 않아 보이네요. 개연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설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서 일부러 짜맞춘 듯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시청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매력적인 캐릭터가 한 두 명쯤 존재하고 스토리의 개연성을 조금만 더 확보했다면,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막장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은 인기를 얻었을텐데 말이죠. 피아노라는 중심 소재가 꽤나 신선하고 매혹적이어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7회까지 시청한 현재의 ..
담사리(전노민)의 공개처형과 관련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작 담사리 본인은 각시탈 이강토(주원)을 비롯해 수많은 동지들의 비호를 받으며 무사히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가짜 각시탈로 분장했던 독립군 장동지는 몸에 폭약을 묶은 채 장렬히 산화했고,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총에 맞아 체포되었던 적파(반민정) 역시 고문 끝에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습니다. 서커스단의 여장부였던 오동년(이경실)은 현장에서 슌지의 총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지요. 극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각시탈이 사용하는 무기(쇠퉁소, 깃대 등)는 웬만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장동지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당시에는 근처에 있던 일본 순사..
정말 고마웠습니다. 끝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텨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가 용두사미꼴의 아쉬운 결말을 면하기 힘든 현실인데,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초심을 밀고 나가며 실망스럽지 않은 최고의 결말을 마련해 주어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우리 가슴 속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마무리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로써 대중적 인기를 끄는 톱스타 한 명 없이 조촐하게 출발했던 '추적자'는 놀랍게도 한국 드라마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군요. 정신도 멀쩡했고 법에 어긋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노라고,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닥친다 해도 자신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