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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의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지는 편이 더 좋은 것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안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타인의 잘못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행동이 과연 입이 무겁고 참을성과 배려심이 있다 하여 칭찬받을 일이기만 한 걸까? 오히려 말하지 않아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없을까? 멕시코에서 제작된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을 아주 오래 전에 보았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와중에 '마리아'가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선생님, 까르멘이 보고 써요!" 내가 보기에는 정정당당한 고발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작 컨닝을 하다가 딱 걸린 학생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처벌이 주어..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많이 허술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악역 조관웅(이성재)의 너무 쉬운 몰락과 최후는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허탈했다죠. 이제껏 그 놈 하나 때문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모진 고통을 받아 왔는데, 막상 이순신(유동근)이 좌수영 군사들을 이끌고 백년객관으로 들이닥치자 속수무책,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쁘더군요. 물 건너 일본에서 왔노라며 마치 끝판왕이라도 되는 양 온갖 폼을 다 잡던 궁본 사람들, 재령과 가케시마 노조도 별 수 없었습니다. 분노한 이순신의 한 방에 강아지처럼 겁 먹고 짐 싸서 다시 물 건너 도망쳐 버렸죠. 이렇게 쉬운 거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상처입고 피 흘리면서 그들의 온갖 악행을 견디어 왔던 건지...
초반 1~2회의 애절함에 너무도 푹 빠졌던 나머지 3회부터는 오히려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나라를 구하러 나서는 이순신(유동근)의 모습이 비칠 때면 이보다 더 장중한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가도, 주인공 최강치(이승기)와 그 주변 인물들이 나오면 갑자기 무게감이 절반으로 줄면서 아무리 비감한 장면이 나와도 별로 슬프지 않았거든요. 코믹한 와중에 진지함인지, 진지한 와중에 코믹함인지,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분위기가 적절히 어우러지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노는지라, 좀처럼 몰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개 과정 중에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작위적인 설정들까지 보이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멀어져 갔었는데, 이를테면 박무솔(엄효섭)이 최강치를 대신하여 조관웅 수하의 칼에 찔려 죽..
인간의 딸을 사랑하여 인간이 되고자 했던 신수(神獸) 구월령(최진혁)의 간절한 소망은 '구가의 서' 제2회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전설의 여주인공으로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윤서화(이연희)의 사랑은 구월령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무너져 내렸고, 그녀의 배신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죠. 만일 윤서화의 뱃속에 잉태된 생명이 없었다면, 구월령이 담평준(조성하)의 칼에 찔리는 그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구월령은 '구가의 서'를 얻어 인간이 되기 위해 꼬박 90일 동안이나 무사히 금기를 지켜 왔지만, 경솔하게도 혼자 나물을 캐러 나갔던 윤서화는 관군에게 붙잡혀 버렸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금기를 깨지 않을 수 없었죠. 꿈을 이룰 수 있는 100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지만, 처참히 끌려..
'1박2일-명품 조연 특집'은 모든 준비가 철저했던 '여배우 특집' 때와 달리 제작진의 준비 소홀이 너무 심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괜히 애먼 시청자 입장에서마저 모처럼 초대된 배우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 특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멋진 형님들은 그 부족한 와중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방송을 만들어 주셨군요. 덕분에 '1박2일-명품 조연 특집'은 마치 대학시절의 MT가 그대로 재현된 듯, 깊은 향수를 자극하는 방송이었습니다. MT에서는 항상 '밥 해먹는 일'이 제일 중요하지요. 모두 힘을 합쳐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밥을 지어 먹고 나서는 자유로운 시간이 펼쳐집니다. 한쪽에서는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아무것도 규격화되거나 강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릴랙스하게 즐기는 ..
개인적으로 여배우 특집보다는 명품 조연배우 특집을 훨씬 더 많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배우들이 저의 기대치를 훨씬 윗도는 재미를 선사해 주는 것을 보고 나서는, 명품 조연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져 있었지요. 특히 성동일과 김정태의 예능감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풍선처럼 부푼 기대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출연하는 '1박2일-명품 조연 특집' 제1탄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간략한 소감을 말한다면, 절대 실망스럽지는 않았으나 기대만큼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에요. 조성하, 안길강, 성지루, 고창석은 아예 예능 출연 자체가 처음인 배우들이었고, 생각해 보니 성동일과 김정태도 토크쇼에서 그 입담을 뽐내는 것은 보았지만 리얼..
'성균관 스캔들'에서 서효림이 연기하고 있는 하효은 낭자는 매우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병조판서 하우규(이재용)의 딸이며 성균관 장의 하인수(전태수)의 여동생이지요. 아버지도 오라비도 진지한 악역을 수행중인데 그녀만 등장하면 삽시간에 이 사극은 오갈 데 없는 시트콤이 되고 맙니다. 처음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자랑하던 효은은, 엄연한 사대부가의 규수가 자기 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외간남자인 이선준(박유천)과 맞닥뜨리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노골적인 유혹의 시선을 던졌습니다. 과연 성균관의 신입을 골탕먹이겠답시고 "자기 여동생과 하룻밤을 지내고 오라"는 미션을 던져주는 그 오라비의 누이답게 가볍고 천박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선준은 나중에 미션 수행 실패의 책임을 묻는 선배에게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