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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김갑수)이 '국민아빠' 였다면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 선생(장항선)은 '국민스승' 이라고 할만했습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젊은 주인공의 곁에서 더없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던 이 성스러운 인물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슴을 꽉 채워 주었지요. 이제 팔봉 선생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고 보니 저절로 구대성의 서글펐던 최후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삶 만큼이나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래도 팔봉 선생은 구대성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들처럼 아끼던 홍기훈(천정명)이었으나,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엠블런스 안에서 구대성은 "괜...찮...다..."는 최후의 한 마디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팔봉 선생을..
선거 개표 방송으로 인하여 '나쁜 남자'가 결방되는 바람에 '신데렐라 언니'를 별 기대 없이 본방사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장면에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비록 초반의 기대를 무너뜨린 이번 작품으로 큰 실망을 안겨 주었으나, 역시 김규완 작가는 범상치 않은 저력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된 장면이었습니다. 은조(문근영)가 세상 다른 일은 모두 잊은 채 환상으로 뒤섞인 기훈(천정명)과의 연애에 심취해 있는 동안, 집에서는 갑자기 어린 동생 준수가 사라집니다. 효선(서우)에게 준수는 평범한 동생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입니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단 하나의 혈육이며, 엄마 송강숙(이미숙)과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끈입니다. 그래서 효선에게 준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한동안 치열했던 수목드라마의 3파전은 종료되었습니다. '검사 프린세스'와 '개인의 취향'은 이미 방송을 마쳤고, '신데렐라 언니'도 이번 주가 마지막 방송이로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검프'와 '신언니' 사이에 묘한 공통점과 엄청난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주인공 남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입니다. '검프'에서 서인우(박시후)의 아버지는 마혜리(김소연)의 아버지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신언니'에서 구은조(문근영)의 아버지는 홍기훈(천정명)과 그의 집안 사람들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통점입니다. '검프'의 서인우는 초인적 인내심과 희생 정신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마상태를 용서하고, 그의 딸 마혜리와 사랑을 이룸으로써 ..
지금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효선(서우)입니다. 초반의 그녀는 특유의 애교를 부리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였지요. 그녀의 마음속에도 사랑은 가득했으나 그것을 표출하는 과정이 너무도 미숙했기에, 그녀의 사랑은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감동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너그러운 세상 그 자체였던 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의 죽음은, 효선으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세상이 자기의 편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 깨달음은 껍질이 깨어지고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효선을 삽시간에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만 받고 살아온 시간들은 그녀를 어린아이로 남아있게 했으나, 이제 보호막 없이 찬..
문근영은 오빠들에게만 여동생이 아니라 언니들에게도 여동생처럼 느껴집니다. '신데렐라 언니' 이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슬픈 캐릭터의 정점을 찍는 듯한 은조를 보면서 마치 그 아이가 내 여동생인 양 측은하군요. 기훈과의 멜로가 너무 싫은 것은 아마도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 가엾은 것이 사랑을 한다면, 자기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 기대고 살아야 할텐데, 홍기훈은 절대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가 없으니까요. 지금껏 많은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주인공들의 멜로가 이토록 싫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요즈음 개인적 사정으로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였는데, 은조가 정우를 앞에 두고 기훈에 대한 추억을 줄줄이 늘어놓는 장면과, 기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은조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며 슬픈 음악..
은조(문근영)는 타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어서 "효선아", 또는 "준수야" 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오랜 세월 동안 애증으로 휩싸인 기훈(천정명)을 향해서도,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떠났을 때에도 그저 새처럼 자기의 이름만 부르며 울었을 뿐입니다.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 라고 부르는 순간 그녀의 마음 한켠이 열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그것도 자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우야, 정우야~" 그의 방문 앞에 서서 그녀가 부릅니다. "정우야, 좀 나와 봐", "정우야, 네가 처리해 줄 일이 있어", "정우야, 할 말이 있으니 네 룸메이트 좀 내보내 줘" .....
드디어 효선이(서우)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가장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던 어린 그녀가, 한꺼번에 양쪽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대성참도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거대 공룡 홍주가의 존재를 알고 그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홍기정(고세원)을 만나기까지 했으니, 이제 홍기훈(천정명)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그리고 구대성(김갑수)이 남긴 일기를 모조리 읽으면서 송강숙(이미숙)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기만하며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효선이가 잠에서 깨어나며 벌어질 일들은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14회 말에서 벌어진 효선의 각성은 커다란 반전이었습니다. 송강숙이 먼저 구대성의 일기를 읽었고, 그녀는 떠나버린 사람이 남겨둔 마음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
당신 참 나쁜 사람이야. 내 더러운 팔자에 수없이 많은 나쁜 놈을 만나 봤지만, 그 중에서도 당신이 제일 나쁜 사람이야. 그 어떤 놈 때문에도 내 가슴이 이렇게 답답한 적은 없었어. 나는 언제나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만도 버거워서, 땅에 머리를 대기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잠들던 년이었어. 잠이라도 맘 편히 자야 그 다음날도 이 지긋지긋한 세상하고 싸울 수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꽉 막힌 가슴을 퍽퍽 치느라고 누웠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내 꼴을 봐.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날 이렇게 만들지 않으려면, 떠나지 말았어야지. 나를 과부로 만들지 말았어야지. 이렇게 가버리면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 나를 거쳐갔던 그 나쁜 놈들보다 나을 게 없잖아? 적어도 내가 흰머리의 할망구가 되기 전까지는 남편 있는 년..
사실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되새기면 너무 아파서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구대성이 그렇게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갔음에, 그리고 가족들 중 아무도 그의 최후를 지키지 못하고 숨을 거둔 후에야 그 곁에 도착했음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가 숨을 거두던 그 시간에, 그토록 사랑하던 두 딸은 제 안의 공허감을 술로 채워 보려다가 만취해서 연구실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지는데, 그들에겐 하늘같은 존재가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꼭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마지막 순간에 잡아주지 못한 송강숙의 넋나간 표정도 잊을 수 없습니다. "효선아, 아빠 흔들어 봐....
구대성(김갑수)이 떠난 후, 대성참도가를 지켜야 하는 벅찬 의무가 은조(문근영)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지워졌습니다. 그녀는 끝내 아빠라고 불러드리지도 못했던 아버지 구대성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기에 놓인 대성참도가를 지켜내려 할 것입니다. 대성참도가는 구대성이 평생을 바쳐 양심과 애정으로 일구어 온 기업이며, 그 자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니까요. "어쩌지, 구효선? 내가 또 해냈네? 이러다가는 정말 모두 내것이 되고 말겠어." 효선(서우)을 자극하는 은조의 속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은조는 그녀와 힘을 합쳐서 아버지의 유업을 지켜나가려는 것입니다. 대성참도가를 지키는 일에, 구대성의 친딸인 구효선을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은조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진정으로 구대성을 위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