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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이 남긴 마지막 말의 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데렐라 언니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이 남긴 마지막 말의 힘

빛무리~ 2010. 5. 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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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되새기면 너무 아파서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구대성이 그렇게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갔음에, 그리고 가족들 중 아무도 그의 최후를 지키지 못하고 숨을 거둔 후에야 그 곁에 도착했음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가 숨을 거두던 그 시간에, 그토록 사랑하던 두 딸은 제 안의 공허감을 술로 채워 보려다가 만취해서 연구실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지는데, 그들에겐 하늘같은 존재가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꼭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마지막 순간에 잡아주지 못한 송강숙의 넋나간 표정도 잊을 수 없습니다. "효선아, 아빠 흔들어 봐... 못 주무시게 해 봐..." 구대성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 있었어도, 그녀는 다시 예전의 악녀로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11회에서야 비로소 구대성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드러났습니다. 기훈의 통화 내용을 듣고 지독한 배신감에 쓰러져, 그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절명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가던 구급차 안에서 그는 잠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곁을 지키던 사람... 기훈을 보았습니다.


비록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아들처럼 아끼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구대성은 간신히 입을 열어 생애 최후의 한 마디를 합니다.

"괜...찮...다..."

그 순간, 제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기훈이 저 녀석, 이젠 정말 믿어도 되겠구나..."


그렇게 미워하던 기훈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눈으로 보던 그 아이를, 이제는 구대성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구대성은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과 진심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은조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믿을 수 없는 용서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어둠 속을 헤매던 기훈을 밝은 곳으로 끌어냈습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 기훈을 구했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그토록 숭고한 희생으로 다시 태어난 영혼이, 어떻게 또 다시 비뚤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11회 후반과 12회의 기훈에게서는 예전의 그 불투명하던 눈빛이나, 속을 알 수 없던 기묘한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맑은 눈빛으로 은조와 효선을 보며, 자기를 좀 믿어 달라고 하던 그의 미소는 있는 그대로 순수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홍주가와 대성참도가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가, 이제는 한 점 티끌도 없이 마음을 정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0회에서 이복형 기정을 찾아가 "형 때문이야!" 라고 소리치던 모습은 여전히 '남 탓하는 못난이'였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해서 원래 못났던 사람이 갑자기 잘난 사람으로 바뀔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제가 그토록 기훈을 미워했던 이유는 '악해서'라기보다는 '너무 못나서'였습니다. "형이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가졌다가 되돌려 드리려고 했다"는 그 생각 자체가 너무 유치하고 비뚤어진 것이었지요. 진정한 악의는 없으면서도 구대성을 속이며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던 그 어리석음이라니... 그 꼴을 보면서 저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게다가 8년 전에 자기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고 아직도 은조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던 것 또한, 기훈의 심성이 기본적으로 넓지는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말하자면, 그는 소인배입니다. 하지만 속좁은 못난이라 해서 그 뉘우침과 깨달음마저 거짓은 아니었어요.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구대성의 최후를 지키며 그가 흘리던 눈물은 깨끗한 진심이었고, 그 눈물이 그를 씻어내렸습니다. 은조와 효선은 이제 정말 그를 믿어도 될 거예요. 잘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믿을만한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사실이니까요.

만약에, 송강숙이 구대성의 최후를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며 구대성이 "괜...찮...소..." 라고 속삭여 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하의 악녀 송강숙도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았을까요?


"제가 먼저 말하고 끝낼 거예요. 제가 먼저 말하면 아버지만 망해요. 저는 속시원하게 처분만 기다리면 되죠. 아버지나 형이 대성참도가에 절대 손 못대게 할 방법이 그거였다는 걸, 몰랐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저 지금 은조한테 가요. 아버지는 끝났어요."

이제 기훈은 아버지와 형의 공격으로부터 대성참도가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버리려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막을 힘이 없기에, 자기 몸을 던져서 막아내려 합니다. 아무리 진심으로 참회한다 해도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남겨두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데, 그 본능마저 버리고 자기를 모조리 희생하여 구대성의 가족과 기업을 지켜내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대성이 남긴 마지막 말의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격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지금 공격할거야" 라고 예고하는 그 여전한 어리석음이 저를 약간 불안하게 합니다. 그의 아버지 홍회장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맏아들 기정을 상대하기 위해 기훈의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발설함으로써 기훈을 자극하여 그의 마음에 형에 대한 원한을 심어 준 아비가 바로 그였습니다. 그리고 기훈을 이용하여 대성참도가를 차지하려 획책한 것은 자기였으면서, 나중에는 그 문제로 아들을 협박하는 아비가 그였습니다. 그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기대할 수 없습니다. 


술에 취한 채로 은조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 위해 걸어오는 그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보며, 저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끝났어요" 라는 기훈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질끈 감던 홍회장이, 차를 돌려서 무서운 속도로 그에게 돌진해 오지나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설마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그런 설정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홍회장 정도의 인간이라면 자식을 죽이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는다 해도, 이제 기훈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혈육으로부터 무자비한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훈이가 운다고, 내가 함께 울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 구대성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보게 되니 적잖이 가슴이 아프군요. 그 못나고 가여운 아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그 죄책감의 무게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생각하니 한없이 딱하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생각지도 않은 눈물이 흐릅니다.

어려서부터 온갖 설움을 받고 자랐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편안하고 기쁠 수 없는 그의 운명을 어쩌면 구대성은 마지막 순간에도 애틋하게 여겼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떠나버린 사람의 커다란 그림자는, 오늘도 남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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