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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47회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얼굴들을 참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1926년생으로 강제 납북과 탈북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던 최은희가 공로상을 수상했고, 1928년생의 신영균이 특별상을 수상했군요. 이미 오래 전에 은퇴하여 작품 활동은 쉬고 있으나, 80대 노익장들의 건재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항상 여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 앉으세요." 원로 여배우 최은희가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니 모든 후배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조금씩 목이 메는 음성으로 그녀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저 분위기는 숙연하기만 했는데, 문득 최은희는 말을 멈추고 "여러분, 모두 앉으세요. 앉아서 들으세요." ..
'놀러와 - 세시봉 친구들'은 음악과 토크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감동과 재미를 자아냈던 최고의 방송이었습니다. 나이로는 큰형이지만 철들지 않는 이미지로 인해 동생들의 구박을 받던 조영남은 아슬아슬한 민폐형이면서도 자유로움에 대한 향수를 묘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더군요. 송창식도 그에 못지 않게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조영남이 보다 세속적이라면 송창식은 훨씬 기인적이고 속세를 떠난 신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언제나 밤 9:30에 점심식사를 하고 새벽 2:00에 저녁식사를 하는 송창식과 40여년을 친구로 지내 온 윤형주에게 어떤 지인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합니다. 그리고 63세의 막내 김세환은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로 자리를 편안하게 해 주었지요. 그런데 '세시봉 친구들' 모임을 단순한 음악회처..
요즈음 '황금물고기'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인물은 바로 문현진(소유진)입니다. 꽤나 흥미진진한 복수극인가 싶더니 가면 갈수록 뭘 어쩌자는 것인지 흐리멍텅해지고 있는 와중에, 서브 캐릭터에 불과했던 문현진이 섬뜩한 악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중심으로 나서면서 조금씩 긴박감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도저히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차피 이 드라마 속에서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현명하고 정상적인 캐릭터였는데, 바로 그녀가 눈을 뒤집으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니 제 마음은 더욱 어지러워집니다. 문현진은 완전히 사랑 때문에 미쳤습니다.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남편 이태영(이태곤)의 모든 범죄를 용서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지민(조윤희..
요즘 드라마 중에는 유난히 복수극이 많고 배신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항상 돈과 권력을 지닌 강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주인공이 파렴치한 강자들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복수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으니 이러한 현상은 '자기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더군요. 자기의 힘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그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설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극의 내면에는 자신도 나쁜 놈이지만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합리..
'황금물고기'의 주인공 이태영(이태곤)이 드디어 복수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일일연속극 치고는 꽤 빠른 템포로 진행되어 가고 있군요. 지루하지 않은 점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급격한 변화가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듯 싶습니다. 특히 두 사람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이태영이야 원래 마음 따뜻한 캐릭터로 설정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해도, 저는 한경산의 변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더군요. 말하자면 은혜와 의리, 그리고 원한과 복수의 사이에서 이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외면과 복수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 본성의 냉혹함과 추악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그들의 변화는 섬뜩하기만 합니다. 1. 이태영(이태곤..
상대방이 확실하게 자기 입장을 표명하고 선을 그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들이대는 캐릭터를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황금물고기'에서 표현되는 소유진의 캐릭터는 나름대로 매력적이더군요. 그녀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자기의 감정을 받아달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자기의 강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부모님을 가졌으면서도 그 힘을 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냥 쿨하고 솔직하고 정당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이태곤이 그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주인공 치고는 그 매력이 너무나 살아나지 않고 있거든요. 양어머니 윤여정에게 지독한 냉대를 받으며 평생 가슴에 한이 맺혔는데도 그 집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녀의 딸 조윤..
지난 주에 종영한 '살맛납니다'의 뒤를 이어 MBC의 새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가 첫 전파를 탔습니다. 솔직히 벌써부터 "자칫하면 막장이다" 라는 분위기를 솔솔 풍기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시놉시스를 미리 접하게 되면서, "아, 그래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어제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가 첫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우선 첫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저는 스포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즐기는 편이다보니, 이 리뷰에도 꽤 많은 스포가 들어가 있군요. 이제 막 시작되는 드라마에 처음부터 김빠지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여기서 접으셔도 좋습니다..^^) 1. 매혹적인 중견배우들의 유혹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박상원이 '미워도 다시한번 2009' 에 출연..
'맨땅에 헤딩'(이하 맨딩) 그 황당스런 기억상실증 에피소드가 살짝 머리를 들이밀던 4회말에 벌써 질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성처럼 '맨딩'을 시청했다. 더없이 식상하고, 무지하게 황당하고, 스토리를 산으로 가게 만들 것이 뻔한 그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의외로 약간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윤여정씨의 출연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채널을 고정하게 된 면도 있었다. 글쎄, 스토리 자체는 역시 예상대로 산으로 가고 있었기에 별로 높이 평가해 줄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대체 왜 기억상실증이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정신요양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해야만 했는지 그 필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스토리 진행에 방해만..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로서 활동해 온 정윤호의 드라마 데뷔작이라는 것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던 '맨땅에 헤딩' 1,2회가 방송되며 베일을 벗었다. 시청자들의 의견은 희망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으로 나뉘는 듯하다. 그 중에 나는 희망적인 쪽이다. 내가 '맨땅에 헤딩'이라는 드라마의 미래를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첫째, 경쟁작인 '태양을 삼켜라'와 '아가씨를 부탁해'가 초반의 엉성한 전개로 인해 이미 많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으며 둘째, 은근히 염려했던 정윤호의 연기가 예상외로 시원스럽고 괜찮아 보이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셋째로는 매우 감칠맛나는 조연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박철민 (배역 :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 홍상만) 무조건 차봉군이 데려 와~ '베토벤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