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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 47회, 어느 해보다 감동적이었던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대종상 47회, 어느 해보다 감동적이었던 이유

빛무리~ 2010. 10. 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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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얼굴들을 참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1926년생으로 강제 납북과 탈북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던 최은희가 공로상을 수상했고, 1928년생의 신영균이 특별상을 수상했군요. 이미 오래 전에 은퇴하여 작품 활동은 쉬고 있으나, 80대 노익장들의 건재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항상 여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 앉으세요."

원로 여배우 최은희가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니 모든 후배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조금씩 목이 메는 음성으로 그녀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저 분위기는 숙연하기만 했는데, 문득 최은희는 말을 멈추고 "여러분, 모두 앉으세요. 앉아서 들으세요." 라고 후배들을 배려하더군요.

그녀가 말하는 '여배우로서의 품위'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수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던 삶의 고충이 그대로 녹아 있음이 느껴지더군요. 1978년에 납북되었다가 1986년에 오스트리아를 통해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하기까지, 최은희와 그녀의 남편 신상옥 감독이 겪은 고충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신상옥은 이전에도 2차례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4년간의 수감생활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원치 않는 영화를 강압에 의해 찍으면서 자존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주저앉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끝내 지켰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항상 여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남녀 주연상과 남녀 조연상, 총 4개의 상 중에 이번에는 무려 3개가 원로배우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아저씨'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원빈만이 유일한 젊은 배우로서 끼어 있는데 오히려 이색적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살아 있네요. 세월이 가도 어떡합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 속에 살아 남겠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김희라는 병색이 완연한 외모와 몸짓으로 인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열정적인 수상 소감으로 그 울적함을 모두 날려 주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 속에 살아 남겠습니다!" 그래요. 과연 그 뜻대로 될 것입니다.

"40년 전에 이 자리에서 신인 여우상을 받으며 데뷔했는데, 바로 고(故)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를 통해서였습니다. 이제 40년이 흘러서 리메이크작을 통해 다시 상을 받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 상을 김기영 감독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어릴 때는 제가 잘 해서 상 받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감독님이 나를 잘 만들어 줘서 받는 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임상수 감독님 땡큐!"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모습은 드라마를 통해 매일 보는지라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지요. TV에서도 종횡무진 활약이 끊이지 않는데, 그 바쁜 중에 영화에도 출연하여 영광스런 수상을 하게 되니, 그녀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1947년생으로 김희라와 동갑인데, 그토록 건강한 모습으로 항상 우리 시청자들에게 좋은 연기를 선사해 주니, 그녀는 정말 고마운 배우입니다. 진솔한 어조로 감독에게 공을 돌리는 그녀의 겸손한 수상 소감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몇 년 후에도 좋은 작품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끔 한국 영화에 많은 용기와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윤정희 역시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드러냈습니다. 1944년생으로 이제 겨우(?) 67세에 불과한 그녀이니 결코 헛된 소망은 아니겠지요. 다만 한국 영화가 대중에게서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열정적인 수상 소감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김희라의 수상 소감과 일맥상통하며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여우 주연상과 남우 조연상에 이어 최우수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제작자의 수상 소감 역시 감동의 물결 한 자락을 더해 주더군요. "좋은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최우수 작품상을 탈 정도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셨는데, 제작자가 장사를 잘 못 해서... 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실 수 있도록 하지 못했으니, 상을 받는다고 얼굴을 내밀기가 저로서는 민망합니다."


이번 47회 대종상 시상식이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흥행에 관계없이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준 배우들과 좋은 작품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휠체어를 타고 자리에 함께 한 최은희와 팔에 기브스를 한 상태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윤정희 등 원로 배우들의 열정이 더해졌기에 찬란히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젊어서 요절하지 않는 다음에야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황혼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미래였습니다. 그렇기에 노년의 열정은 젊음의 풋풋함보다 더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도 열정만 간직하고 있다면 결코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고맙게도 그들은 여실히 증명해 보여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순재 옹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윤여정 씨처럼 영화에도 한 편 정도 출연하셨다면, 수상 여부는 어떨지 몰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하여 또 한 자락의 든든한 기운을 보태어 주실 수 있었을 듯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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