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숙종 (1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창덕궁에 다녀왔다. 결혼 전까지 수십 년을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안 가봤던 곳인데 결혼 후 인천에 살면서 오히려 찾아가 보게 되다니..^^;;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생각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벚꽃 만발하는 5월이나, 단풍 흐드러진 10월에는 훨씬 더 멋있다던데 좀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진초록 무성한 늦여름 창덕궁도 괜찮았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기념으로 몇 장..^^ 맨 마지막 사진은 후원의 玉流川 (옥류천)이다. 해설사가 무슨 폭포를 보러 가자 해서 더운 날씨에 시원한 폭포를 보겠구나 기대했더니 1미터 정도 높이에서 수돗물 흐르듯 졸졸거리는 수준이다. 설마 그게 폭포일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당최 폭포엔 언제 도착하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바로 여기가 옥류천 폭포라며 숙종..
열심히 챙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하니 크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장희빈의 이야기는 이제껏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즐겨 차용되었지만,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야심찬 변화의 시도가 좀 있기도 했습니다. 김혜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7대 장희빈(2002년)의 경우, 초반에는 전형적인 악녀가 아니라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시청률 부진이었습니다. 어차피 뻔한 내용인 줄을 다 알면서 또 '장희빈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악녀 장희빈'과 '선녀(善女) 인현왕후'의 첨예한 대결을 지켜보다가, 장희빈이 천벌을 받고 인..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연출자인 감독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 대본은 전문 드라마 작가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렵죠. 영화에서의 '스토리'가 영상미나 배경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며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이 그러한지라 저는 드라마를 선택할 때 연출자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허준'과 '대장금'의 눈부신 대성공에 힘입어, 1944년생의 노익장 이병훈 감독은 이 ..
오랜만에 '동이'를 시청했습니다. 그 동안 제가 개인적으로 '동이'라는 드라마에 갖고 있는 불만은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연으로 점철되다시피 하는 미션 해결 방식도 그렇고, 줄창 현대극의 이미지를 모락모락 풍기는 한효주의 연기에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고, 적정선을 넘어섰다 싶은 임금 숙종의 깨방정도 차마 오글거려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의외로 볼만하더군요. 특히 화요일에 방송된 26회는 꽤나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저에게 감동을 선사한 인물은 최근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새롭게 등장한 심운택(김동윤)이었습니다. 숙종에 이어서 깨방정2라고 불리운다는 이 인물에게 솔직히 별 관심은 없었습니다. 숙빈 최씨의 실제 애인이었다는 풍문의 주인공 김춘택이 그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여기..
유명 포털사이트의 메인에서 언뜻 이병훈 PD가 '대장금'의 이영애와 '동이'의 한효주를 비교한 듯한 기사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읽어보니 대략의 내용인 즉, "본인은 여자주인공이 밝아야 드라마가 산다고 생각하여 항상 적극적이고 밝은, 전문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한효주가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영애는 대장금 출연 당시의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던 데다가 성격이 너무 차분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의 밝은 모습이 생각만큼 표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더군요. 글쎄, 최고의 전문가가 하는 말임에도 저로서는 거의 찬성할 수 없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도 연극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
'동이'를 시청하는 제 마음은 진퇴양난입니다. 타사의 월화드라마가 모두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나마 볼 것이라고는 '동이'뿐인데, 저의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아주 이상하게 코믹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 무협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보았었는데, 심각한 내용을 언제나 코믹한 분위기로 처리하는 그 특이함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동이'는 무협 액션 장면을 거의 삭제한 중국 무협 영화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동이의 가벼움' 이라고 지으려다가 말았네요..;; 특히 동이(한효주)와 숙종(지진희)이 거의 매일밤 저잣거리에서 만나 투닥거리며 쇼를 벌이는 장면들이라니... 한두번도 아니고 어쩌면 임금님이 그토록 엉덩이가 가벼우신지... 동이와..
'동이' 9회와 10회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비중있는 연기자들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단역에 가까워 보이는 감찰부 나인 '정임'으로 나온 배우가 정유미라는 것을 보고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심지어는 까메오 출연이 아닐까 생각조차 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동이와 초반에는 적대적 관계였다가 나중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니, 결과적으로 보면 '대장금'에서 박은혜가 맡았던 '연생이'와 비슷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노비였다가 후궁이 된 동이(숙빈최씨)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에서, 내명부의 감찰부 궁인들이 큰 역할을 담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제가 보기에는 김혜선이나 김소이와 같은 중견 배우들이 감찰부 상궁으로 등장한 것도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해 ..
요즘 사극은 코믹이 대세일까요? '추노'가 기본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면서도 곳곳에 적지 않은 코믹 요소를 심어 놓았더니만, '동이'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드라마 자체의 컨셉을 코믹으로 잡고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1. 숙종 (지진희) 놀랍게도 코믹의 중심에는 임금 숙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이와 함께 음변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다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근엄하게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니라!" 하고 소리치다가 안 먹히자, 눈을 감고 에잇 에잇 마구 칼을 휘둘러대던 모습은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허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슨 연예인처럼 궁녀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걸어다니더만, 임금이 이렇게 코믹하니 전체적 분위기도 코믹할 수밖에 없겠네요. 2. 오태풍(이계인) 음변 사건으로 인..
여주인공 최동이의 식상함에 비해, 숙종(지진희)의 캐릭터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껏 드라마에서 그려진 숙종 임금의 모습은 여인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바람둥이 내지는 나약한 남자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았지요. 물론 역사를 조금만 아는 시청자라면 그것이 결코 숙종의 진면목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나, 주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립을 중심으로 다루어졌던 그 시대 배경의 사극에서, 남주인공인 숙종은 진실과 상관없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동이'에서는 무엇보다 숙종의 캐릭터에 정성을 기울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의, 서늘하고도 색다른 매력의 숙종을 탄생시켰군요. 현명하고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통쾌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는 ..
'동이' 5회에서 드디어 여주인공 한효주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4회의 엔딩에서 해금을 켜는 장면으로 잠시 모습을 비추었을 뿐이니, 5회의 초반부는 어른이 된 최동이의 인물 소개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장악원을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여러 악공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동이의 모습은...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는데...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꼭 7년 전의 장금이가 돌아온 것 같았어요. 이영애가 연기했던 '서장금' 역시 굉장히 활발하고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였습니다.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녀였지요. 그런 성격 때문에 스스로 위기에 처하는 일이 잦았으나 그래도 장금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