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송승헌 (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처음부터 대놓고 '치정극'을 표방한 드라마라기에는 사건 사고가 부족한게 아닌가 싶더니,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본격적인 '치정멜로'의 극치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치정'이라는 단어에서 필히 연상되는 것은 비뚤어진 사랑의 무서운 집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어지러운 (또는 끔찍한) 사건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릇 치정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사랑을 빌미삼아 일어나야 하고,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이 파멸해 가는 과정 또한 필수 코스라 하겠습니다. 폭력조직의 2인자 한태상(송승헌)이 가난한 소녀 서미도(신세경)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한태상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
너무 강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김경탁(김재중)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서출이라는 태생적 설움은 일찌기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 슬픔을 디딤돌 삼아 절치부심하고 독하게 노력하여 나중에는 이복형 대균(김명수)의 뺨을 치는 야심가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했었죠.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그의 눈빛은 왠지, 작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순한 남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어 보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영래(박민영)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도 처음부터 순도 100%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진심이 70~80% 가량은 되겠지만, 나머지20~30% 쯤은 집착과 소유욕 등의 감정도 섞여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김경탁은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
초반에는 예상치 못한 타임슬립을 당하게 되었으니 어리둥절한 설정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애써 다독였습니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다 알고 보는 것이지만, 주인공 진혁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마다 그저 생존하는 것만도 벅찼을 테니까요. 그 다음에는 약재를 개발하거나 환자를 치료하는데 힘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할 내용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런대로 볼만하다 싶었습니다. 다른 연기자들은 모두 사극톤으로 대사를 하는데 혼자만 엄청 튀고 어색하게 현대극톤의 대사를 하는 것도, 모두 타임슬립 설정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달했군요. 총 20부작으로 기획된 '닥터 진'은 이제 12부까지 방송되었습니다. 중반을 넘긴 만큼 등장인물 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서로를 ..
1. 어머니의 작별 인사 '닥터 진' 11회에는 유독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습니다.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와 흥선군(이범수)은 좌의정 김병희(김응수)의 계략에 빠져 대왕대비(정혜선)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는데, 죄목은 너무 큰 데다가 누명을 벗을 길은 막막하니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요. 영래의 어머니(김혜옥)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딸자식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자 옥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하여 간신히 옥사 안으로 들어오는데,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영래를 마주하자 회한의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줄 걸 그랬구나!" 고분고분히 말을 듣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았더라면 이토록 험한 운명에 처..
'닥터 진' 7회의 중심부에서 극을 이끌어간 캐릭터는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흥선군 이하응(이범수)이나 종사관 김경탁(김재중)도 아니었습니다. 이름없는 풀꽃의 은은한 향기와 초록빛을 지녔던 여인... 고달픈 삶 속에서도 고이 간직해 왔던,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진 여인... 기녀 계향(윤주희)이 바로 7회의 주인공이었지요. 드라마 전체를 볼 때 그녀가 등장한 분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나, 짧은 동안에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불태우고 떠난 인물이 아닐까 싶군요. 계향의 캐릭터가 더욱 의미있는 까닭은, 그 인물 자체가 철저한 '약자'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생이란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사실은 서민보다도 못한 처지의 최하층민이죠. 노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확실히 김은숙 작가와 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같은 여성이면서도 '매력적인 남자'를 보는 기준이 너무도 현격히 다른 것을, 저는 매번 그녀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군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률 면에서 거의 대박을 쳤고, 남주인공은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이라든가, '신사의 품격' 6회에서 장동건이 부쩍 멋있어졌다는, 저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의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상을 보면, 제가 유난히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든 '앞으로 나서서 외치는 자' 보다는 '침묵하는 자'가 절대 다수임을 생각해 본다면, 진짜 현실이 어떤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현빈의 반짝이 츄리닝에 ..
서준(장근석)과 정하나(윤아)가 정원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설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유아독존식으로 살아온 그 까칠한 남자 서준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하나에게 덥석 몸을 기대며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애처럼 편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흐뭇하면서도 서글펐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행복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에 흐뭇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에 서글펐습니다. 부모를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살아온 서준이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알기에, 처음 느끼는 이 따스함과 편안함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갈 거라는 사실은 더욱 서글펐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은 결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둘 다 이루어지지 않거나, 어..
역시 하루이틀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2010년 MBC 연예대상에서는 거의 대놓고 공동수상 남발이 난무했습니다. 여자 최우수상에는 '파스타'의 공효진과 '욕망의 불꽃'의 신은경이 공동수상을 했고, 심지어는 원래 1명이라야 빛을 발하는 대상에도 '동이'의 한효주와 '역전의 여왕'의 김남주가 공동수상을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빚었습니다. 2008년에도 대상의 공동수상에 대한 트러블은 많았습니다. 드라마 자체의 시청률로 보아서는 '에덴의 동쪽'이 압도적이었으나, 연기력으로 보아서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방송사 입장에서는 '에덴의 동쪽'을 효자 프로그램으로 인정하여 송승헌에게 대상을 수여하고 싶었겠으나, 김명민의 신들린 연기력을 체험한 대중의 심리가 너무 그쪽으로 쏠려 있었기에, 그..
'에덴의 동쪽'이 종영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송승헌과 연정훈의 어머니로 등장해서 초반 시청률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중견배우 이미숙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었지요. 그녀의 고민은 "나는 아직도 주인공을 하고 싶은데, 이 사회는 나를 뒤켠으로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덴의 동쪽'에 캐스팅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본인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농담반 진담반의 어조였습니다. 아들들이 주인공이고 자신은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또한 완전히 농담 같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요. 나이들고 늙어가는 것은 몸일 뿐 마음이 아니니까요. 한때는 멜로의 여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기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