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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진' 송승헌의 겉멋 든 연기, 절박함이 없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닥터 진

'닥터 진' 송승헌의 겉멋 든 연기, 절박함이 없다

빛무리~ 2012. 7. 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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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예상치 못한 타임슬립을 당하게 되었으니 어리둥절한 설정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애써 다독였습니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다 알고 보는 것이지만, 주인공 진혁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마다 그저 생존하는 것만도 벅찼을 테니까요. 그 다음에는 약재를 개발하거나 환자를 치료하는데 힘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할 내용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런대로 볼만하다 싶었습니다. 다른 연기자들은 모두 사극톤으로 대사를 하는데 혼자만 엄청 튀고 어색하게 현대극톤의 대사를 하는 것도, 모두 타임슬립 설정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달했군요.

 

총 20부작으로 기획된 '닥터 진'은 이제 12부까지 방송되었습니다. 중반을 넘긴 만큼 등장인물 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서로를 향한 감정도 익을 만큼 익은 상태죠. 이제 한 두 발짝만 더 가면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고 애틋한 마음도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간다면 과연 제대로 정점을 찍을 수 있을런지 의문이군요.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발전하기는 커녕 점점 더 심하게 거슬리기만 하는 송승헌의 사극 연기 때문입니다. 타임슬립을 핑계대는 것도 초반 언저리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이젠 그 곳의 생활에도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지고 사람들과의 감정도 무르익었어야 마땅할 시기인데, 아직도 초반에 하던 그대로의 말투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송승헌의 연기는 정말 답답합니다.

 

 

대사를 외워서 틀리지 않게 말하고, 지문에 적힌 대로 손발을 움직여 행동만 맞춰 준다고 연기가 되는 게 아니죠. 감정 몰입을 한답시고 눈을 부릅뜨거나 언성을 높이는 등 오버를 한다면 더욱 안 될 말이겠죠.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작품 속 캐릭터에 얼마나 자기 자신을 녹여내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의 그 인물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버렸는가 하는 점이라고 바꿔 말해도 큰 상관은 없겠네요. 그런데 현재 '닥터 진'을 보면 의사 진혁이 보이는 게 아니라 배우 송승헌이 그대로 보입니다. 첫 사극 도전인데다가 타임슬립물이라는 이유로 두루뭉술 넘어갔던 초반의 인내심이 바닥났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지경입니다.

 

드라마의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하게 흘러갈수록, 인물들 사이의 감정이 첨예하게 무르익어갈수록,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동동거리고 있는 송승헌의 존재는 점점 더 거슬릴 수밖에 없습니다. '닥터 진' 11회와 12회를 보면서 특히 더 화가 났던 이유는 그만큼 드라마가 재미있어졌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만큼 더욱 몰입하고 싶은데, 완전히 흠뻑 젖어들어 그 슬픔과 긴장과 감동을 만끽하고 싶은데, 몇 차례나 송승헌이 입만 열면 한껏 몰입했던 감정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한 두 가지는 아니지만, 역시 그 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대사였습니다.

 

 

너무 기막혀서 TV를 꺼 버리고 싶었던 최악의 장면을 꼽는다면, 민란이 일어난 진주에서 흥선군(이범수)을 만나 한양으로 함께 올라가려던 진혁이 느닷없이 한 길목에서 관군에게 쫓기는 영래(박민영)와 마주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진혁의 입장에서 보면 그 머나먼 곳에서 뜻밖에 영래를 만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하필 그녀가 악독한 고을 수령과 군사들에게 쫓기며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모습을 목격했으니, 당연히 피가 머리 끝까지 솟구쳐 오를 법한 상황이었죠. 본능적인 반가움과 설렘, 뒤이어 그녀를 괴롭히는 자들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긴장감... 온갖 흥분에 겨워 "아가씨!" 하고 부르는 진혁의 대사에는 이렇게 절박하고도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송승헌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가씨!"는 마치 도서관에 간다던 여자친구가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도 어이가 없어 냉소하며 부르는 "아가씨!" 같았습니다. 뒤에서 묘하게 힘을 빼고 높이를 낮추는 송승헌 특유의 대사톤이 그 상황에서 어김없이 발효되니, 간절히 외쳐 부르는 것이 아니라 멀뚱멀뚱 "너 지금 여기서 뭐하냐?" 이런 식의 말투가 되어버린 거죠. 그럴 거면 차라리 위기에 처한 그녀를 못 보고 지나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스토리 진행이야 어떻게 되든, 그 중요한 순간에 그런 대사톤으로 찬물을 확 끼얹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어요.

 

 

돌이켜 보면 11회에서 영래와 흥선군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까지도,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상황에서도 진혁의 애달픈 감정선은 전혀 살아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텐데, 사랑하는 미나와 못 다 이룬 일들을 저쪽 세상에 남겨두고, 이 생뚱맞은 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기막혔을 사람은 진혁이거든요. 이범수의 비분강개한 표정에서는 한 나라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싶었던 큰 포부를 접고 한 맺힌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남자의 울분이 느껴졌고. 목 멘 음성으로 전하는 박민영의 마지막 인사는 다음 세상에서 진혁과 다시 만나 못 다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애틋한 연정을 제법 잘 표현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교수대에 올라서도 송승헌은 그저 멀뚱멀뚱 수준이었습니다.

 

심지어 영래의 애절한 고백을 듣고서도 판에 박은 듯한 표정과 그 특유의 대사톤으로 "아가씨!" 한 마디를 했을 뿐입니다. 남자의 반응이 그리도 뻣뻣한 목석 같으니, 순간 영래가 무척이나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어요. 송승헌은 더 많은 욕심을 부릴 것도 없이, 일단은 그 특유의 힘 빼는 대사톤만 고칠 수 있어도 연기가 일취월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느끼기에 그 대사톤의 근본 원인은 몸에 배어버린 '겉멋'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람이 피식피식 새는 듯한 그의 대사를 들을 때마다 제 머리에는 "에혀, 멋있는 척은 무지하게 하는구나!" 이런 생각밖엔 떠오르지 않거든요. 설마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사톤이 그렇다 보니, 진혁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멋진 척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위기에 처했어도 일단 폼부터 잡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송승헌 특유의 겉멋이 잔뜩 들어가 있는, 시크한 듯 힘을 빼는 그 대사톤을 버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진혁의 감정은 결코 살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현대물에서는 시크남, 차도남의 캐릭터가 나름 먹히는 분위기니까 그런 대사톤으로 연기해도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사극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최악의 걸림돌이 되고 있거든요. 배우 경력이 몇 년인데, 송승헌은 왜 이다지도 연기가 늘지 않을까요? 혹시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라서일까요? 키 크고 잘 생겼고 돈도 많고 젊고... 아쉬울 게 하나도 없으니 가슴 속에서 절박함이 우러나지 않고, 그래서 연기의 내면도 속 빈 강정처럼 텅 비어있는 걸까요? 

 

그 어떤 사람도 절박한 상황에서 겉멋을 부릴 수는 없습니다. 작품 속 캐릭터는 숨이 멎을 듯한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절박한 삶을 불태우고 있는데, 연기자는 피식피식 힘을 빼면서 겉멋이나 부리고 있다면, 두 존재는 한 순간도 일치되지 못하고 따로 놀게 되지요. 송승헌이 조금이라도 연기에 욕심이 있다면, 절박함을 먼저 체험해 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연기자가 명배우를 꿈꾸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그가 연기에 대한 큰 욕심이 없다면... 이 정도 레벨에서 슬슬 유지만 해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겠네요. 12회까지의 진행을 보면 '닥터 진'은 모처럼 깊은 주제를 성공적으로 형상화시킨,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좋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듯한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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