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남보라 (6)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오랜만에 '해를 품은 달'을 보았습니다. 7회부터 9회까지 한가인의 발연기를 꾹 참고 보았지만, 10회부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포기하기는 아까운 드라마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몰입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다가 저절로 잠들어 버리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곤 했습니다. 아역 김유정이 연기할 때 그토록 아름답고 총명하고 분위기 있던 여주인공 허연우가 그토록 멍하고 뻣뻣하고 품위없는 여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지요. 그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인식하는 데만도 온 힘을 쏟아야 할 지경이니, 이훤(김수현)과의 애절한 로맨스에도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름뿐인 궁중 로맨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 거죠. 안 보는 ..
허연우(김유정)가 그토록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후, 열정적이던 세자 이훤(여진구)은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를 체감했기에, 깊은 슬픔을 차가운 웃음으로 갈무리하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자가 윤대형의 딸 윤보경(김소현)과 원치 않는 혼례를 치르던 날, 문득 하늘에서는 보슬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는군요. "연우(煙雨)라는 너의 이름은 보슬비라는 뜻이냐?... 예쁜 이름이구나!" 그녀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 앞의 새신부는 아랑곳도 없이, 이훤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그 빗방울을 받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훤은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연우는 죽어가면서도 그를 ..
김병욱 사단의 이름을 내세우고 tvN에서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20부작 시트콤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4개월여만에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평소 공중파의 재방송을 보는 용도로만 케이블 TV를 사용하던 제가, 일부러 tvN의 채널과 편성표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열심히 본방사수를 하게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만큼 김병욱 시트콤의 광팬이거든요. 그런데 '생초리'는 너무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1회만 보았을 때는 앞으로의 전개가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한껏 부푼 기대감에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2회부터 급격히 늘어지는 호흡은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 겨우 20부작으로 진행하려면 한 회마다 깨알같은 에피소드를 꽉꽉 채워도 모자랄텐데, 러브라인도 미스테리도 전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
공중파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 방송이기에 오히려 김병욱표 시트콤의 진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벌써 13회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의 행보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시트콤의 특성상 각 회마다 개별적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해도, 그 중심이 되는 큰 줄거리는 뚜렷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굉장히 산만했거든요. 멜로는 멜로대로 밍숭밍숭하니 지지부진하고, 심각한 미스테리 부분도 뭘 어쩌자는 건지 계속 떡밥만 흘릴 뿐 그닥 진전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4명의 남녀 중, 이제까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민(김동윤) 밖에 없었지요. 다른 ..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일주일을 목빠지게 기다린 것에 비해서는 허무할 만큼 실망스러운 4회였습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삼진증권 식구들이 생초리로 내려오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었다면, 4회부터는 드디어 인물들 사이의 갈등구도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니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껏 좋은 재료들을 준비해서 기대치를 높여 놓더니, 첫 밥상의 요리를 망쳐 버린 경우라 하겠습니다. 밥이고 반찬이고 대충 만든 것처럼 설익은 느낌이더군요. 일단 조민성(하석진)과 유은주(이영은)의 갈등을 주된 소스로 풀어나가긴 했는데, 민망할 만큼 유치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까칠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사사건건 투덜대면서 누구에게나 말을 함부로 해대는 조민성의 모습은, 원래 그런 캐릭터임을..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저 호기심에 '고사2'를 보고 왔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역시 수작(秀作)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저의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비명소리 및 끼익거리는 음향효과 때문에 눈과 귀가 상당히 피로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허술한 플롯 때문인지 공포는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을 늘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아서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한 것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별 내용 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영화를 더 이상 길게 본다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