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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내가 김병욱 시트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 독특한 멜로의 분위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김병욱이 그려내는 것만큼 미칠 듯 설레면서도 저절로 가슴이 시려오는 멜로 장면들을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잔인하다 싶을 만큼 적나라하게 파헤쳐 놓는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통해 아픔과 상처를 달랠 수 있다. '감자별 2013QR3'은 초반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더니 불과 13회만에 기쁨과 슬픔, 설렘과 떨림, 격정과 원망, 애틋함과 그리움 등의 감정을 모조리 담아낸 러브라인이 시청자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도대체 김병욱은 얼마나 공들여서 이번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직 초반에 불과한데도 벌써부터 기존의 다른 작품들을 훨씬 뛰어넘는 완성도..
오랜만에 '해를 품은 달'을 보았습니다. 7회부터 9회까지 한가인의 발연기를 꾹 참고 보았지만, 10회부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포기하기는 아까운 드라마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몰입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다가 저절로 잠들어 버리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곤 했습니다. 아역 김유정이 연기할 때 그토록 아름답고 총명하고 분위기 있던 여주인공 허연우가 그토록 멍하고 뻣뻣하고 품위없는 여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지요. 그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인식하는 데만도 온 힘을 쏟아야 할 지경이니, 이훤(김수현)과의 애절한 로맨스에도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름뿐인 궁중 로맨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 거죠. 안 보는 ..
7~8회에 걸쳐 많은 사람을 경악과 분노의 늪에 빠뜨렸던 한가인의 연기가 9회에서는 한결 나아진 듯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아직도 중간중간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가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주에 비해서는 기본적인 발성과 말투 등이 훨씬 사극톤에 가까워져 있더군요. 정식 투입되기 전에 지금 이 정도까지만이라도 연습을 하고 나왔더라면 그토록 호된 비난에는 직면하지 않았을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와 제작진도 시청자의 반응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듯,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우선 무녀 월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졌더군요. 천한 무녀의 신분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임금의 얼굴을 마주본다든가, 양명군의 도움을 받고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까칠하게 호통을 치는 등, 그렇..
'맨땅에 헤딩'(이하 맨딩) 그 황당스런 기억상실증 에피소드가 살짝 머리를 들이밀던 4회말에 벌써 질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성처럼 '맨딩'을 시청했다. 더없이 식상하고, 무지하게 황당하고, 스토리를 산으로 가게 만들 것이 뻔한 그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의외로 약간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윤여정씨의 출연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채널을 고정하게 된 면도 있었다. 글쎄, 스토리 자체는 역시 예상대로 산으로 가고 있었기에 별로 높이 평가해 줄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대체 왜 기억상실증이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정신요양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해야만 했는지 그 필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스토리 진행에 방해만..
당분간 '수목드라마의 난'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진심으로 '맨땅에 헤딩'에 대해서만큼은 실망했다는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았다. '태양을 삼켜라'(태삼)와 '아가씨를 부탁해'(아부해)가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도를 넘어선 유치함으로 끊임없이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와중에 '맨땅에 헤딩'(이하 '맨딩')은 정말 '재미있게 보고 싶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초반에 이미 유치함으로 흐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음에도 애써 관록있는 조연배우들에게 집중하며 ("맨땅에 헤딩, 명품 조연들은 수호천사다") 부디 좋은 드라마로 탄생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맨딩' 4회의 엔딩은 이러한 나의 간절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악질 변호사 장승우(이상윤)의 애인으로 오해받은 강해빈(아라)이 납치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