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 김병만을 더욱 좋아하게 된 이유

유재석이 이끄는 '해피투게더'는 '개그콘서트' 개그맨들 사이에서 '꿈의 무대'라고 불리워진다는군요. 그런데 모처럼 '달인' 팀과 '발레리노' 팀이 함께 초대받아 무려 6명의 개그맨이 '해투' 출연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설렜을지 짐작이 됩니다. 수차례 출연 경험이 있는 김병만과 류담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지만, 첫 출연인데다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이승윤과 정태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이니만큼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데, 미리 짜여진 대본으로 연기하는 '개콘'과 달리 엄청난 임기응변과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버라이어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조바심내는 모습이 눈에 보였습니다.

개그맨 후배들과 함께 있으니 유재석의 배려심이 더욱 빛났습니다. 원래 한 명의 게스트라도 소외되는 법이 없도록 섬세하게 배려하는 유재석이지만, 특히 신인 개그맨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에 이번에는 더욱 다채로운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후배가 공들여 준비해 온 것들을 빠짐없이 모두 풀어놓을 수 있도록 일일이 멍석을 깔아 주었고, 설령 웃기지 못했어도 적절한 멘트와 자극을 넣어 줌으로써 민망하거나 허탈하지 않게 마무리해 주었습니다. 그 눈부신 조율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왜 유재석이 명실상부한 이 시대의 국민MC인지가 증명되었지요. 더불어 최고의 개그맨들이 정성껏 준비한 만큼, 이번 주 '해피투게더'는 전체적으로 깨알같이 재미있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 후의 제 마음은 그리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한 번이라도 남을 더 웃기기 위해 끝없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치열하게 기회를 엿보며 경쟁해야 하는 개그맨들의 삶을 예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생생하게 눈으로 보니 그 느낌이 다르더군요. 물론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겠지만 아무리 힘들게 노력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자칫하면 도태되기 십상인 개그맨의 세계가 무척 안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제 마음을 더욱 짠하게 한 것은 이제야 알게 된 김병만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개콘'을 시청하지 않지만 '출발드림팀'이나 '키스앤크라이'를 통해 김병만의 놀라운 능력을 보며 언제나 감탄하고 존경해 왔었지요. 제 눈에 비친 그는 열정적일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만만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라도 자기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충만한 자신감이 그의 존재를 빛나게 했고, 때로는 작은 키조차도 별로 작아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 정도의 능력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김병만 외에도 '키스앤크라이'에 출연한 모든 연예인들은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서지석과 아이유는 탈락하고 말았지요. 특히 서지석은 최선을 다했던 연습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최종 경연날 실수를 연발함으로써 아쉬움에 눈물까지 맺혔습니다. 그러나 김병만은 심각한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모든 이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파트너 이수경이 다칠까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녀 대신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들고 혼자 수없이 리프트를 연습하는 모습은 크나큰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김병만을 명실상부한 이 시대의 '작은 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커다랗게 보였던 그의 마음속에 깊은 컴플렉스가 자리잡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습니다. '스타퀴즈'에서 김병만이 스스로 낸 자신에 관한 문제는 바로 <김병만은 "실물이 더 작네요" 라는 말을 싫어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대놓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무개념이라 하겠지만, 김병만 역시 자신의 신체적 컴플렉스를 아직은 극복하지 못했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초월한 상태라면 "싫어한다"가 아니라 "예전에 싫어했다"고 말했겠지요. 한 때 작은 키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해 사람 많은 장소에 가기도 싫어했다는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또한 개그맨으로 데뷔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는 일이 잘 되지도 않고 삶 자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자기를 알아봐 주는 팬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을 김병만은 이야기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워낙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알아봐 줘도 오히려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느꼈다는 겁니다. 때로는 누군가 자기를 쳐다보고 웃으면 기분이 나빠서 욱하고 화낼 뻔 하다가 "아, 참... 나 개그맨이지!" 하고 깨닫기도 했다는군요. 단지 신인 개그맨으로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심리상태가 그랬던 것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워낙 많은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상처가 그를 소심하고 주눅들게 했으며 타인에게 마음을 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토록 암담하던 시절을 벗어나 지금의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김병만은 얼마나 고통스런 노력을 끈질기게 계속해 왔던 걸까요? 의지가 약한 저로서는 상상조차 쉽게 되질 않습니다. '키스앤크라이'에서 그는 찰리 채플린으로 분장하여 신들린 피겨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연습 중에 부상당한 발목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서 있거나 걷기조차 힘든 상태의 발목으로 김병만은 그 어려운 피겨 동작들을 아픈 내색조차 없이 모두 훌륭히 감당해냈던 것입니다. 빙판에 무릎 꿇고 묵묵히 통증을 견디는 그의 모습은 피겨퀸 김연아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내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무엇보다 극복하기 힘든 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그런데 김병만은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노력으로 몸과 마음의 한계를 극복해냈습니다. 이제는 친구들과 편안히 쉬면서 술 한잔 하고 있는 중에 수많은 팬들이 몰려와서 귀찮게(?) 굴어도 반갑게 웃으면서 일일이 싸인을 해줄 만큼 마음이 여유로워졌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며 웃는 이유가 결코 키 작다고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임을 인정하게 된 거겠지요.

저는 김병만이 원래부터 대인배이고 원래부터 자신만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예민한 성품으로 깊은 컴플렉스와 상처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노력으로 그 상처를 이겨냈군요. 이것을 알고 나니 예전보다 더욱 김병만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누군가 개념없는 사람이 나서서 "실물이 더 작네요"라고 말한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길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상처가 완벽히 치유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가끔은 그런 사람과도 마주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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