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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격' 청춘합창단, 은빛 찬란한 고독과 그리움의 시(詩)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남격' 청춘합창단, 은빛 찬란한 고독과 그리움의 시(詩)

빛무리~ 2011. 7. 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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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저의 예상이 맞을 듯 합니다. 재탕이라는 우려와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은 그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군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대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질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대박을 기대할만하다는 것이 '청춘합창단'의 시작을 지켜 본 저의 소감입니다. 하긴 '남자의 자격'은 원래 조용하고 느릿한 예능이지요. '청춘합창단'은 여러모로 '남격'의 컨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을 지니고 계셨으며, 한 분 한 분이 모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평생 노래와 함께 살아온 분들이어선지 선량하고 겸허한 인품과 교양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모습들도 보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제 글 속에 담고 싶지만 불가능한지라, 가장 깊이 심금을 울리셨던 3분의 모습만을 부족하나마 옮겨 볼까 합니다.

이 3분의 노래와 이야기는 심사위원들의 눈에서 모두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마음 약한 김태원과 김국진은 물론이고 천하의 이경규까지도 눈물을 숨기지 못하더군요. 김태원의 여린 감성을 꼭 닮은 그의 조수들, 박완규와 임혜영도 김태원의 옆에 앉아 펑펑 우느라고 잠시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 홍기표 - 황혼의 애달픈 망부가(亡婦歌)

79세의 홍기표님은 평소 노래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손녀가 대신 참가신청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흔쾌히 동의하신 이유는 작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랍니다. 준비하신 노래는 현제명의 가곡 '고향 생각' 이었지요.

정확한 음정과 훌륭한 노래 솜씨로, 그러나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 생각'이 원래 이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였나요?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던 노래로 기억하는데, 그 가사가 이런 의미로 다가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객지생활을 하며 고향에 있을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만 알았는데, 홍기표 할아버지의 음성으로 들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담담한 목소리로 부르셨지만, 그것은 어떤 노래보다도 간절하고 애달픈 망부가(亡婦歌)였습니다. 아내와 작년에 사별하셨다니 아마도 거의 50년 가량은 부부로 함께 지내셨겠지요.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언제나 퇴근해서 돌아오면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던 그 사람이 지금은 없습니다.)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외롭다는 말이 어쩌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질까요?)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평생 곁을 지켜주던 가장 가까운 친구... 아내와 함께 지냈던 수많은 추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눈물짓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 노래를 들으며 도저히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2. 박원지 - 엄마는 혼자라도 괜찮아

67세의 박원지님은 아마도 혼자서 외동따님을 키워 오셨던 모양입니다. 이제 그 딸이 10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떠나면 엄마 혼자서 어떻게 사느냐고 매일 걱정을 한다는군요. 결혼해서도 같이 살면 좋을텐데, 사정상 함께 지낼 수는 형편인가 봅니다.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씩씩하다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박원지님의 지원 동기였습니다.

준비하신 노래는 정훈희의 '무인도'였습니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몹시 떨리는 목소리긴 했지만 음색과 노래 솜씨는 훌륭하셨습니다. 연세도 아직 젊은 편이라 체력에 무리는 안되실 듯하니, 박원지님은 부디 꼭 합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TV에 나와서 합창단으로 활동하는 멋진 모습 보여준다면, 따님도 더 이상 걱정 안 하실 테니까요.

3. 정재선 -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54세의 정재선님은 15년 전에 아들을 잃으셨습니다. 어머니의 나이가 많지 않으신데 15년 전이라면, 아마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가 봅니다. 가혹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잊어 보려고 몸부림치다가,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듣기에는 마치 그 가사가 아들을 향해 띄우는 편지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그 노래를 수천번 수만번씩 부르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엄마는 더 이상 아들을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좋은 모습을, 이 합창단을 통해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 정재선님의 지원 동기였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해 본 적이 없다면서, 엄마의 노래는 무반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까 홍기표 할아버지의 '고향 생각'을 들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토록 익숙하던 노래 '만남'의 가사가 이런 것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엄마는 널 잊지 않을 거야)...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살아서 볼 수는 없지만, 영원한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엄마는 후회하지도, 바보처럼 울지도 않을 거야.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너를 사랑해)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석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는 바람에, 오디션은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재선 님은 이 노래를 부르며 울지 않으시더군요.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않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것처럼, 엄마는 작은 울먹거림도 없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늘에서 아들도 분명 기뻐하겠지요.

저에게 이 사람들의 노래는 깊은 고독과 그리움의 시(詩)처럼 느껴졌습니다. 황금보다 더욱 찬란한, 순백의 은빛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이들의 꿈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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