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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얼굴없는 가수,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놀러와' 얼굴없는 가수,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들

빛무리~ 2011. 6. 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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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관우, 박완규, 김범수 등의 노래를 들으며 "참 좋다~"고 느끼면서도 저는 "꼭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노래가 좋으면 그뿐이었습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서 얼굴 공개를 안하나보다 했지요. 예를 들어 '좀머씨 이야기', '향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자신의 얼굴이나 사생활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지극히 꺼려한 나머지, 동의 없이 사생활의 일부 내용을 언론에 유출시킨 지인과는 절교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에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꽤 많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더군요. 그들 자신은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노출하고 싶었지만 기획사에서 막았던 거였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상품 가치는 최상급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얼굴의 상품 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했던 탓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아주 못생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아주 평범한 얼굴일 뿐이죠.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것은 조관우의 체험담이었습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늪'이라는 명곡을 통해 독특한 가성 창법으로 스타가 되었고, 이어서 발표한 1,2,3집이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특히 '모래성'이라는 노래를 좋아했었습니다. "괜찮아요~ 나도 예전에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 이해해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게 그때의 대가인가봐요~" 이런 노래였죠) 그런데 어쩌다 한 번 방송에 출연하여 얼굴을 내비쳤더니만 2~3만 장씩 팔리던 앨범의 판매량이 삽시간에 2~3천 장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잘생기지 못한 평범한 얼굴'은 앨범 매출을 1/10로 격감시키는 치명적 피해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대중의 취향을 굳이 누가 대변해 줄 의무는 없었겠지만, 하여튼 표면적으로 드러난 변명같은 이유는 '목소리와 얼굴이 전혀 안 어울린다'는 것이었다지요. 정말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목소리만 들으면 될 일인데, 얼굴을 보고 나서는 그 좋은 노래도 듣기 싫어졌다니 말입니다. 저의 개인적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데, 그 웃기는 것이 현실이더군요. 심지어 방송 출연이 아닌 행사장에 갔을 때조차도 그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낮이나 밤이나 선글라스를 써야만 했고, 때로는 어두컴컴하니 잘 안 보여서 무대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들을 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서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특히 '나는 가수다'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는 김범수는 더없이 충만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눈꼬리가 처지고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왜 찢어진 눈매가 되었는지를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가, 성형전문가(?) 김나영의 조언을 통해 급속히 자라난 광대뼈 때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고 저는 제일 많이 웃었습니다.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출중한 예능감까지 갖춘 그들이 단지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묻혀 있어야만 했던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잠시 안타까워할 뿐이지만 그들 본인의 입장에서는 앨범 판매량의 급감소라는 아픈 경험도 했고, 더 나아가서는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며 생계의 위협까지 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뼈아픈 일이겠습니까? 그 좋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수 활동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는 박완규의 말에는 긴 세월의 고통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박완규의 토크에서는 좋은 시절이 왔을 때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준 김태원의 인간미도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원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라고 하늘이 내리신 인물 같습니다. 한때는 수개월 동안 젓가락으로 꿀만 찍어 먹으며 연명하던 폐인같은 삶이었지만, 이경규의 손을 잡고 힘겹게 일어선 후에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선 사람이 계속 줄줄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경규가 가장 대단한 사람인 건가요? ^^


얼굴 없는 가수 특집에 백청강과 이태권이 초대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탄생'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로서 제일 먼저 스타가 되어야 마땅할 인물들이건만, 오히려 노골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건 출중한 외모를 지닌 데이비드오와 권리세, 노지훈 등이니까요. '세바퀴'나 '우결' 등의 프로그램에서 그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불러대는 이 때, 소외당한 백청강과 이태권을 일부러 초대한 '놀러와'의 섭외력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이로써 '놀러와'의 진정한 가치는 '나가수'로 떠나간 신정수 PD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MC 유재석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증명되었군요. 신PD가 없어도 이 프로그램은 전혀 타격받지 않고, 여전히 즐겁게 잘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세상 좋아진 거 맞나요? '이거 아니면 저거' 식으로 단순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다양성을 많이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약간은 좋아진 듯도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잘생긴 가수만 선호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비주얼이 좀 받쳐주지 않아도 가창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당당하게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긴 한데, 아직도 '외모지상주의'의 어두운 굴레는 많은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만 존재하지 않았다면 허다한 성형중독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이어트하다가 거식증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냥 저마다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놀러와'의 얼굴 없는 가수 특집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세상에 위세를 떨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거대한 굴레를 자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심지어 파멸시키는, 그 비뚤어진 굴레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보처럼 억울함을 깨닫지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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