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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정치권에 각 세우는 놈들이야말로 정치적이지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시티헌터

'시티헌터' 정치권에 각 세우는 놈들이야말로 정치적이지

빛무리~ 2011.06.02 11:26






1회를 보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현재 '시티헌터' 속의 이윤성(이민호)은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선량한 영웅입니다. 자고로 복수의 화신이라면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운 카리스마를 풍겨야 하는 법인데, 이윤성은 오히려 눈부실 만큼 흰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차라리 1회를 시청하지 않고 2회부터 보았다면 좀 더 적응하기가 쉬웠을 텐데...... 저는 3회까지 시청한 지금도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1회는 분명히 어둡고 진지한 복수극이었으며, 그 와중에 정치와 역사적 사실까지 맞물려 있어서 드라마가 굉장히 묵직했거든요. 그래 놓고 2회부터는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저는 너무나 당황을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같은 드라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2회의 당황스러움을 간신히 넘기고 3회로 접어드니, 아주 조금은 적응이 되는 느낌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급작스런 변화를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1회의 주인공은 이윤성이 아니라 그의 양아버지 이진표(김상중)였기 때문에, 드라마의 분위기도 이진표의 성격대로 어둡게 흘러갔던 거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2회부터는 진짜 주인공 이윤성이 전면에 나서서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있지요. 이윤성의 타고난 성격이 얼마나 밝고 명랑한지는 그 어둡고 칙칙하던 1회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났던 설정입니다. 놀랍게도 소년 시절의 그 성격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더군요. 그러니 드라마 역시 주인공의 성격을 따라서 통통 튀는 유쾌한 분위기로 바뀌었는가보다...... 대충 이렇게 이해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윤성이란 녀석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보통 복수극의 주인공들은 비참한 사건을 겪으면서 성격이 확 변하게 마련이거든요. 그의 양아버지 이진표도 원래 그렇게 어둡고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자상한 성격이었지요. 그런데 절친 박무열(박상민)을 비롯하여 20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5인 회의'의 배신으로 인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솟구치는 분노가 그의 인성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친구 박무열의 어린 아들을 어머니 품에서 훔쳐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화신으로 키우려 할만큼 그는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윤성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게 될 줄만 알았지요. 소년 시절까지는 더없이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었지만, 친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알게 되고 원수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면서부터는 당연히 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 수준의 무예와 사격술을 연마해야 했고, 성장해서는 MIT 박사학위를 수료할 만큼 공부도 해야만 했으니, 그의 인생이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았던 이유는 바로 친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지요. 이 정도의 절치부심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가슴 속에 증오와 분노만 가득차 있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윤성은 평범한 복수극의 주인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도 깨끗한 그의 천성 속에 개인적인 증오심은 뿌리내릴 수조차 없었나 봅니다.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것은 넘치는 정의로움 뿐입니다. 이윤성은 여전히 유쾌한 청년이고, 아주 가끔씩만 분노합니다. 그는 국회의원 이경완(이효정)에게 진심으로 분노했지만, 그 이유는 자기 친아버지를 죽인 원수라서가 아니라 세금을 착복하는 악덕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경완 같은 비리 정치인들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굶는다는 사실이 이윤성의 정의감을 자극해서 분노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정의의 사도입니다.


심지어 이윤성은 나쁜놈을 응징하는 방식조차도 합법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기껏 종횡무진 활약해서 붙잡은 이경완을, 애써 입수한 증거 자료와 함께 검찰에 넘겨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기와 비슷하게 정의감이 넘치는 젊은 검사 김영주(이준혁)를 믿고 내린 결정이었지요. 이경완을 마취총(?)으로 기절시킨 후 커다란 택배 상자에 넣어서 검찰청으로 배달하던 장면은 참 통쾌하고도 우스웠습니다.

일지매나 홍길동도 선량한 영웅이며 정의의 사도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들은 걸핏하면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아니, 아예 법을 무시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그런데 이윤성은 아비의 복수를 한다는 녀석이 저렇게 또박또박 법까지 지켜가며 유순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정말 보기 드문 캐릭터입니다.

이경완이 검찰에 체포된 것을 보며 이진표는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아들 윤성에게 즉시 전화해서 야단을 칩니다. "검찰을 어떻게 믿고 넘겨 줘?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것이 한국 검찰이야. 너는 그놈을 죽였어야 해!" 그러나 이윤성은 흔들림 없이 대답하는군요. "사람들이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방법은 이것 뿐입니다."


"이렇게 처리한 것을 네 아버지가 알면 가만있지 않으실텐데..." 라며 걱정하는 배식중 아저씨에게도 이윤성은 이렇게 말했었지요. "죽이는 건 내 방법이 아니야. 완전한 파멸만이 내 방법이지."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는지, 이 젊은이는 너무도 고차원적인 복수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대신 명예를 죽이고 영혼을 옭아매는 것입니다. 비록 살아있는 권력에 멱살을 잡힌 검찰이 힘을 쓰지 못해서 이경완이 풀려나게 된다 해도, 이미 그의 악행과 비리가 온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회생하지 못할 거라고 이윤성은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그의 믿음이 결실을 거둘지는 좀 두고봐야 알 일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망각이라는 괴물이거든요. 악을 쓰며 분노하던 사람들도 며칠만 지나면 그 감정이 희미해질 것이고, 또 며칠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경완은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하던 짓을 계속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윤성이 선택한 복수의 방식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입니다. 헛수고의 무한 반복이지요. 과연 이 드라마 속의 현실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천사같은 이윤성의 방식이 옳았다고, 그의 손을 들어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양아버지의 말처럼, 직접 죽이는 것 외에는 다른 복수의 방법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까요?



제가 '시티헌터' 3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섬뜩하게 느꼈던 대사가 있습니다. 이경완의 출판기념회를 맞이하여 '5인 회의'가 한 자리에 모였는데, 그 자리에 김영주 검사가 다가와서 인사를 합니다. 김영주 검사의 아버지는 바로 '5인 회의' 중 한 사람인 김종식(최일화) 의원이거든요. 운명의 사건이 일어나던 1983년 당시에는 재경부장관이었죠. 이 사람 또한 결코 청렴강직한 인물은 전혀 아닌 듯한데, 김영주는 가엾게도 자기 아버지가 이경완과 다를 것 없는 비리 공직자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서 젊은 김영주는 "어떻게든 증거를 확보해 이경완을 잡아넣고야 말겠다"며 겁도 없이 큰소리를 탕탕 치고 물러갑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재만(최정우) 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립니다. "그 녀석 배짱 한 번 좋네!" 천재만 역시 '5인 회의'의 일원이며 1983년 당시에는 안기부장이었습니다. 김종식의 입장에서는 오랜 친구들에게 자기 아들이 민폐를 끼치고 있는 상황이니 면목 없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미안하네.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러자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재만이 대답합니다. "정치권에 각 세우는 놈들이야말로 정치적이지. 세상 쓴맛 단맛 다 보고 나면 알아서 들어올 거야."


제가 섬뜩하게 느낀 것은 바로 천재만의 저 대사였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자네 아들이 정치권에 관심이 없다면 오히려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나, 저렇게 각을 세우고 우리한테 덤비는 것을 보니 머지 않아 제 발로 우리 밑에 들어오겠군."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섬뜩했던 이유는 물론 젊은이의 정의감을 어린애 투정쯤으로 여기는 그들의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천재만의 저 말이 틀렸다고 자신할 수만은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이도 보아 왔지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정의를 목청껏 부르짖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변해 버렸던가를 말입니다.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던 것과 스스로 동화되어 버리는... 어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우습고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궁극적으로는 역시 이윤성이 선택한 복수의 방법이 옳았습니다. 지나치게 미워하고 증오를 키우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들과 비슷해져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이윤성의 복수는 티없이 맑고 맺힌 데 없는 그의 성격대로, 철저히 그의 방식대로 계속될 거라 믿어 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는 정의로운 시티헌터이며 선량한 영웅으로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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