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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이진표의 유언 - 죽어서 전하는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시티헌터

'시티헌터' 이진표의 유언 - 죽어서 전하는 편지

빛무리~ 2011.07.29 09:40


한 줌 핏덩이에 불과했던 너를 경희의 품에서 강제로 빼앗아 올 때, 너를 보는 내 눈빛에 일말의 따스함이 있었겠느냐? 나는 5인 회의를 뼈까지 갈아마시고 싶을 만큼 증오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치가 떨리는 것은 바로 최응찬이었다. 그는 언제나 정의롭고 인자했으며 나와 무열에게는 친형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순식간에 안면을 바꾸어 우리를 배신하고... 무열이와 19명의 다른 동료들을 죽인 것이다. 

경희가 최응찬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열이가 기꺼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경희를 사랑했던 탓도 있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응찬 형님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경희의 임신 사실을 최응찬보다 먼저 알게 된 천재만은 그녀를 협박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활약하게 될 최응찬에게 있어, 요정 출신의 불륜녀와 그녀에게서 태어난 사생아의 존재는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낙태를 강요했지만 듣지 않자, 천재만은 급기야 경희를 태아와 더불어 살해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람 하나 죽이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천재만이었다.

챡한 내 친구 박무열이 말했다. "나는 경희가 죽는 것도 볼 수 없고, 응찬 형님의 핏줄이 세상 빛도 못 본 채 태중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 그렇게 무열이는 경희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아웅산... 운명의 그 날, 네가 태어났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무열이는 갓 태어난 너를 안고 기뻐하며, 자기 집안의 돌림자인 이룰 성(成)자를 넣어서 네 이름을 짓겠다고 말했다. 그런 무열이를... 다른 사람도 아닌 최응찬이 죽였다.

차가운 바닷속으로 깊이 가라앉던 무열이의 모습은 그의 핏물로 흐려져 오래도록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경희와 아이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착하지만 영민했던 그는 죽기 전에 충분히 깨달았을 수도 있었다. 최응찬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도 바보같은 무열이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를 죽인 사람의 여자와 그의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다른 4명은 내 손으로 죽이더라도, 최응찬은 기필코 자기 아들의 손에 죽도록 만들겠노라고, 뼛속 깊이 그 결심을 아로새겼다. 

윤성아, 나는 이제까지 너를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는 그저 최응찬의 핏줄이며 철저한 복수의 도구일 뿐이었으니까. 트라이앵글에서 지낼 때, 어린 시절부터 온 몸에 피멍이 가실 날 없을 정도로 호되게 훈련을 시키면서도 가슴아픈 느낌조차 받아 본 적 없었다.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쪽 다리를 잃기는 했지만, 그 또한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최고의 잔인한 복수를 위해서는 네 몸을 손상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그 차가운 바닷속에서 무열이와 함께 죽은 목숨이니, 다리 한 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너는 이상하게도 성장할수록 최응찬이 아니라 무열이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고 싱긋이 웃어버리는 그 미소하며, 바보같을 정도로 끈덕진 인내심하며... 너를 볼 때마다 오래 전의 무열이를 보는 것만 같아서 나는 순간순간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드디어 네가 알게 되었다. 너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 내가 왜 너를 엄마 품에서 빼앗아 왔는지, 그리고 왜 지금껏 너에게 진실을 숨겨 왔는지, 이제 너는 모두 알게 되었다. 네 인생을 돌이킬 수 없이 비틀어 놓은 나를, 당연히 네가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윤성이 너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나를 보는 너의 눈빛 속에는 깊은 원망은 있었지만 증오심은 없었다.

천재만의 몸에 난도질을 할 때, 나는 28년 동안 품어왔던 독기를 모두 그 칼질에 쏟아부었다. 이제 마지막, 최응찬을 향한 방아쇠를 당길 일만 남았는데, 다른 사람 아닌 네가...  내가 키워낸 복수의 도구가 거꾸로 나에게 총을 겨누며 앞길을 막아서는구나. 잔뜩 핏발이 서고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보며 네가 말했다. "친아버지를 쏴야 하는 잔인한 복수... 하고 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날 위해 다리까지 잃으신 아버지한테 맞서야만 하는 내가... 어떨 것 같아요?"

"나를 한 번쯤은 생각해서 멈춰 주길 원했어요. 전 그냥 평범하게, 아버지랑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구요. 그런데... 다 꿈이었어요..." 그리고는 나에게 향했던 총을 거두어 너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며 다시 말했다. "이것이 제 운명이라면, 제 손으로 끝내겠습니다." 순간 내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해지며, 찢어질 듯 큰 소리로 마음속에서 절규하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아니야, 내가 원하던 복수는 이게 아니야!"

윤성아, 난 네가 죽는 게 싫었다. 네가 죽는 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제껏 제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최응찬의 고통만 상상하며 별러왔을 뿐, 제 아비를 죽여야 하는 너의 감정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 그토록 비정하게 너를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도구로만 대해 왔으면서, 그런 내가 이제 와서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니? 나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이유는 자결하려는 네 모습보다도,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외침 때문이었다.

그 때 최응찬이 나타났다. 그는 이미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했다. 나는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즉시 그에게 집중하며 총구를 겨누었고, 경호관 김나나가 최응찬의 손에 밀려 옆으로 비켜나자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나의 총탄이 꿰뚫은 것은 최응찬이 아니라 윤성이, 너의 가슴이었다. 네가 생부를 살리겠다고 그 앞을 막아섰던 것이다. 다음 순간 내 가슴에도 김나나가 발사한 총탄이 박혔다.

살수의 직감으로 너의 총상이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너를 내 손으로 죽일 뻔했다는 사실은 내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훨씬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28년 동안 네 아버지로 살아왔지만 한 번도 너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준 적 없던 내가, 이제 처음으로 오직 너만을 위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기로 한 것이다. "한 번쯤은 나를 생각해서 멈춰 주길 원했어요!" 그래, 너를 생각해서 꼭 이번 한 번만 멈춰 주마.

"전 그냥 평범하게, 아버지랑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좋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마. 그런데 '아버지랑' 이라는 말은 뺄 수밖에 없겠다.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절대 평범한 삶도, 행복한 삶도 누리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수많은 경호관들에게 포위당한 채, 스스로 나의 신분을 밝히고 내가 시티헌터라고 외쳤다. 나는 싹쓸이 작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이진표이며, 국가에게 배신당한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5인 회의를 하나씩 제거해 갔다고 말이다. 내가 한 일은 물론이요, 윤성이 네가 한 일도 모두 나에게 돌렸다. 이렇게 내가 모두 끌어안고 떠나면, 너는 앞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무열이처럼 티없이 밝게 웃을 줄 아는 녀석이니까.

그리고 나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권총에서 탄창을 꺼내어 떨어뜨린 뒤, 경호관의 얼굴을 향하여 공포탄을 쏘았다. 어차피 네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괜히 사람을 다치게 해서 네 마음을 또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황망 중에 공포탄인 줄을 인식하지 못한 경호관들은 일제히 나에게 실탄 사격을 가했고, 나는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윤성아, 누가 뭐래도 박무열은 네 아버지이다. 아비가 3명이나 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다면 차라리 나를 부인해 다오. 나는 자격이 없지만 무열이는 다르다. 그는 네 어머니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너를 자기 아이로 받아들였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죽음의 순간에조차 너의 행복을 간절히 기원한 그를, 어떻게 네 아버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니? 그리고 윤성아, 너는 정말 이상하게 무열이를 많이 닮았다. 피도 섞이지 않았고 함께 살았던 적도 없는데, 친부인 최응찬보다도 양부였던 나보다도 너의 성품은 박무열을 훨씬 더 많이 닮아 있으니 이거야말로 운명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윤성아, 행복한 날들 속에서도 가끔씩 힘겨워지는 순간이 오면, 네 아버지가 얼마나 정의롭고 따스한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도록 해라. 양부 이진표로 인해 비틀어졌던 삶의 조각들은 지워버려라. 너의 존재가 있는 줄도 모른 채 28년을 살아 온 무책임한 생부도 기억할 필요 없다. 오직 기억하고 간직할 것은 마음으로 네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 주었던 박무열의 이름뿐이다.

이제 경희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무열이가 죽으면서 부탁했던 한 가지 소원도 이루어지는 셈이구나. 나의 마지막 선택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나 이진표의 삶은 무모한 복수만을 쫓아서 낭비해 온, 참으로 가치 없는 삶이었지만, 끝까지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네가 있었으니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편인 듯 싶다.


*** '시티헌터' 종영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편지 형식의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그 동안 내용이 하도 복잡하여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보고만 있었네요..^^ 19회에서 김영주(이준혁) 검사의 죽음도 가슴아팠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단원을 장식한 이진표(김상중)의 죽음이 더욱 인상적이더군요. 주인공 이윤성(이민호)은 더없이 멋있고 완벽하지만 거의 평면적인 캐릭터이고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인데, 오직 이진표만 양면성을 지닌 다중적 캐릭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임재범의 '사랑'이 들려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어쨌든 부족한 부분도 적잖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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