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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 이병진을 위한 전유성의 특별한 멘토링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강심장' 이병진을 위한 전유성의 특별한 멘토링

빛무리~ 2011. 4.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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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강심장'에서는 특히 이병진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초반에는 태진아의 위험한 폭주를 적절히 차단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후반에는 선배 전유성이 자기를 이끌어 주었던 추억을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는데, 그의 이야기는 감동과 유머가 적절히 어우러진 최고의 토크였습니다.


18년 전, 이병진이 신인 개그맨으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녹화가 끝난 후 회식자리에서 한 PD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병진아, 너는 다른 개그맨들과 좀 다른 것 같다. 진지하고, 목소리도 저음이고, 느리고... 독특한 색깔이 있는 것 같아" 이병진은 칭찬인 줄 알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까지 한 후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PD가 "어우, 답답해.." 하고 중얼거렸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더 이상 프로그램에 나오지 말라는 하차 통보를 전달받았답니다.


느린 말투가 개그에 치명적인 결함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그 PD의 발언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개그맨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까지 할 정도였지요. 그 때 이병진에게 힘이 되어 준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대선배 전유성이었습니다. 그 말만 듣고서도 모두가 무릎을 탁 치면서 새삼 느낀 점인데, 전유성과 이병진은 여러가지로 참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있더군요.

어느 날 전유성이 책 한 권을 내밀면서 "너 읽어!" 하더랍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더니 "만원 내!" 라고 하시길래 가격을 봤더니 책값은 8천원이더랍니다. "2천원은 수고비!" 전유성의 그 무뚝뚝한 어조를 이병진은 정말 싱크로율 100%로 흉내내더군요. 그 후 전유성은 한동안 매주 똑같은 방식으로 이병진에게 책을 선물해 주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유성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너 이번 주 일요일 아침 8시에 뭐하냐? 별 일 없으면 북한산 입구로 와!" 평소 운동도 안 좋아하고 등산에는 전혀 취미가 없던 이병진이지만, 선배의 부름에 못이겨 8시에 북한산 입구로 나갔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유성이 오지 않기에 전화를 해봤더니 "너 올라갔다 와. 좋대..." 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본인은 처음부터 함께 북한산에 오를 생각이 없었고, 오직 이병진이 산에 오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과연 기인다운 전유성의 행동이었습니다.


기왕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돌아오기도 뭣하고, 왠지 그날따라 올라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초보자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북한산을 힘겹게 오르다가 중간에 갈림길이 나왔기에, 곁을 지나던 등산객에게 어느 길이 더 가깝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누군지 모를 그 등산객이 대답했습니다. "이쪽 길은 굉장히 빨리 올라갈 수 있지만 볼 건 없습니다. 저쪽 길은 좀 돌아서 가야 하지만 볼 것도 많고 사진 찍을 것도 많지요."

이병진은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볼거리가 많으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마냥 천천히 오르다가 중간에 멈춰 쉬면서 마시는 물맛이 얼마나 시원한지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는, 벌써 무언가 얻은 게 있음을 느꼈습니다. 남들은 빠르게 올라가는데 혼자 뒤처진 듯한 느낌에 힘겨워하고,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산행 한 번에 혼란스럽던 마음이 싹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이병진이라는 사람은 느려야 맛이 있다. 남들이 빨리빨리 재촉할 때, 너는 네 방식대로 더 느리게 나아가라." 나중에 전유성이 직접 들려 준 조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유성은 한 마디 말로써 전해주는 것보다, 이병진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기를 더욱 바랬던 것이지요. 매주마다 선물해 주었던 책도, 등 떠밀다시피 올려보냈던 북한산도, 모두 그런 의미가 아니었겠습니까? 그 방대한 책 속에서, 그 넓은 산 속에서 무엇을 깨닫고 얻게 되든, 후배의 운명(?)에 맡기는 듯한 그 기묘한 가르침의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병진이 갈림길 앞에서 만났던 그 등산객의 존재가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느 쪽 길이 더 가까운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심히 "저쪽 길이 더 가깝소" 라고만 대답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 사람은 이병진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려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신선이 아니었을까요? 전유성은 그와 같은 존재가 불쑥 나타나서 도움을 줄 것까지 모두 예상하고 이병진을 북한산으로 올려보냈던 게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저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전유성이 기회를 제공해 주었어도, 이병진이 따르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책을 쌓아만 놓고 읽지 않았을 수도 있고, 북한산 밑에서 꼭대기를 한 번 올려다만 본 후 그냥 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지요. 손 잡고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슬쩍 길 입구만 보여주고 내버려 두었으니, 후배의 앞에는 허다한 경우의 수가 존재했습니다. 제대로 따라오지 못할 가능성도 아주 많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병진은 선배 전유성이 의도한 대로 정확한 깨달음을 얻어서 오늘까지 잘 따라왔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제게는 너무나 신비롭게 느껴지는군요. 마치 현대판 '탈무드'의 일화 한 편을 읽은 듯한 기분이에요. 그 속에서 전유성은 현자(賢者) 랍비였고, 이병진은 그의 수제자였습니다.


무조건 빨리 가는 길만이 좋은 것은 아니었군요. 천천히 돌아서 가는 길에도 소중한 것들이 참 많았군요. 이제껏 나의 단점이며 걸림돌인 줄만 알았던 특성이, 사실은 더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눈부신 날개였군요. 그러니 포기하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좀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반드시 눈에 띌 테니까요. 이렇게... 전유성 랍비는 우리에게도 참 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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