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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신인정(서지혜)의 독백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49일

'49일' 신인정(서지혜)의 독백

빛무리~ 2011. 3. 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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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는 공주다. 그리고 천사다. 이 아이는 아무도 미워할 줄을 모르고, 누구에게도 화낼 줄을 모른다. 자기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나에게 한 번도 집주인 딸 행세를 한 적이 없다. 나는 한밤중에 가끔씩 일어나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지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 아이는 무슨 기분좋은 꿈을 꾸는지 자면서도 툭하면 방싯방싯 웃었고, 그럴 때면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와 티없이 하얀 얼굴을 어루만졌다. 완벽했다. 나의 시커먼 그림자가 제 얼굴 앞에 늘어져 환한 달빛을 막는 줄도 모르고, 지현이는 곱게 웃으며 잠들어 있었다.



누가 뭐래도 강민호는 내 남자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에 만났고,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를 깊이 사랑해 왔다. 우리는 먹을 것 없어 굶주리던 처참한 시절을 함께 보냈고,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함께 키웠고, 수많은 좌절을 함께 겪었다. 그리고 이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잠시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이 커다란 회사는 우리 차지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지현이를 이용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공주와 친구가 되었고, 그 공주가 사는 집에서 함께 살아도 보게 된 것뿐이다. 아무도 나에게 시녀 노릇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공주 곁에 있다보니 나는 자연스레 시녀가 되었다. 지현이의 구두가 망가지면 즉시 내 신발을 벗어 주고 맨발로 뛸 만큼 나는 그저 알아서 기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공주라고 언제까지 공주라는 법이 있나?


지현이는 천사였고, 그 아이의 부모님도 나에게 친부모 이상으로 잘해주셨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들처럼 많은 것을 가졌으면, 나도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었을 거다. 사람은 오직 자신이 가진 것만을 남에게 줄 수 있다. 그러니 나처럼 속에 가진 것이 상처뿐인 아이들은, 남에게 줄 것도 상처밖에 없다.

민호씨는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발버둥쳤지만,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튼튼한 사다리는 커녕 흔한 밧줄 한 개도 없었다. 수많은 노력에도 매번 미끄러지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나는, 사랑하는 그에게 사다리를 마련해 주기로 결심했다. 비 내리는 산 속에 지현이가 혼자 버려지고, 거기서 민호씨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다시 운명처럼 재회하게 되었던 그 날도 역시 우연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계획들이었지만, 지현이를 속이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이 순진한 천사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모두 곧이곧대로 믿어 버린다.

지현이는 순식간에 민호씨에게 빠져들었고, 우리의 계획대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민호씨가 다정한 미소로 지현이를 바라보고, 자상한 손길로 그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을 때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바르르 떨렸지만 어차피 각오한 일이었다. 바닥을 기면서 살아 온 내 인생에 이 정도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었는데......


교통사고라니, 이럴 수는 없다. 지현이가 이렇게 죽어버리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하도 기가 막혀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우는 나를 달래며 기운 내라고, 누군들 너만큼 슬프지 않겠느냐고 서우는 말했지만 그 아이는 모른다. 그 어이없는 교통사고가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를,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좋았을텐데 너무 빨리 일어나 버린 그 교통사고가 민호씨의 앞날을 어떻게 망가뜨려 놓았는지를 서우는 모른다. 거의 다 붙잡았던 꿈을 눈앞에서 속절없이 놓쳐 버리는 심정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를 그애는 모른다.

지현이가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기약없이 병원 침상에 누워버린 후, 민호씨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고 나는 눈물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다시 만나서 앞일을 의논하기로 했다. 항상 만나던 호텔 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리고 그리운 민호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음고생에 초췌해지긴 했어도 그는 역시 멋진 내 남자였다.


민호씨는 다정하게 나의 어깨를 감싸고 룸 안으로 들어섰다. 좀전에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온 키 큰 여자가 자꾸만 내 얼굴을 힐끔거리던 모습이 약간 신경쓰이지만,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괜히 내 신경이 예민해진 탓일 거다. 지금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 독백 형식의 이 리뷰는 '49일'을 2회까지만 본 상태에서 재미삼아 해 본 저의 상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드라마 전개와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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